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박조열의 작품 가운데 알레고리 형식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희곡은 1966년에 씌어져, 극단 ‘탈’의 이효영 연출로 1967년 5월 18일에서 20일까지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인 사무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1949년 작/1953년 초연)를 연상시킨다. 두 사람의 극중 인물이 시시콜콜한 말들을 끝없이 주고받으며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는 대장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가<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의 창작 과정에서 일종의 ‘계시’와 ‘자기 확인’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작가 스스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의 이러한 상관성이 단순히 형식과 스타일의 비양심적 흉내내기라고 치부되기보다는 패러디적 글쓰기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글쓰기의 앞선 형식을 본뜨는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적인 글쓰기를 해나가는 것이 패러디적 글쓰기의 근본 이치이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고도를 기다리며>를 모방하면서도 새롭게 씌어진 희곡이다. 베케트가 인간의 부조리한 실존상황을 그리고 있는 데 반하여 박조열은 그것을 민족 분단이라는 현실상황으로 전도시키고 있다. 베케트의 극에는 사회․역사적 맥락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나, 박조열의 극에서는 사회․역사적 현실을 제시하는 데에 초점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두 작품의 패러디적 관계는 정우숙과 김영희에 의해 이미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의 패러디적 상관성이 충분히 논의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한 해석이 미비한 상태에서 연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두 작품의 패러디적 관계에 대한 연구에 앞서서, 작품에 대한 해석 작업이 우선 급한 문제이다. 어떤 텍스트의 해석이 완결될 수 있다거나 패러디적 연구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완결된 후에야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치더라도,<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해석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두 작품의 패러디적 관계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 논문에서는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의 알레고리적 의미를 찾고 확정하여,<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해석에 도달해 보고자 한다. 하나의 작품만을 집중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지금까지의 박조열 희곡 연구들이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다루면서 놓치고 있는 세밀한 부분까지 들춰낼 수 있다는 데서도 이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에서 오브제는 작품 해석에 매우 긴요한 구실을 한다. 이 작품에서의 오브제는 단순히 역사적 시대나 삶의 현장 등, 극의 공간적 배경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기능이 아니라,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기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 작용을 하는 오브제는 ‘두 개의 빈 의자’와 ‘철조망 같은 경계책’이다. 지명이나 인명은 분명하지 않다. 황량한 벌판이다. 이 벌판 한가운데를 낮고 꾸불꾸불한, 흡사 철조망 같은 경계책이 끝없이 피곤하게 뻗어 있다. 멀리 보이는 앙상한 마른나무들. 이 덩그러니 빈 벌판 위를 줄곧 바람이 불고 있다. 빛을 가리는 회색의 구름과 공기. 황량하고 쓸쓸한 세계. 기묘하게도 경계책을 사이에 두고 어울리지 않게 크고 위엄만 부리는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연극적인 순서에 따르자면, 우리는 조명의 안내에 따라 먼저 두 개의 빈 의자와 경계책의 일부분만을 보게 된다. 조명이 확대되면서 비로소 이미 설명한 바 있는 이 벌판의 전경이 드러난다.
무대 지시문이다. 작가는 ‘철조망 같은 경계책’을 사이에 두고 크고 위엄만 부리는 ‘두 개의 빈 의자’를 조명에 의해 초점화시켜 강조하고 있다. 이 극에서 경계책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개의 빈 의자’는 극중인물들에게 어떤 유용성을 지니고 있거나 극중인물의 생활 환경을 드러내고자 하는 오브제는 아니다. 작가는 두 개의 빈 의자와 경계책이라는 오브제에 중요한 비유적․상징적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작가는 이들 오브제가 의미하는 바를 텍스트의 표면에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극히 추상화시켜 제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 두 오브제는 관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것의 내포적 의미는 극의 전개 과정에서 서서히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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