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강리 미스터리]는 뚜렷한 자기세계를 보여주는 소설들로 오영수 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성석제의 소설<조동관 약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단순한 코믹이 아니라 매우 시니컬한 조롱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풍자에 가까운 문체를 보여주었던 성석제의 소설을 모티브로 탄생한 [똥강리 미스터리] 역시, 일개 건달일 뿐인 ‘강배’의 사망이 마을 사람들에게 끼친 각종의 황당무계한 영향들을 통해 웃음 속에서 사람들의 위선과, 가식 등을 폭로하며 통쾌하고도 씁쓸한 인생사를 담고 있다.
충청도 어디쯤에 있을 똥강리 마을. 이장 선거를 하루 앞둔 밤, 온 마을 사람들이 이장 집에 모여 김일의 레슬링 시합을 보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그는 내일 선거를 주관할 이 마을의 실세인 청년 회장으로, 이강배라는 뛰어난 삼류 깡패이다. 갑자기 꺼져버린 텔레비전 때문에 어수선하게 흩어지는 마을 사람들은 밤새 이 마을의 우물가를 교차하며 각각 속셈 있는 짓거리들로 새벽을 맞는다. 다음날 유세장엔 강배가 나타나지 않아 선거조차 미뤄지고 다시 사람들은 흩어진다. 이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계속되고, 강배는 나타나지 않고.. 하루 이틀이 지나자 마을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강배의 부재 상황에 당황해 하고 있는데, 이 때 강배네 집에 불이 나 강배의 어머니가 불탄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터진다. 불 탄 강배 집에서 강배에게 빼앗겼거나 바쳤던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숨기려던 사람들은 서로 추궁하고 이들 틈에 강배에게 쫓겨났던 전 청년회장 탁수가 나타난다. 탁수는 떳떳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에 강배 대신 군림하려 든다. 계속되는 비에 마을은 고립되고 우물에선 누군지 모를 시체가 발견되고 탁수는 그 시체가 강배의 시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선거 전날 우물가 주변에서의 알리바이를 추궁하며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탁수의 주관 하에 강배네 집의 개를 잡고 잔치를 벌이며 강배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던 사람들의 관계조차 새롭게 재편되는 듯한데.. 사람들은 이상한 징후들을 느끼며 강배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고, 또다시 전해지는 새끼무당의 자살소식과 유서. 보이지 않는 강배의 눈길에 꼼짝 못한 채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탁수는 자신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며 또 다른 엄포를 놓게 되는데...
1969년을 배경으로 당시 시대상과 인간의 이면을 은유와 풍자로 빚어낸 이 작품은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독특한 캐릭터들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주는
뜬금없는 코미디가 적절히 버무려진 코믹 미스터리 추리극이다.
공동창작의 변
<똥강리 미스터리!>는 공동창작 방법의 새로운 탐색과 시도의 과정이자 결과물인 창작 워크샾은 성석제의 소설 <조동관 약전 >을 읽은 각자의 감상을 기본 모티브로 하여 '시골마을, 깡패, 그리고 마을사람들'이라는 소설의 기본적인 틀만을 원용, 인간의 삶에 깃든 권력과 힘의 논리, 이기심과 범죄 그리고 집단의 우매함과 횡포 등을 우화적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충청도 산골 똥강리라는 마을을 지배했던 '이강배'라는 깡패의 실종(죽음)을 둘러싼 미스테리라는 극 형식에, 그곳의 실제 권력자였던 이강배를 억압자이면서도 숭배를 받는 영웅, 그러나 그 이면에는 추잡한 거간과 비리를 품은 지배이데올로기를 은유하는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스스로 지배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 것입니다. 창작워크샾의 세밀한 검토를 거친 후 이를 토대로 '캐릭터 즉흥'이라는 공동창작의 방법을 유지하면서 드라마트루그가 시도되었고, 미스테리의 강화와 강배의 존재감이 증폭되는 드라마적 보완을 위해 '강배의 부활'이라고 보여지는 얘기를 극 후반에 첨가한 후, 이를 다시 배우들의 즉흥과 창조를 통해 완성시킨 작품입니다. 이 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작용했던 '캐릭터 즉흥'이란, 작품의 기본적인 시공간과 커다란 사건의 흐름을 설정한 후 이에 필요한 전형적인 캐릭터를 설정하여 각 캐릭터들이 자신의 입장과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장면과 대사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17세기 무렵 프랑스에서 발전된 코메디아 델 아르떼식의 고정 캐릭터와 유사성을 갖는 이 '캐릭터 즉흥'은 배우들에 의해 역이 창조되고 극이 이루어지는 원형적이고 원초적인 연극제작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똥강리 미스터리>라는 제목은 똥강리의 지배자 이강배를 지칭함과 동시에 '미스테리'라는 극 형식의 표제입니다. 미스테리는 어리석음을 환기시켜주는 극형식입니다. 강배의 실종(죽음)이 발생하고 똥강리 의 체제나 관계들이 혼란해질 때 나타나는 개인의 본능적 이기심과 폭력성들의 작용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란의 절정에서 죽었던/보이지 않던 '이강배'의 모습이 다시 살아나기/보이기 시작하는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보완함으로써 이 미스테리성을 강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강배의 보임/보이지 않음을 둘러싼 똥강리의 모습을 통해, 우연이거나 의도적인 작용이건 간에 집단으 로서의 사람들은 상황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반응의 말들로 '사실'을 생산·확정 · 해석하고, 강배의 '실 종/죽임 - 부활'을 통해 눈에 보였던 강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배에 대해 더 큰 위협과 공포를 느 끼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강배를 죽였을 수도 있지만, 그들 모두는 보이지 않는 강배의 지 배하에, 강배의 권력을 대신하려던 자를 죽이고, 디스테리를 추적하던 자를 회유합니다. 이것으로 강배 의 실종에서 야기된 혼란은 덮어지고 평화를 되찾은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어리석음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집단으로서의 우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다만 겉으로의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들어 내거나 만들어진 말들에 구속되어 사실을 직시하지 못 하고 말로써 진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연이거나 습성에서 오는 상황을 계획이나 조작으로 곡 해하고 두려워한다든지, 그 반대의 경우 우연이나 습성으로 간주하고 묵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그 만들어낸 집단성에 지배당하며 그 보이지 않는 힘의 허상에 매여있지 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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