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현묵 '윤동주와 헤어져'

clint 2018. 5. 5. 10:35

 

 

 

 

극단「서전」의 제 37회 공연작품이자 93년 『想華와 尙火』로부터 시작한 〈식민지 문사 시리즈〉그 다섯 번째 작품인 『윤동주』는 시대가 상실한 ‘청년정신’을 되찾아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순수, 순결의 의미를 반추하고자 한다는 작품 의도대로 위의 물음에 적절한 답을 제시한다. 
이 연극의 구조는 이중으로 겹쳐져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 윤동주의 이야기와 그의 생애에 관한 다큐드라마를 만드는 방송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 안에서 관객들은 어떠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될지 잠시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겠으나,전체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두 이야기가 구분없이 하나의 주제에 얽매여져 있음을 알수 있다.즉 극중극(다큐드라마)속의 주인공 윤동주와 극의 주인공 김다은을 시간을 뛰어 넘어 같은 공간 위에 두고,굴욕의 시대에 절대적 양심과 신념을 구현하려는 윤동주의 의지적 모습과 현실에 갈등하고 서서히 타협해가는 김다은의 모습을 대비시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다큐드라마상의 윤동주가 곧 극 속의 김다은이며 그것은 또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극의 전개 과정상의 이러한 구조는 관객들을 극 속의 인물들-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성격과 인물형태―연출자 황부장,작가 김다은,카메라맨 오동철,리포터 정은숙과 각각 나름대로 배치시켜 관객들이 보다 쉽게 작품에 접근-무대 앞에서 무대 위로―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극 전체의 흐름 속에서 두 주인공 윤동주와 김다은의 관계는 마치 시이소(Seesaw)의 양 끝과 같아서 윤동주의 고민이 반성과 깊은 성찰로 나아갈수록 극 속의 주인공 김다은이 자연스럽게 현실에 타협,굴복하여 처음 그녀가 지니고 있던 진실에 대한 주관이 서서히 바래지고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그녀의 변절(?)은 극이 끝날 때까지 우리에게 뚜렷한 ‘부끄러움’으로 나타나진 않는다. 쉽게 바뀌어 버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함.이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어떠한 일에 부끄러워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무대 밖에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둔 듯 싶다.

 

 

 

줄거리

극중의 극인 다큐드라마는 1945년 윤동주의 죽음을 전해 들은 가족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윤동주의 시체를 가지러 간 아버지 윤영석은 송몽규를 만나 윤동주가 이름모를 주사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여기서 방송사 제작팀이 들어와 극의 진행을 끊으면서 사실여부를 두고 서로간의 이견을 보인다. 연출자인 황부장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프로그램의 완성을 위해 드라마틱한 장식을 원하고,작가인 김다은은 드라마틱한 윤색보다는 사실 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주자고 맞선다.오락프로그램 연출자였던 황부장과 연출가 지망의 김다은의 관계는‘사실’과‘의도적 꾸밈’이라는〈다큐드라마〉의 방송 특성상 이미 갈등은 내재된채 시작됐다고 본다.하여튼 윤동주에 대한 다큐드라마는 대체로 황부장의 뜻대로 진행된다.

윤동주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부분적인 윤색이 가해지면서 프로그램은 제작되고,김다은은 고민한다. 윤동주의 북간도 시절,연희전문시절이 차례로 보여진다. 특히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가기 위하여 스스로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을 두고 황부장과 김다은은 심각한 의견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황부장은 이 부분을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결국 관철한다. 김다은은 이런 사실에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김다은의 심리는 같은 시간 속에 진행되어지는 윤동주의 그것과 연결되어「참회록」,「십자가」,「별헤는 밤」등과 같은 윤동주의 시를 그녀가 직접 독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 유학 시절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황부장은 진실여부와 관계없이 윤동주가 무참하게 고문 받는 장면을 삽입시키라고 한다. 그러나 김다은은 확실히 드러난 사실에 기초한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미 이때쯤부터 김다은은 방송사 체제에 조금씩 양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윤동주가 심정적인 독립운동가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 표현되어지는 장면에서부터,현실 속의 김다은은 조금씩 타협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대칭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다은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경찰서 내에서의 장면을 잔혹하게 고문받고 회유와 압력을 받는 장면으로 구성하게 된다. 그 후 후꾸오까 감옥에서의 장면도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윤동주에 대한 약물실험에 의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김다은이 완벽하게 현실에 타협해 버리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에 다큐드라마상의 윤동주는 고문과회유,압박을 받으면서도 결국 양심과 지조를 지키다 죽는다. 그렇게 다큐드라마는 성공(?)을 거두며 끝나고 무대 밖에서 들려오는 제작팀의 뒷풀이 계획에 관한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이 극 역시 끝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