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양일권 '당신의 어릿광대는 어디로 갔습니까?'

clint 2018. 5. 4. 13:00

 

모노드라마

 

 

 

어릿광대 삐에로의 공연 사진들과 써커스의 선전 포스터들이 붙어있는 분장실에 한 사나이가 큼직한 보퉁이를 안고 서 있다. 부인이 주선해 준 봉재 완구를 팔려고 나온 것이다. 용기가 나지 않아 두 홉짜리 소주를 마시고서야 나간 장사길이었다. 조금은 돈을 벌 수 있겠지 하는 불안한 기대는, 생사를 가름하는 전쟁터같은 시장의 열기에 이내 무너져 내렸다. 시장 안 단속 경비원을 피해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세상 사는 지혜가 뛰어나고 영악한 차주에게, 비관 자살자로 몰려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더군다나 성적 기능의 상실이라는 커다란 아픔까지 겪어야 했는데, 힘든 살림 속에서도 말없이 뒷바라지를 해 주던 부인이 그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가 버렸다. 비굴하고 추하게 변해 버린 모습을 깨진 거울에 비춰 보며 씁쓸하게 웃어 보인다. 곡예사는 깜짝 놀랄 묘기를 연출하고, 악단은 감미롭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고, 과장되게 큰 입과 눈을 그린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들, 공연 후의 멋진 파티를 고대하며 분주히 움직이던, 젊음이 화사하게 피어나던 써커스단 시절을 회상한다. 손님들을 구름처럼 몰아 오기도 하고, 신나게 클라리넷 연주도 하는 그는 어릿광대이자 연주가였다.

 

 

 

 

그의 아버지 또한 외줄타기 곡예사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기막힌 곡예사였다. 통 굴리던 누나, 공중그네 타던 쌍그네, 조련사 파란 아저씨, 불기둥을 뛰어 넘던 불칼 형, 접시 돌리던 얌채 아저씨, 밴드 마스터 박아저씨. 써커스단원들을 회상한다. 조금씩 인기를 더해 갈 무렵 만난 '란'과의 사랑을, 그녀의 아버지는 물론이고 곡예사인 그의 아버지 또한 결사 반대했었다. 다른 사람과 도망가버린 어머니를 저주하는 아버지이고 보면 어머니를 닮은 란이는 탐탁치 않았던 것이다. 끝내 첫사랑은 란의 죽음으로 끝나버렸지만 아직도 아련히 남아 있는 그의 추억이다. 써커스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 근근히 공연하던 중 예기치 않은 화재로 아버지를 잃고 단원들도 뿔뿔이 흩어져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오갈 데 없는 몸이 되어버린 그는 술집 작부였던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별로 경험이 없기에 할 일을 쉽게 구할 수 없게 되자 자연히 부인의 벌이에 의존해 무력하게 생활해야 했다. 공사판 막노동도 했지만 체력이 너무 약했고, 어느 공장의 야간 경비원도 해 봤지만 도둑이 들어 쫓겨나고 말았다. 지난날을 반성하듯 회상하던 그는 문득 진짜 자기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착한 아내를 끝내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아이들의 자랑스런 아빠가 되지도 못한 무능력한 남자가 아닌 어릿광대 삐에로의 모습을 그린다. 점점 그는 환영 속으로 빠져 꿈을 꾸듯 중얼거린다. "어릿광대 삐에로의 영원한 고향, 아버님과 박아저씨의 영혼을 띄워 보냈던 그 강에서 그를 아껴주던 단원들 첫사랑을 심어준 란과 보고 싶은 어머님, 환호하는 손님들, 다정한 사람들을 위한 나의 공연이 더 한층 빛을 낼수 있 도록 땀흘려 정성껏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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