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데구치 메이, 오오타 유우시 '얼떨결에 종언'

clint 2026. 6. 19. 10:48

 

 

철거가 결정된 오래된 대학기숙사. 마지막 날까지 일주일이 남은 이곳에는 학생들이 
하루에 한 명씩 떠나고, 벽에는 떠나는 이들이 남긴 메시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이곳을 나가는 사람은 모두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이어져 왔다.
월요일 밤, 신타로, 츄키치, 미츠키, 카나에, 사나코는 방에 모여 마작을 하며 보낸다. 
전구가 나가고 다른 방의 전구를 몰래 가져오는 장난 같은 사소한 사건들이 이어지며, 
평소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졸업과 이사 계획이 자연스럽게 언급된다. 
이 공간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용히 드러난다.
가장 먼저 2학년 미츠키가 떠난다. 미츠키는 벽에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평소처럼 웃으며 배웅하지만 방안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화요일, 카나에의 퇴소를 앞두고 사나코와 신타로, 츄키치는 송별회를 준비한다. 
카나에가 예전에 말했던 '뱀 전골'를 준비하며 서프라이즈를 계획하지만, 준비 과정은 
계속 어긋나고 카나에는 이미 이를 눈치챈 상태다. 이 과정에서 카나에는 사나코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불편함을 털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다.
송별회 자리에서 네 사람은 함께 나베를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웃음과 장난이 이어지지만, 츄키치는 카나에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도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카나에는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기숙사를 떠나며, 관계의 어긋남과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다.

 



수요일 낮, 츄키치와 신타로가 남아 기숙사의 일상을 이어간다. 전날 술자리 흔적이 남아 
있고, 또 한 명이 떠나며 짧은 인사를 나눈다. 떠나는 일이 점점 일상이 되어 간다.
목요일, 남은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기숙사는 비어 간다. 방 안에는 점점 물건이 
사라지고, 사람보다 흔적만 남는 공간이 되어 간다. 각자는 마지막을 준비하면서도 
특별한 사건 없이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낸다.
금요일 아침, 결국 신타로까지 기숙사를 떠난다. 방에는 개인의 물건이 남아있지 않고, 
벽에는 신타로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만 추가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나코는 텅 빈 방을 정리하며 기숙사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남겨진 사나코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조용히 마무리한다. 방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동체의 끝을 받아들인다.

 



<얼떨결에 종언>은 일본 극작가 데구치 메이와 오오타 유우시가 공동 집필한 희곡으로, 
철거가 예정된 대학 기숙사를 배경으로 청춘들의 마지막 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노후화로 인해 해체가 결정된 기숙사는 오랜 시간 학생들이 함께 생활해온 공동체의 
공간이다. 작품은 이 공간이 사라지기 직전의 마지막 일주일을 따라가며, 이곳에서 함께 
생활해 온 학생들이 차례로 기숙사를 떠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마작을 하거나 차를 
마시고, 전구를 갈거나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등 평범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보여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대화와 행동 속에서 공동체의 마지막 
시간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기숙사는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축적된 장소다. 벽을 가득 채운 
낙서와 메시지는 이곳을 거쳐간 학생들의 흔적이며, 기숙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 벽에 
자신의 말을 남긴다. 이 행위는 공식적 규칙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관습이다.
이 글들은 기숙사가 단순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극적인 사건 대신 일상적인 행동과 대화가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마작을 하거나, 전구를 교체, 함께 식사 준비하는 장면들은 특별한 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평범한 행동들이 이 공간에서 보내는 마지막 일상이 된다.
작품은 이러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공동체가 서서히 해체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오래 함께 생활해 온 사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말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남아 있으며, 마지막 순간에도 
그것들이 모두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미묘한 거리감과 어색함을 조용히 보여준다.
삶의 중요한 순간이 반드시 극적인 사건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사이에 어느 순간 이 공간에서의 시간이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자연스럽게 끝을 
맞는다. 작품은 바로 그처럼 '어느 순간 '얼떨결에' 끝나버린 시간'의 감각을 포착한다.

 

 

극단 불의전차 한국 초연 (2025. 3월. 소극장 산울림. 곽윤미 역, 연출, 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