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스튜디오>의 모더니즘이 이기심과 음모와 대중매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얄팍한 행각을 보여준다. 김상렬의 <제3스튜디오>는 이른바 단(丹)신드롬을 비판하는 사회극이다. 이 사회극은 밑도 끝도 없는 신선사상에 넋이 빠진 대중과 그 대중들에게 영합하려 드는 방송매체의 허위의식을 씹으면서 인간의 속절없음을 폭로한다. 어떻게 보면 대중매체는 죄가 없다. 그것을 다루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다.

연극배우 출신의 한 여배우가 자살했다. 그것은 자살처럼 보이는 타살이다.
그녀가 뱃속에 둔 채 함께 죽은 아기의 아빠는 누구인가.
그것은 만공도사의 아이일 수도 있고, 매스컴에 놀아나는 우리 모두의 아이일 수도 있다.
죽은 그녀는 말이 없다.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형사가 그녀가 출연한 방송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매체가 지닌 허구성을 드러내 보이면서 그녀의 죽음이 누구의 것이냐를
우리 앞에 들이댄다. 연극계출신 탤런트는 예술가로서 상업주의와 센세이셔널리즘에서
빚어지는 거짓된 만공도사의 단 신드롬, 이른바 신비를 가장한 미신과 그 미신을 전파하는
과학기기의 조작을 견디지 못한 채 그런 조작의 원흉을 죽이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무대 작업과정을 통해 살펴보면 형사를 통한 객관화의 일관성이 어쩌다 허물어진다.
모든 것이 형사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인데 여주인공의 주관성이
드러나는, 대드는 장면이라든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무언극 형식으로 작가의 의견이
제시되는 경우라든가, 드라마의 허구성을 노출시키게 되는 해변가에서의 작가와 연출자의
모의 등은 객관화의 단절로 비친다.

이승규는 그의 오래간만의 연출에서 가라앉은 연륜을 보이고 동시에 현대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온 방송매체의 허구성을 보여주는데 전혀 흥분됨이 없다. 그는 대중매체의 허구적 구조, 방송 드라마의 잘못된 발상, 진실되기를 바라는 여인의 내면적 진실과 드라마 세계라는 허구의 진실이 일으키는 갈등을 차분히 보여주면서 그것이 결국은 인간적 허위에서 유래하는 것임을 제시하였다. 모든 것은 인간의 거짓됨에서 비롯되었다. 김상렬의 희곡이 그것을 그렸고, 이승규의 연출이 그것을 제시하였다. 권력구조는 없지만 금욕과 명성이 지배하는 방송국이라는 거대한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야유하면서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의 거짓을 고발한다. 그러나 그 고발이 과연 우리의 내심 깊은 곳까지 와 닿는가.

작가의 글 - 김상열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 중에 연극처럼 조화와 결속이 요구되는 것도 드물것이다. 단순한 노동이나 기술만이 요구되는 기능도 아니요 개인의 감성과 영혼이 투합되서 하나의 창의적 공연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선 바보같이 현실의 영욕에 둔갑해야하며 자기 완성을 위한 부단한 혁신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 연극이요 극단의 필수 여건이다. 그러나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 어렵고 이렇게 모인 극단이란 공동체의 운영이 바로 그 사람들이란 이유때문에 오히려 방해를 받는 모순을 되풀이해서 체험하게 된다. 소위 이합집산이란 말이 우리들 연극에서 아주 낮익은 단어이고 그래서 좋은 연극을 만들기에 이처럼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극단 가교의 창단 20년을 맞이하여 근 10년만의 참여이고 더구나 6년만에 작가와 연출로서 이승규형과 만남이 각별한 감회를 느끼게 한다. 더욱 이승규형의 꾸준한 연극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보낸 뉴욕에서의 6년이 극단 가교와 우리 연극계에 좋은 자극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마치 부메랑 이라고 하는 사냥도구가 목표를 향해 비상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듯 세계의 연극을 꿰뚫어보고 다 시 우리에게 돌아온 그 외에 강한 시선이 분명 예사스럽지 않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러나 나는 성급하게 이승규형의 역작을 기대하지 않는다. 닭이 알을 낳기 위해 일터를 헤집고 찾듯이 아직은 여건과 능력의 균형을 잡기 위한 작은 과정이길 솔직히 바랄뿐이다. 본질이라던지 진실이라는 것이 수평으로 흐르는 과정에서 변질되고 조작되는 사회현실의 모순을 텔레비젼 방송국 스튜디오는 압축해서 그려 보았다. 마치 빛이란것이 프리즘의 광학적 질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무지개를 유출하듯, 본질과 진실을 전달하는 모든 매개체 즉 활자, 언어, 영상, 음향이란 프리즘이 대중에게 매개하는 과정에서 본의든 타의든 얼마나 오류를 범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화적 스케치라고 볼 수 있다. 현대라고 하는 문명의 구조를 거치는 모든 정보들은 매개자의 편의에 의해 악랄하게 조작 굴절 될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본질과 개인 사이에는 현실이라는 거리가 유지되며 본질의 시각적 청각적 형상이 현실이라는 강요된 간격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전혀 다른 색체와 소리로서 전달됨을 나는 모르고 있다는 바로 그 모순의 얘기이다. 제3스튜디오는 그래서 그 강요된 간격에 존재하는 변질의 거대한 생산공장이다. 이 연극은 사기꾼도인의 얘기도 아니고 여배우 죽음을 추적하는 추리극도 아니며 더구나 TV 방송 국의 현실비판도 아니다. 바로 제3스튜디오 자체가 거대한 인물로서 아니면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얘기들이 심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재미있게 잘짜여진 지극히 연극적 놀이가 됐으면 한다. 왜냐하면 심각하다보면 무거워지고, 웃기다 보면 허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희곡이 절대적으로 시각화되고 청각화되어 성실한 발상들이 점철되는 제3스튜디오의 특집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 더위에 땀흘린 극단가교의 20년 동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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