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엄인희 '어머니의 주먹'

clint 2018. 4. 30. 09:58

 

 

 

 

대학생인 아들이 시국 민주화 투쟁으로 붙잡히게 되자 무지한 어머니는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비슷한 이유로 구속된 학생들의 무자비한 고문과 자백등으로 매도되자 분연히 화를 참지 못하고 구속자들을 위한 조기 석방과 인권 침해에 앞장선다.
19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아들을 통해 이를 직접 당한 과부 어머니의 눈물의 모성애와 이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다.


벌려놓은 마당판 앞에 햇불조명이 환하게 타올느다. 터 다지는 앞놀이 풍물이 한 판 벌어진다.
(풍물이 끝나고,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넋잃은 표정으로 흔들거리며 등장한다. 낭송자가 일어나서 시를 읽는다.)

 

 

 

 

엄인희 [嚴仁喜, 1955~2001.2.25]

서울예술전문학교(지금의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1981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각각 《부유도》와 《저수지》가 당선됨으로써 등단하였다. 이어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희곡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대 후반까지 주로 노동운동과 관련된 문화 예술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 부조리에 관한 비판적인 작품과 권력과 금력에 억눌린 여성의 성(性)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썼다. 그러는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회, 민족문학작가 희곡 분과, 민족극협의회 지도위원, 어린이문학회 희곡 분과 등에서 희곡, 연출을 겸한 작품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2001년 폐선암으로 죽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환경 뮤지컬 《이슬이》와 작가 윤청광의 소설 《고승열전》을 바탕으로 한 음악극 《진감》 등을 무대에 올렸다. 대표작에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작은 할머니》 《비밀을 말해줄까》 등이 있고, 저서에 《제2공화국》 《재미있는 극본 쓰기》 《깃발을 날리는 바람은 힘차다》 등이 있다.      

 

