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자한 길놀이가 놀이마당을 돌며 흥을 돋우면, 변강쇠 후보들이 등장하여
저마다 자신의 기력을 뽐내고 왁자지껄한 가운데 변강쇠가 선발된다.
평안도 월경촌의 옹녀는 천하절색이었으나 상부살과 청상살이 겹겹이 쌓인
기구한 팔자대로 계속 서방을 잃고, 옹녀의 색을 탐한 동네 남자들은 모두
황천길로 떠난다. 이에 격분한 동네 아낙들의 성화에 자진해서 마을을
떠나던 옹녀는 비슷한 처지의 변강쇠를 만나 서로의 연분임을 알아보고
도방살이에 오르지만, 강쇠가 노름으로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보다 못한
옹녀는 마음 편히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살자고 제안한다.
지리산에 자리를 잡았으나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게으름만 피우는 강쇠에게
옹녀는 나무라도 해오라며 내보낸다. 강쇠는 귀찮은 마음에 마을을 지키던
어린 장승들을 패온다. 이를 본 옹녀는 장승동티날까 무섭다며 뺀 자리에
도로 박으라고 하나, 강쇠는 말을 듣지 않고 어린 장승으로 군불을 지핀다.
강쇠가 어린 장승을 땔감으로 태웠다는 소문을 듣고 분노한 장승들이
팔도에서 몰려와 강쇠를 혼내줄 것을 도모한다.
장승들이 강쇠에게 온갖 병을 도배한다. 옹녀는 강쇠를 살리려 건너 마을
송봉사를 불러와 경을 읊게 하고, 이생원에게 침을 놓아달라지만
효험이 없다. 결국 강쇠는 옹녀에게 수절을 요구하며 옹녀 근처에 얼씬대는
사내는 급살할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다시 과부가 된 옹녀는 혼자 초상을 치를 수 없어 강쇠를 치워주면 같이
살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이에 혹한 승려가 큰소리를 치며 강쇠 시체에
덤비지만 강쇠 혼령의 방해로 죽고 만다.
풍물패도 이 소문을 듣고 옹녀를 탐하여 찾아와 노래하고 춤추다가
강쇠 시체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급사한다.
초란이 역 시 방정을 떨지만 시체를 치우지 못하고 죽는다.
이번에는 뎁득이, 사또, 각설이패들까지 몰려와 송장을 치우겠다고 나선다.
죽은 놈이 여섯, 산 놈이 여섯, 각각 하나의 송장을 치우기로 하는데
그러나 송장을 등에 지고도 모두 다리가 달라붙어 꼼짝 못하게 된다.
급기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달라붙는다. 살풀이를 해야 한다는
봉사의 말에 옹녀는 무당을 불러들인다.
만인의 애원과 옹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변강쇠는 옹녀에 대한 미련을 접고
옹녀의 행복을 빌며 자신의 초상을 흥겹고 화려한 놀이판으로 장식하면서
떠난다. 뒤풀이 한판이 흥겹게 펼쳐진다.

마당놀이 변강쇠는 극단 미추에서 2001년 초연한 작품이다.
전래되는 가루지기타령을 김지일이 극본을 써서 마당놀이화 한 것이다.
원전에서 변강쇠는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변강쇠를 부정, 긍정으로 판별하기 보다는 그의 행위를 당대의 사회적
모순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의 현실적 대응으로 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무하는 어려움을 피하고 손쉽게 장승을 패어낸 것은
강쇠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금기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저항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장승 동티로 죽은 강쇠의 초상을 치르던 중,
초라니, 풍각쟁이 패의 죽음은 강쇠의 끝없는 질투가 빚은 초상살이 아니라
유사 이래 오늘까지 인간이 지닌 온갖 허위와 허욕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는 것이다.

판소리 여섯 마당 중 하나인 '가루지기타령(변강쇠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낯뜨거운 내용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춘향전'보다 성의 표현이 적은 편이다.
조선후기 유랑민을 대표하는 변강쇠와 옹녀에 대한 이야기는 시대상을
해학적으로 나타낸 내용이다. 원래 우리민족은 슬픈 일도
해학적으로 표현하길 즐겨했다. 일반인들에게 [변강쇠전]이라면 성에 대한
자유분방함과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우선 연상되는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변강쇠전]은 성적 표현은 작품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며,
양적인 면에서도 극히 부분적이며, 표현강도에 있어서도 약한 편이다.
사실 이미 학계에서도 [변강쇠전]에서 표출된 색담이 [춘향전]의 묘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러차례 지적되기도 하였다.

작가의 글/ 김지일
2001년 마당놀이로 변강쇠를 선택하면서 우선 검토했던 것은 변강쇠전이 관객 설문조사에서 언제나 가장 보고 싶은 마당놀이 소재의 1위를 차지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당놀이 변강쇠전을 선뜻 채택하지 못했던 이유인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변강쇠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사람들은 변강쇠전이라면 호색하고 정력이 절륜한 강쇠와 남편을 수도 없이 잡아먹은 천하의 음녀인 옹녀가 가다오다 길에서 만나서 벌리는 포르노 급의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옹그러나 변강쇠전의 원전은 이런 일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원전 어디에도 강쇠의 절륜한 정력을 표현하는 대목이 없고, 옹녀 역시 특별히 천하의 음녀라고 오해할 대목도 없다.
전체의 사설을 보더라도 도입부의 강쇠, 옹녀가 부르는 남녀 기물타령이 가장 비속적이라 할만 한데 그 가사는 우리 민요에 흔히 나타나는 성적표현을 그다지 넘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학자들은 변강쇠전의 육담이 춘향전의 그것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변강쇠전은 우리의 고전 작품 중 어떤 작품보다도 사회성이 짙은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마당놀이로서 변강쇠전을 원전에 충실하게 공연한다면 일반 관객들은 자신들의 평소인식과 너무 다른 내용에 당혹할 것이고, 그렇다고 일반인들의 변강쇠전의 인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화나 영화처럼 변강쇠전을 다룬다면 마당놀이마저 상업적으로 타락했다고 지탄 받을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가 수차례 변강쇠전의 마당놀이화를 검토하고도 그 공연을 미루어 왔던 것처럼 판소리의 향유자이며 후원자였던 선비들이 유교적 경직성 때문에 기피한 변강쇠전은 다른 고전에 비하여 그 적층성(積層性)의 두께가 얇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연출가 손진책과 나는 변강쇠전을 원전에 충실하면서 사회성을 확대하여 변강쇠전의 적층에 한 켜의 두께를 더한다는 목표에 합의 하였었다. 이 공연이 마당놀이 원년 멤버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것이니만큼 크게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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