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유정 '만무방'

clint 2018. 5. 1. 09:01

 

줄거리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나왔다. 전과 4범자요 만무방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떠돌이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먹어 본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먹는다.
숲 속을 빠져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이도 5년 전에는 처자(妻子)가 있었던 성실한 농군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기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꾸도 않고 반발한다. 응칠은 오늘 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응오의 논으로 도둑을 잡으러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 속에서 노름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판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에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께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만무방’이란 원래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의미인데, 이 작품은 살아가기 힘든 응칠, 응오 두 형제의 부랑하는 삶을 중심으로 하되, 노동보다는 도박판에 뛰어드는 농촌 청년들의 사행적 행태도 제시되어 있다. 특히, 추수를 해도 아무런 수확도 돌아가지 않는 소작농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선은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식민지 현실에 대해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인 현실 중시의 피상적인 농민 문학이 아닌 당시 식민지 농촌에 가해지는 제도의 가혹함과 그 피해의 관계를 밝히는 한편, 제도가 야기하고 있는 순진한 인간의 기본적인 반항과 불가피한 생존 양태의 문제 등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드러내지 않고 반어로 처리하여 식민지하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풍자적, 해학적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절망감보다는 웃음을 유발시키는 작중 인물인 응칠이를 내세워 형상화한 이러한 토착적 유머는 고전 소설에서도 흔히 보이는 특성으로, 절망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민중 특유의 건강성을 반영하고 있다.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생활 양식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연민의 아픔을 수반한 웃음을 통해 회화적, 해학적으로 드러냄을 그 본질적 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만무방」에서는 그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배제하고 착취 체재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형인 응칠과 아우인 응오는 서로의 성격적인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취득, 분배 양식에 내재하는 모순에 대립하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계급 투쟁적 해결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내 걸 훔쳐야 할 운명’의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피폐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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