극작가 엄인희는 1955127일 인천에서 출생하여 우리시대의 연극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뚜렷한 작품으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다 20012254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선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간 작가이다. 그는 우리 무대가 6.25전란이후 재형성 기를 거쳐 하나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 연극을 만나 수업기를 보냈고 80년대에는 신춘문예당선을 거쳐 극작가로 연출가로 연극저술가로 연극무대와 노동현장을 뛰어다니며 다양한 역할과 활동을 보여줬으며 90년대에는 현실참여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12월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우리무대는 사회현상에 대한 독특한 참여의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돌입했던 그에 대한 더 많은 기대가 꺾여버렸다는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엄인희는 우리 무대에서 k나의 독특한 여정을 거쳐 온 작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과 활동의 시간표를 보면 대강 짐작 하고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유도>는 그의 설명대로 우리의 전통 민속극과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을 접목시킨 작품이었고 <저수지>는 부조리극과 우리의 꼭두각시 놀음의 집 짓고 허물기 장면을 활용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두 작품들은 그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신춘문예당산희곡들이 보여주는 어설픈 면이나 생경스러움이 거의 없이 아주 노련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이것은 이 작품들이 보여준 극작형식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브레히트가 되었건 부조리극이 되었건 간에 이들 작품들은 살아있는 우리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마을의 오랜 제의를 무대공간으로 끌어내 희생과 기억, 이어지는 역사를 통한 오늘의 삶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부유도>나 집짓기와 허물기라는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부조리한 삶을 이야기하는<저수지>는 그 주제도 선명하고 구성도 단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말의 매력이 큰 작품이다이것은 단순히 신춘문예당선을 목표로 책상 앞에서 애써서 이뤄진 작업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그는 주로 드라마센터와 오태석 사단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연극현장에서 살아왔고 그러한 현장의경험이 신인이면서 노련하고 정리된 데뷔작을 내놓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엄인희의 작품 세계는 1985년 그가 민중운동 현장의 각종 연극적 작업을 하면서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81년 신춘문예당선이 후 이호재의 일인극<홍백가>, 민예극장 인형극팀과 <바보 얼수 이야기>등을 만들었다. 이런 작품들에서 그는 전통 민속극과 현대 서양연극이론의 만남을 계속 실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85년 이후 그는 민중운동 노동현장 이곳저곳에서 소외계층의 당면하고 있는 실제적인삶 속의 문제를 찾아가며 일하기 시작했고 그는 연극이론보다는 당면문제를 어떻게 하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풀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꾼이 되었다. 이시기에 는<남한강>(1-7),<통일 굿 한마당>,<마침내 가리라>, <이제는 하나다>(전노협 노래극),<하늘 아래 방 한 칸>등 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극작만이 아니라 연출도 하고 연극지도도 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보려는 현장의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제 1권인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희곡에 수록된 환경 노래극<이슬이>나 민족전래동화극 우인극들이나 청소년들을 위한희곡들은 모두가 그 시절의 수확이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장에 필요한 연극을 만들면서 그의 전통연희에 대한 공부나 서양연극이론의 접합이라는 그의 출발기의 단단했던 기초는 든든한 재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무대 현장에서 온갖 일을 가리지 않고 해왔던 현장경험도 큰 밑천이 되었으리라는 점도 짐작할 수 가 있다. 그는 민중운동 현장에서 청소년들과의 만남의 현장에서 연극 만들기 그 중에서도 특히 희곡 쓰기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서 현장의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있었다. 이 책의 제 2권으로 다시 꾸며지는 재미있는 극복 쓰기는 그래서 탄생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연극 이론이지배적인 우리연극의 현실을 상당히 회의적으로 보면서 우리의 생활감정과 표현 언어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 그는 우리는 늘 진지한 삶을 살아온 민족이다. 그것을 놀이로 만들어 공연했고, 그 놀이가 우리의 연극이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연극을 신극 몇 년 하는 식의 생각에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의 희곡 쓰기는 그러므로 연극에 관한 많은 이론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들 모든 이론과 논의를 서양연극이 아닌 우리연극의 관점에서 보고 풀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93년 극단 민예극장이 그의<부유도>를 다시 공연하면서 극작가 엄인희는 그가 오래 떠나있는 극장무대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일반무대에 대한관심은 95<그 여자의 소설>로 드러났다. 물론 그는 민중운동 쪽의 일을 하면서 일반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에 대해 관심을 아주 접은 것도 아니고 무대를 위한 작품을 아주 버려둔 것은 아니었다.<단국 본풀이>(미발표)를 비롯한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작품들이 그러한 증거다. 아무튼<그 여자의 소설>이후는 그의 무대로의 복귀한 시기로 봐야할 것이며 이때부터 그가 타계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내놓은 작품들은 작가 엄인희의 작품 세계에서 또 하나의 획을 그어 구별 할 수 있는 작품들로 봐야 할 것이다. <그 여자의 소설>955월 극단 민예극장에서 강영걸 연출, 이용이 공호석 주연으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그 해 서울연극제에 참가해 상을 받는 등 그 해의 수작으로 꼽힌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보고 듣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가부장적인 가정에서의 남성의 횡포 속에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인종하며 살아온 여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시대의 아픔을 읽는 시각, 그 시대 속에서 더욱 아픈 삶을 살아온 이 땅의 한 여인들의 삶에 대해 풀어내는 얘기 솜씨가 드러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적인 인식이 동시에 배어 나오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그는 마치 봇물이 터진 듯 세찬 걸음으로 연이어 작품을 내놓았다. 96<절망 속에 빛이 있다>, 97<이혼해야 재혼하지>,<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98<김 사장을 흔들지 말란 말이야>,<비밀을 말해줄까>등이다. 이들 작품들은 그가 공부했던 서양의 어떤 연극이론을 앞세우지도 않았고 그가 붙잡고 씨름을 해오던 우리의 전통 민속 연회와 꼭 어디에 닿아있는 것도 아닌 그냥 순수한 이야기들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극작술을 인정받으려는 연극학도도 아니었고 주제와 형식의 실험에 관심을 쏟는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쁘고 너무 강렬한 하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외치고 싶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의 수업과 현장의 경험, 거기서 깨달은, 거기서 길러낸 온전한 생김새의 엄인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절망 속에 빛이 있다>,<비밀을 말해줄까>에서 그는 피가 흐르는 아픔으로 싸늘하고 슬프게 성의 폭력적 구조와 그에 희생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혼해야 재혼하지>는 조금씩 희화화된 어조가 끼어드는 희극적 표현을 원용하면서 심각하지 않은 듯한 어조로 여성과 성, 여성과 사회의 이야기를 한다.<김 사장을 흔들지 말란 말이야>IMF로 경제위기를 겪는 시기에 나온 시사적인 문제를 슬랩스틱 희극수법으로 몰아치듯 풀어냈다. 이들 일련의 작품들은 연극을 위해 주제와 형식을 끌어낸 작품이라기보다 작가가 관객에게 간절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다. 작가 엄인희는 너무 많은 현장의 삶을 보고 듣고 깊이 개입해온 경험을 거치면서 그러한 모든 이야기들을 쏟아내야 한다는 필요와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욕구는 그의 글쓰기에 의해 상당히 선명하게 객석에 전달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외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그의 전부는 분명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외침은 좀 더 성숙한 어조로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한 어조로 다듬고 삭혀서 진저안 자신의 연극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원이고 우리관객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원과 바람은 그냥 방치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지금 우리 주변의 문젯거리가 아닌 좀 더 오랜 이야기들, 나이든 생각들, 역사 속에 옛이야기 속에 뿌리를 둔 뭔가를 꾸준히 탐구하고 실험했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김성종의 소설을 각색한 <만다라>나 그가 새로 쓴 <배뱅이 구설>, <진감국사 행장기>가 그러한 그의 연극에 대한 더 큰 소원의 한줄기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를 굿의 본풀이로 만들어 풀어낸 그의 미발표작인<단국 본풀이>는 그의 이러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제목이고 내용이다. 극작가 엄인희의 작품들은 주제와 소재가 어떤 것이든 간에 항상 가장 직접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식의 여성작가에게 따르기 쉬운 수식어를 어쩌면 거부하는 것처럼 꽤나 저돌적으로 진실의 핵심에 곧바로 돌진하는 여성작가라는 칭호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어딘가 완성 조금 전에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숙제를 남겨놓고 떠난 것 같은 그와의 이른 이별은 우리 무대에 남긴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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