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인 아들이 시국 민주화 투쟁으로 붙잡히게 되자 무지한 어머니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비슷한 이유로 구속된 학생들의 무자비한 고문과 자백등으로 매도되자 분연히 화를 참지 못하고 구속자들을 위한 조기 석방과 인권 침해에 앞장선다.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아들을 통해 이를 직접 당한 과부 어머니의 눈물의 모성애와 이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다.
벌려놓은 마당판 앞에 햇불조명이 환하게 타올느다. 터 다지는 앞놀이 풍물이 한 판 벌어진다.
(풍물이 끝나고,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넋잃은 표정으로 흔들거리며 등장한다. 낭송자가 일어나서 시를 읽는다.)
엄인희 [嚴仁喜, 1955~2001.2.25]
서울예술전문학교(지금의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1981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각각 《부유도》와 《저수지》가 당선됨으로써 등단하였다. 이어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희곡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대 후반까지 주로 노동운동과 관련된 문화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 부조리에 관한 비판적인 작품과 권력과 금력에 억눌린 여성의 성(性)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썼다. 그러는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회, 민족문학작가 희곡 분과, 민족극협의회 지도위원, 어린이문학회 희곡 분과 등에서 희곡, 연출을 겸한 작품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2001년 폐선암으로 죽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환경 뮤지컬 《이슬이》와 작가 윤청광의 소설 《고승열전》을 바탕으로 한 음악극 《진감》 등을 무대에 올렸다. 대표작에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작은 할머니》 《비밀을 말해줄까》 등이 있고, 저서에 《제2공화국》 《재미있는 극본 쓰기》 《깃발을 날리는 바람은 힘차다》 등이 있다.

극작가 엄인희는 1955년 12월 7일 인천에서 출생하여 우리시대의 연극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뚜렷한 작품으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다 2001년 2월 25일 4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선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간 작가이다. 그는 우리 무대가 6.25전란이후 재형성 기를 거쳐 하나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 연극을 만나 수업기를 보냈고 80년대에는 신춘문예당선을 거쳐 극작가로 연출가로 연극저술가로 연극무대와 노동현장을 뛰어다니며 다양한 역할과 활동을 보여줬으며 90년대에는 현실참여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1년 2월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우리무대는 사회현상에 대한 독특한 참여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돌입했던 그에 대한 더 많은 기대가 꺾여버렸다는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엄인희는 우리 무대에서 k나의 독특한 여정을 거쳐 온 작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과 활동의 시간표를 보면 대강 짐작 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유도>는 그의 설명대로 우리의 전통 민속극과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을 접목시킨 작품이었고 <저수지>는 부조리극과 우리의 꼭두각시 놀음의 집 짓고 허물기 장면을 활용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두 작품들은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신춘문예당산희곡들이 보여주는 어설픈 면이나 생경스러움이 거의 없이 아주 노련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것은 이 작품들이 보여준 극작형식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브레히트가 되었건 부조리극이 되었건 간에 이들 작품들은 살아있는 우리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마을의 오랜 제의를 무대공간으로 끌어내 희생과 기억, 이어지는 역사를 통한 오늘의 삶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부유도>나 집짓기와 허물기라는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부조리한 삶을 이야기하는<저수지>는 그 주제도 선명하고 구성도 단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말의 매력이 큰 작품이다. 이것은 단순히 신춘문예당선을 목표로 책상 앞에서 애써서 이뤄진 작업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그는 주로 드라마센터와 오태석 사단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연극현장에서 살아왔고 그러한 현장의경험이 신인이면서 노련하고 정리된 데뷔작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엄인희의 작품 세계는 1985년 그가 민중운동 현장의 각종 연극적 작업을 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81년 신춘문예당선이 후 이호재의 일인극<홍백가>, 민예극장 인형극팀과 <바보 얼수 이야기>등을 만들었다. 이런 작품들에서 그는 전통 민속극과 현대 서양연극이론의 만남을 계속 실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85년 이후 그는 민중운동 노동현장 이곳저곳에서 소외계층의 당면하고 있는 실제적인삶 속의 문제를 찾아가며 일하기 시작했고 그는 연극이론보다는 당면문제를 어떻게 하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꾼이 되었다. 이시기에 는<남한강>(1부-7부),<통일 굿 한마당>,<마침내 가리라>, <이제는 하나다>(전노협 노래극),<하늘 아래 방 한 칸>등 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극작만이 아니라 연출도 하고 연극지도도 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보려는 현장의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제 1권인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희곡』에 수록된 환경 노래극<이슬이>나 민족전래동화극 우인극들이나 청소년들을 위한희곡들은 모두가 그 시절의 수확이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장에 필요한 연극을 만들면서 그의 전통연희에 대한 공부나 서양연극이론의 접합이라는 그의 출발기의 단단했던 기초는 든든한 재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무대 현장에서 온갖 일을 가리지 않고 해왔던 현장경험도 큰 밑천이 되었으리라는 점도 짐작할 수 가 있다. 그는 민중운동 현장에서 청소년들과의 만남의 현장에서 연극 만들기 그 중에서도 특히 희곡 쓰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서 현장의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의 제 2권으로 다시 꾸며지는 『재미있는 극복 쓰기』는 그래서 탄생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연극 이론이지배적인 우리연극의 현실을 상당히 회의적으로 보면서 우리의 생활감정과 표현 언어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그는 ‘우리는 늘 진지한 삶을 살아온 민족이다. 그것을 놀이로 만들어 공연했고, 그 놀이가 우리의 연극이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연극을 신극 몇 년 하는 식의 생각에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의 희곡 쓰기는 그러므로 연극에 관한 많은 이론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들 모든 이론과 논의를 서양연극이 아닌 우리연극의 관점에서 보고 풀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유정 '만무방' (1) | 2018.05.01 |
---|---|
한상실 '바다 에 라 쀼땅(바다와 창녀).' (1) | 2018.04.30 |
정미진 '꼬레아 드림' (1) | 2018.04.26 |
문정희 '나비의 탄생' (1) | 2018.04.23 |
권호웅 '낙하산' (1) | 2018.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