한국희곡

허혜란 '레퀴엠'

clint 2018. 5. 12. 11:02

 

 

 

 

 

200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을 연극 키노드라마로 각색한 작품이다. '레퀴엠' 으로 공연됨.
동양의 피카소 ‘신 니콜라이’의 삶과 예술. 가족, 민족, 예술에 대한 사랑이 표현된 감동의 휴머니티 영상과 연극이 만난 키노드라마. 일제의 침탈과 압제를 피해 연해주(블라디보스톡-원동로 옮겨가 살던 고려인들은 (카레이스키) 1937년 소련의 스탈린 독재 정권에 의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 화물 기차에 짐짝처럼 몸을 싣고 한 달 만에 도착한 곳은 수용시설도 없는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그들은 토굴이나 창고 등에서 극심한 추위와 맞서 싸우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십육만 이주민 중 2/3가 사망한다, 할머니와 여동생, 삼촌등과 함께 강제이주대열에 낀 9살 소년 신순남도 삼촌과 여동생을 차례로 잃으며 낯선 땅에 정착한다. 신순남의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는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친다. 신순남은 러시아 청소년 문화 축전에서 금상을 받으며 촉망받는 화가로서 성장하는데...

 

 

 

작품 레퀴엠

 


허혜란의 문장들은 장식이나 포즈의 유혹으로부터 초연하다.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스타일이나 겉멋의 수사를 동원해 독자를 홀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현란한 포장지의 시대에 진실은 포장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의 소설이 단단하고 정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의 땅에서 자기 땅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언어로’ 살아가는, ‘얼굴 없는’ 소설 속 인물들은 소설이 삶의 복판을 아직 지키고 있으며, 늘 그래야 함을 상기시킨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부재하는 ‘너’를 향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휴대폰의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는 이 땅의 고독한 사람들이 디아스포라의 난민에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가 이 소설집의 심층에 수맥처럼 흐른다. 우리들 또한 얼굴 없이 그들의 언어로 살고 있지 않은가. 2004년에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 등단작인 ‘내 아버지는 서울에 계십니다’, ‘독’에 지난 5년여 동안 발표한 7편의 단편소설을 함께 묶었다. 작가는 고향을 떠나 먼 나라, 이방의 땅에서 스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소설의 배경은 중앙아시아와 서울을 오간다. 이방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기원한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으며, 이곳에 남은 자들은 이방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표제작 ‘체로키 부족’은 작가의 정서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살다 결혼하였으나 정주하는 삶에 적응하지 못한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과 현실을 못견뎌 하며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키워낸다 1937년 연해주에서 우즈벡키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한 카레이스키의 삶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 신순남 화백의 이야기. 1995년의 작품을 완성한 날의 회상형식.

 

 

작품 진혼곡

 

