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상열 '옹고집전'

clint 2018. 2. 28. 15:18

 

 

 

옹진골 옹당촌 에 성은 옹, 이름이 고집인 사람이 있는데, 마을에서 첫째가는 부자인데, 거지가 오면 밥을 주기 는 커녕 밥통을 깨버리고, 이웃집에서 땅을 사면 배가 아파 며칠을 드러눕고, 늙은 어머니가 먹는 밥도 아까워 너무 오래 산다고 구박하는 불효한 사람인데, 이 옹고집을 보다 못한 하늘에서 옹고집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허벌레 싸벌레“ 라는 하늘의 사자를 땅으로 보내는데, 이 “허벌레 싸벌래” 역시 옹고집을 못 당하고 만다. 이대 하늘에서 마지막방법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진짜 옹고집의 집으로 보내어 진짜와 가짜를 구별 하던 중 진짜 옹고집이 가짜로 판명되어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거지 행세를 하던 진짜 옹고집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나쁜 마음을 뉘우쳐 착하게 살아가게 된다.

 

 

 

 


'가짜'라는 개념은 허위, 조작, 속임수라는 의미외에 부패와 부도덕, 양심의 상실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이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각 분야에서 우리를 시달리게하는 모든 부정적 가치를 총제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마당놀이<옹고집전>은 요즘들어 우리 사회가 부정의 시대에서 긍정의 시대로 틀을 어느정도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미처 청산되지 못한, '가짜 불감증'의 구시대 인습에 의해 파생되는 인성과 도덕성의 붕괴를 냉철히 자성해 보는 계기를 줄 것이다. 가짜에 의해 진짜의 거짓과 허구, '진짜의 가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설정이 흥미롭고 진짜의 내면, 즉 진짜의 실체가 가짜였다는 허와 실의 가치전도 역시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극은 삶을 퍼 올리는 두레박질” -
- “인생도 연극처럼 한바탕 꿈이지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 연극입니다. 연극이 일단 기획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저 빈 공간 무대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 어렵고 두려운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연극쟁이로 30년을 살아온 김상렬씨(55, 극단「신시」 대표)는 연출이라는 일을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서 물을 떠올리는 일로 비유했다. 연극이라는 우물은 퍼도 퍼도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고, 그는 일단 퍼올린 냉수로 갈증을 면해 보지만 또 다시 타는듯한 목마름 때문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또 두레박질을 해대는 것이다. 여름 못지않는 더위를 내뿜는 요즘 그는 가을에 공연할 마당극 「옹고집전」 원고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 극단 「미추」에서 해마다 공연한 마당극을 극단 「신시」가 바톤을 이어받은 것이다. 옹고집전은 마당극 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지만 단순한 재미외에 ‘인과응보’라는 불변의 진리를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 주는가가 지금 그에게는 화두이다. 구룡사 지하에 소재한 극단 「신시」에 들어올 때마다 그는 충전됨을 느낀다. 90년 정우스님의 배려로 구룡사 지하에 극단 사무실과 소극장이 마련될 때만 해도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일부의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시’가 구룡사 지하에 둥지를 틀게 됨으로써 이 세상을 마지막까지 지탱해줄 본질적인 두 요소-종교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됨을 기뻐했다. 위의 법당에서는 우주와 삶의 진리를 제시하는 법회가 수시로 열리고 동시에 지하에서는 신산하고 각박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이 열린다는 것은 흔치않은 인연이다. 또 萬분의 부처님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세상 그 어느 빽(?)보다도 든든한 빽(?)을 느낀다. 김상렬씨는 30년동안 60여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언챙이곡마단」 「종이연」 등 20여편은 직접 쓴 자작희곡이다. 무대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릴 정도로 타고난 언어감각을 공인받고 있는 그가 일관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연극적 재미’이다. “너무 철학적·현학적인 것은 관객이 외면합니다. 연극만의 독특한,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있는 인성을 통해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살아있는 예술이라는 장점을 살려야 합니다.” 요즘 TV와 영화 등이 고도의 첨단 매커니즘을 동원 대중에게 다양한, 감각적·찰라적 재미를 제공하고, 대중오락 등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되지만 그럴수록 ‘연극’의 자리가 중요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인류가 생긴후 가장 오래 벗해온 예술중 하나인 ‘연극’이 갖고있는
고유의 예술성을 활성화시킨다면 연극에서 느끼는 재미는 그 어떤 예술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 “연극이야말로 절대 반복이 있을 수 없는 예술입니다. 배우의 컨디션, 음성톤 하나, 손짓 하나, 그날 그날의 관객들의 반응 하나하나로도 미묘한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고도의 압축성과 상징성으로 인간이 직접 인간에게 메시지를 주는 연극은 그 어떤 예술보다 큰 감동을 주게 마련이지요.”
6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충무로 영화판에 뛰어들었으나 곧 혹독한 좌절을 맛본다. 그는 강원도 삼척 탄광의 막노동판에 뛰어든다. 그러나 거기서도 적응을 못한다. 육체가 견디질 못한 것이다. 이어 남동생의 익사와 누나의 자살, 그리고 아버지의 암으로 인한 죽음…. 참담과 좌절속의 그에게 다가온 것이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는 진리였다. 지독한 절망과 비극의 막다른 골목의 그에게 비로소 절망의 끝에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다가온 것이 ‘연극’. 1년 선배인 이승규씨(현 인천시립극단장)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극단 「가교」 창립에 참여한다. 그때가 1967년. 벼랑의 끝에서 잡은 연극, 이후 연극과의 처절한 공방전을 계속해 온다. 가교 시절 10년동안 그는 극본, 연출뿐 아니라 조명, 녹음 심지어는 막 올리고 내리는 것까지 온갖 잡역을 도맡아 했다. 지방공연, 계몽연극도 많이 했고 소년원, 교도소에서도 수없이 막을 올렸다. 많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내리면서 인생은 한바탕의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허깨비 같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망으로 텅빈 마음속을 어느덧 채워주었는지 모른다. ‘연극은 사람을 다루고 인생을 다루는 것이기에 연출하는 사람도 출연하는 사람도 정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고양되지 않고는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것이 늘 간직해온 철칙이다. 연극인 스스로 풍부한 인간성과 인격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지론이다.
가교시절 이후 현대극장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국내 뮤지컬을 개척한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에비타」 「사운드 오브 뮤직」 「올리버」 「뿌리」 등등. 만해스님을 모델로 한 「님의 침묵」 「그날이 오면」 등 창작 뮤지컬도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번지없는 주막」 「홍도야 울지마라」 등 악극을 무대에 살려내 한국적 창작뮤지컬 개발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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