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안국선 원작 장윤환 각색 '금수회의록'

clint 2018. 5. 12. 08:26

 

 

구한말의 작가 안국선이 1908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까마귀·개·벌·원앙·호랑이등 동물들이 깊은 산속에 모여앉아 
「인간과의 대화는 과연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금서로 돼있던 안국선의 우화소설 『금수회의록』을 장윤환이 각색, 극단 산울림에서 1988년4월 공연함

 



회의석상에서의 발언을 통해 인간 세상의 온갖 추악한 모습과 부도덕함, 자연에 대한 무관심, 권력쟁취를 위한 인간상호간의 불신과 반목등이 묘사된다. 『사람은 입으로는 꿀같이달게 말을 하고 배에는 칼같은 마음을 품어 마주보고 있을때는 곰살궂게 굴다가도 돌아서면 흉보고 욕하기가 다반사라』(벌)고 비꼬기도 하고 『사내가 여러 계집두는 것은 천리에 어긋남이나 이는 사회적으로 묵인되고 계집이 두 사내를 두면 변고로 아니 어찌 그리 편벽되며 불공평할 수 있느냐』(원앙)며 비판한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금수회의록』은 장윤환씨가 각색,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해내고 있는데 『여편네는 학식이라도 조금 있으면 주제넘게 유순한 부덕을 잊어버리고 시부모 보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물건같이 취급하고…』(까마귀)라거나 『사람들은 우리보고 포악·잔인하다하나 아직도 권력이 총구멍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나 본데…』(호랑이)라는 등으로 요즘 세태를 비꾜기도한다. 회의 결과는 인간과의 대화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그런 인간들은 단죄함이 마땅하다는 쪽으로 기울다가 호랑이의 중재로 인간 행태를 풍자하는 마당놀이 판을 벌이는것으로 막을 내린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미천한 동물들로부터 통렬히 규탄당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인간본연의 실체를 깨닫게한다

 

 

 

화자인 인간이 어느 봄날 꿈을 꾸다가 온갖 짐승들이 회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회의에는 각종 동물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소견을 피력하며 인간들을 풍자, 공격한다. 의장격인 동물이 밝히는 바 회의 목적은, 하나님이 자신을 만들어준 뜻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성토하기 위함이다. 가장 먼저 등단한 까마귀는 ‘반포지효(反哺之孝)’를 들어 인간의 불효를 규탄하고, 두 번째로는 여우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어 외세를 빌려 제 동포를 압박하고 남의 나라를 빼앗는 일제를 비난하고, 세 번째로는 개구리가 ‘정와어해(井蛙語海)’를 들어 분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규탄한다. 네 번째로는 벌이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로 사람의 표리부동함을 규탄하고, 다섯 번째로는 게가 ‘무장공자(無腸公子)’라는 말로 사람의 부도덕을, 여섯 번째로는 ‘영영지극(營營之極)’이라는 말로 파리가 인간의 골육상쟁을 비판한다. 일곱 번째는 호랑이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로써 탐관오리와 흉포한 인간을 비난하고, 마지막으로 원앙이 ‘쌍거쌍래(雙去雙來)’로써 문란해진 부부간의 윤리를 규탄한다. 이상 여덟 마리 짐승의 연설이 끝나자, 화자는 이들의 비판이 다 옳다 여기며 인간의 잘못을 깊이 깨닫는다.

 

 

작가의 글- 張潤煥
1930년대에 출간된 "금수회의록"은 우화형식의 작품으로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었으며 유신시대 훨씬 이전부터 몇번 극단에서 연극화를 시도하였으나 공연허가가 나오지 않아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작품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시차를 감안할 때 “금수회의록"은 분명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 없으나, 막상 각색작업에 있어서는 한문식 고투와 기독교적 분위기가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고생끝에 필자는 원작과 안국선선생의 정신을 살리되 굳이 이 작품의 공연을 시도해온 연극인들의 의도쪽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돌파구를 찾아보았다. 연극인들의 의도란 유신시대 이후 계속되는 억압적 상황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해서 씌여진 이 각색본은 어쩔 수 없이 원작과 큰 거리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각색본에서 우리 인류가 자연을 정복 또는 개발한다는 터무니없는 의욕에 떠밀려 자연을 훼손한 나머지 끝내는 자연과 인간이 다 함께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반적인 상황을 다소 관조적 입장에서, 그것도 극히 저차원의 문명비판적 시각에서 다뤄보았다. 그러나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구체적인 문제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너무도 핍절한지라 관조적 입장을 고수할 수 없었음을 고백해야만 하겠다. 하지만 이같은 필자의 가당치 않은 작업이 문화재발굴이랍시고 수천년 동안 땅속에 묻힌채 온존해온 선인들의 유물을 마구 파헤쳐 망가뜨리는 결과를 빚은 것은 아닐까 저어되는 바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금수회의록”의 원작이 남아있는 한 다른 작가들이 얼마든지 새롭고도 충실하게 각색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자위해보기도 한다. 
당초 이 각색본은 원고지 270매 분량의 작품으로 1, 2부를 연속 공연하거나 각각 독립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나 '산울림' 공연에서는 연출자와 협의하에 제1부를 대폭 압축하였음을 밝혀둔다. 84년에 1차 탈고된 작품이 이러 저러한 이유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다가 임영웅선생의 호의로 이번에 극단 산울림 개관 3주년 기념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보잘것 없는 작품에 정성을 쏟아주신 연출자 심재찬형과 연습에 많은 시간을 내어주신 조명남, 이문수를 비롯한 연기자들과 작곡, 안무, 의상 등 이 연극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장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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