신순남 연혁(신 니꼴라이 세르게이비치)
-1928년생
-두 살 때부터 붓을 갖고 놀기 시작
-1930년 부친 사망. (2세)
-어머니 재가
-1937년 9월. 강제 이주 (연해주-나훗카 부근 타우딤 거주 중)
동행: 할머니, 고모, 삼촌 둘, 숙모, 조카, 여동생.(7인)
-1937년 10월 하순 도착(카자흐스탄의 카라칸다)
40km 떨어진 집단 농장에 수용됨.
-그해 말. 삼촌 둘은 탄광도시 카라칸다로 감.
고려인들은 다음 해부터 늪지를 개간, 목화농사.
-1938. 삼촌을 따라 이동. 방 3칸짜리에서 7식구
-1939년. 둘째 삼촌이 타슈켄트로 이동.
-1940년. 둘째 삼촌 따라 이동. (삼촌 3식구+조모, 여동생, 본인)
쌀장사-쿠룩 시장. 최씨 농장에서 땅굴 같은 집을 짓고 삶. 농민학교 다님.
-1940년. 9월 20일 둘째 삼촌 사망 (삼촌 나이 27세-25세 결혼)
숙모는 친정 나만강으로 감. 학교 그만 두고 할머니랑 벼농사.
* (1944년까지 논농사. 밤에 학교 감)
*세베르니마야크 콜호즈의 7년제 중등학교
-2차 세계대전. -1943(?) 수확한 쌀 전량 뺏어감.
-1944년. 서류 위조(친구 손 보리스와 함께)
* 벤코프 미술학교 입학-5년제(타슈켄트)
* 53년 공민증 나올 때까지 집단 농장이 아닌 아는 사람 집에서 통학.
* 그림 공부를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첫 보람(16세)
*세베르니 마야크 집단 농장 고려인 800명을 그릴 최초의 생각
-1947년 여동생 사망. 몹쓸 병.(?)
-1949 벤코프 미술학교 졸업. 지해옥과 결혼(21세-동갑)
-1950년 첫아들 게오르기 낳음.
-1953년 첫 공민증 (거주 이동 가능-그 사이 16년간 콜호즈 생활)
-1954년 타슈켄트 연극 미술대학 입학
* 학비 땜에 홀로 자취(1년간)
-1955년. 벤코프 미술학교 교사.
* 가족(처자)를 데려 왔지만, 생활이 어려워 할머니는 카라칸다 큰 삼촌 댁.
-1957년. 모스크바 세계 청소년 축전 최고상 금상 수상.
그 해. 우즈벡 화가 축전 은상수상.
-1957년까지 막내 이고르까지 아들만 넷.
-1960년. 타슈켄트 아스롭스키 미술대학 졸업.
-1962년 할머니 사망
-1962년. 소련화가동맹 회원.
*미술계와 충돌- 민족주의자(형식주의자)
* ‘60-80년말 까지 그림을 그렸으나 평화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 모스크바에 갈 기회가 많았으나, 우즈벡 동맹 회장의 방해.
-1985 난생 처음 레닌그라드로 출장. 우즈벡 미술인 전시회(즉흥 전시회)에 작품 6점 전시.
*‘기억의 길’-레퀴엠-한민족 유민사 일부
*소련 화단의 주목
-1986년부터 레퀴엠 작업 시작.(86-90)
-1988년 우즈벡 공훈 미술가(60세). 아내 지해옥 사망.
-1990년 6월. 모스크바 첫 개인전시회 -트레차코프 미술관
*그 시절 제도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작가의 진실을 두려워했다.
(평론가- 이바체슬라브)
* 완성된 진혼곡 22부작 중 일부
*評- ‘우리의 우주 전체가 울고 있는 느낌‘ ’영혼을 묘사한 그림‘
‘상징적 기법으로 강압과 죽음을 대조’
* 이 전시로 유럽과 미국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
-1991 타슈켄트 1차례 전시.
-1995년 타슈켄트에서 세 차례 개인 전시회
*評- ‘피카소에 버금가는 화가 (BBC), 금세기의 걸출한 모뉴멘탈리스트,(기념화가)
현대의 시켈로스‘(르네상스 유명화가)
* 한민족 유민사, 기도, 어머니와 딸. 부채연작과 수콕, 전설시리즈 일부.
* 스폰서가 미국 기업 기금.-매입 의도. 프랑스 화상도..이윤기 눈에 띔.
*評- 90년대 이후 종교적 색채가 강한 상징주의를 벗어나, 추상미술로 선회하면서
화면이 보다 생동하는 색체의 율동으로 넘쳐나고 있다.
(모순, 질곡, 난관이 삶의 환희, 긍정, 낙관의 세계관으로)
* 전설(1991년 작)- 작가의 말 ‘ 인간주의의 회복’ ‘남북간의 관계에 적용 되었으면...’
-1992년. 페레스트로이카. 소련체제 붕괴
-1997년 6월 과천 전시회
*147점 무상 기증
*1997~ 아스트롭스키 미술대학 교수
*우즈벡 대통령으로부터 ‘예술 공로상 수상’
* 대한민국 ‘금관 문화훈장’ 수상
-2000.3 KBS 해외 동포상 수상
-현재 막내아들 이고르 가족과 삶. 네 아들에 7명의 손녀.

 

 

신순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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