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문순태 '징소리'

clint 2018. 5. 5. 05:59

 

 

 원작은 1978년<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후에 “저녁 징 소리”, “말하는 징 소리”등 5편의

연작을 거쳐 장편으로 완성되었고, 이를 다시 심현우가 전체 7장의 희곡으로 각색하였다.

방울재라는 수몰 지역과 함께 광주라는 공간을 넘나들면서 농촌 공동체 상실의 아픔이

광기 어린 격렬한 징소리로 표현되고 있다.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농촌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를 상실한 사람들의 애환을 느낄수 있다     

 

 

 

징소리는 고향과 가족을 상실한 사람들의 한의 소리이자,

잃어버린 고향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소망의 소리이며

또 근대화의 거대한 물결에 의해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어 가는 소리다.

칠복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머슴처럼 일하며 커서 도시 물을 먹은 순덕과 결혼한다.

댐 건설로 자신이 살던 땅이 물에 잠기게 되자 순덕의 제안으로 광주로 나간다.

농사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칠복은 아내가 식당 일을 하며 벌어온 돈으로

생활하다가 농사 품을 팔러 시골에 다녀온다.

반 년 동안 집을 떠나 품을 팔다 온 칠복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게 되고

줄행랑 친 순덕이를 찾지 못하고 어린 딸과 고향인 방울재로 다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징을 애지중지하여 한시도 놓지 않고 징을 마구 울린다.

낚시꾼과 관광객을 상대로 매운탕 집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마을 사람들은

칠복의 징 소동으로 위기감을 느끼게 되자 그의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마을에서

쫓아낼 결정을 한다. 칠복이 부녀를 쫓아내던 날 밤 빗방울이 굵어지고

칠복의 옛 친구인 봉구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귀기 어린 징 소리에

몸을 떨며 잠을 설친다.

 

 

 

 

문순태(文淳太)는 비교적 늦게, 서른셋의 나이에<백제(百濟)의 미소(微笑)>가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출발하였지만,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이미 출판된 단편집으로는<고향(故鄕)으로 가는 바람>과<흑산도(黑山島) 갈매기>, 장편으로는<걸어서 하늘까지>, 연작 소설은<징소리>및<물레방아 속으로>가 있고, 유명한 나주 궁삼면(宮三面) 사건을 다룬 대하소설<타오르는 강(江)>을 발표하였다. 문순태는 소재는 다양해서 농어촌 사람뿐 아니라 도시의 하층민이나 소시민적 지식인을 취급한 작품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주로 취급해 온 것은 사회 변동기에 처한 가난한 서민의 동태이다.

 



아픔의 응어리를 굿판으로... 조연출/김영환

 

징소리가 레퍼터리로 결정된 것은 지난 봄이였다. 그때부터 각색에 들어간 "징소리"는 팔월 말경에 희곡화 되어 나왔다. 이때부터 우리는 몇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첫 번째의 문제점은 배역 문제였다.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주요배역은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이 상례이므로 배역 문제로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극단 내부에 중견 연기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연륜이 짧은 극단이 갖는 문제점이기 때문이란 것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출자는 과감한 결단을 한 것이다. 우리 극단에 내세울 수 있는 연기자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거의 모두 내부 연기자로 배역을 결정한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첫 연습에 들어간 것이 9월초이다. 얼마간 연습이 진행되면서 연기자와 연출자 사이에 이견이 생긴 것이다. 구체적 표현에 대한 이견이었다. 그것은 그동안 해왔던 번역극의 연기에 대한 통념이 정석이라는 오류였다.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는 이 토론에 참여하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다. 연출자가 요구하는 "징소리"의 테마, ()에 대한 표현방식의 견해차라고, 그것은 연기자들이, 아니 어쩌면 우리 전부가, 우리 민족적 정서가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연기상의 외형적 형태만 습득되어 생각마저도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닐지. 이런 과정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만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아픔, 즉 한()은 서구처럼 노출되거나 폭죽처럼 터지는 것도 아니며 손쉽게 마무리 짓고 결과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픔에 대한 응어리진 마음을 놀이를 통해서 풀기 때문에 모든 행위는 징소리의 여음처럼 영원히 지속 되는 것이다. 라는 일치점을 연기자의 연기의 템포로 조절하도록 유도하였다. 연출방법도 퍼즐처럼 짜 맞춘 그런 감정보다는 연기자가 느끼고 우러나도록 자극을 주었다. 그런 진행 속에서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지방 사투리였다전라남도의 원형은 거칠고 솔직하게 노출된 감정이므로 자칫 작품이 가벼워질 위험 부담을 충청도와 전라도의 중간 정도의 템포를 유지하도록 애썼다. 그것은 작품이 갖는 테마가 일부지방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한민족의 것이라는 거시적인 생각으로 무시할 수 있었다또 하나의 난점은.... 소설이 갖는 연극적 취약성 때문에 소도구를 생략하고 마임으로 가져가 구체화를 피했고 옴니버스식으로 된 작품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템포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마치 작품이 약점을 변명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참신한 젊은 연기자가 갖은 정열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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