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진 '천호동 구 사거리'

clint 2018. 5. 4. 21:53

 

1996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 작

 

 

 

 

고물차와 씨름을 하는 택시 기사 장덕배는 차 밑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정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낮부터 술에 취한 재단사 유달수는 실수 장덕배의 다리를 밟는다. 장덕배는 낮술을 한 유달수를 술에 찌들어 살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충고한다. 유달수는 덕배의 말을 흘려 보내고, 고물차를 처분하고 모범택시나 구입하라며 딴청을 부린다. 과거 천호동 거리 최고의 재단사였던 달수는 양복 팔길이를 짝짝이로 만드는등의 실수를 하는 술주뱅이로 전락하고 만다. 덕배는 달수에게 집나간 달수 처 소식을 물어 본다. 커피 전문점을 경영한다는 막연한 소식을 전하는 달수의 목소리에게 아직 그녀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덕배는 애써 태연한 척 하는 달수에게 부인을 찾아 그간의 잘못을 빌어서라도 재결합하라고 타이른다. 달수는 덕배의 잔소리를 듣기 싫은지 연신 술만 마신다. 천호동 구사거리, 번화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이제는 신사거리에 밀려 창녀촌이나 연상하게 하는 골목이 되어 버렸다. 거리의 쇠퇴와 함께 낡은 택시를 운전하는 덕배와 한산한 양복점을 운영하는 술주정뱅이 달수도 인생의 좋은 날은 다 보낸 것 같이 되어 버렸다. 덕배와 달수는 오랜 이웃답게 정다운 말싸움을 계속한다. 그 사이 다방 종업원 장화이가 지나간다. 아침부터 커피 배달을 가는 장화이는 덕배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장화이는 평소 같은 성씨라며 덕배를 오빠라고 불렀다. 달수는 질투가 나는지 특유의 말솜씨로 덕배와 장화이의 대화에 훼방을 놓는다. 덕배는 달수의 처 진희가 오늘 달수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달수로부터 듣는다. 덕배는 오랫동안 술에 찌들은 탓인지 몰골이 말이 아닌 달수를 보고 불안해 한다. 달수가 몸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진희가 나타난다. 달수는 겸연적게 진희와 인사를 나눈다. 곁에서 지켜보던 덕배는 달수의 몸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달수대신 변명을 한다. 진희는 차가운 말투로 달수와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근처 까페로 사라진다. 진희와 달수가 사라진 것을 멀리서 본 장화이는 덕배에게 둘 사이 관계를 묻는다. 덕배는 과거 진희 대학 시절 달수가 진희의 학비를 대주며 졸업과 함께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신나게 이야기해준다. 그때 달수가 처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의 진행을 묻는 덕배의 질문에 달수는 뜬금없이 금연을 선언한다. 이어 달수는 진희에게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번듯한 남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한다. 덕배는 너절한 구사거리를 떠나 아파트라도 얻어 다시 진희를 데려오라고 호통을

친다. 달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양복점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 간다. 덕배는 사라져 가는 덕배를 향해 구사거리를 떠나 검정 택시를 뽑을 거라며 큰소리로 외친다. 고함은 차차 분노로 변해 아무도 듣지 않는 공허한 공간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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