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자살나무'

clint 2025. 9. 23. 17:07

 

 

자살 나무가 서있는 언덕에서 김석호와 최종수가 자리 다툼으로 서로 싸운다.

젊었을 때 곡예사로 활약하다 불구가 된 늙은 석호와 젊은 간질병 환자인 종수의

우스운 싸움에 정신병자인 이순옥이 끼어든다. 순옥은 누군가 자살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으면 다른 모든 사람이 복 받는다는 전설을 믿으며, 죽으러 왔다가 밧줄이

없어 못 죽는 사람이 있을까봐 밧줄을 항상 갖고 다닌다.

셋은 더위와 배고픔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자살할 사람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자살하러 오지 않는다. 석호는 자신이 평생동안 남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살하려 한다.

그의 행동에 감동한 종수와 순옥은 자신들의 물과 빵을 석호에게 전부 준다.

배가 불러진 김석호는 생각이 바뀌어 자살은 하지 않고 그들에게 먹을 걸

계속 가져오라고 강요한다. 석호의 행동에 실망한 종수는 자기라도 자살해서

순옥을 잘 살게 해주려고 하는데 그녀는 이젠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며

그를 몽둥이로 때려 쓰러뜨린다.

 

 

 

<자살나무>는 전설속의 옛 이야기를 섞어 우화적 특성을 드러낸다. 목 매어 자살한 사람이 사용한 끈을 삶아 먹으면 만병이 통치된다는 속설을 중심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엮어놓았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이들의 기다림이란 누구를 기다리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태가 아닌 그들을 구원해줄 구체적인 한 인간을 기다린다. 과연 구원이란 밖에서부터 오는 건지 아니면 자체 내에서 해결해내야 하는 건지 그들은 그것을 해결해낼 힘이 없어 매번 반복되는 기다림을 되풀이할 뿐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다림을 목적으로 한다. 셋은 더위와 배고픔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자살할 사람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자살하러 오지 않는다. 결국, 희망이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인간 본연의 욕망과 본능 앞에서 무릎 꿇는 인간의 희생정신이나 의지를 자살나무의 전설을 통해 우화극으로 풀어낸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몸이 병든 불구이다. 그러나 그들은 몸만 병든 불구가 아니라 정신까지 병들어버린 치유 불가능한 불구자인 것이다. 한번 상처 입은 마음은 또 다른 불신을 낳고 결국 그 불신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는다. 작가는 인간의 희망을 짓밟는 것은 자신들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근삼 교수의 평
정복근의 作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세계의 공통적인 문제를 퍽 객관적인 입장에서 펴낸다. 그래서 때로는 주인공의 성격이 강열하지 못하다는 충고도 받지만 이러한 결점이 또한 장점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덜익은 철학으로 설교하거나 대중 앞에서 自己의 알몸을 보이는 듯한 지나친 노출 증세를 보이는 대부분의 젊은 작가와는 달리 그는 담담하게 흥분없이 劇을 진행시킨다. 때로는 우화적인 수법으로, 때로는 전설 속의 옛이야기를 섞어가며 인간사회의 모순, 그리고 인간의 숙명적인 비극성을 웃음의 테두리 안에서 그려낸다. 이 작품 <자살나무>는 오랜 동안 그를 괴롭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도 요새 서구의 희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다림'그리고 '게임'이 中心을 이룬다. 그러나 베케트의 기다림이나 올비의 게임처럼 의식적인 조작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유쾌하다. 서구 작품의 주제나 표리(表理)을 제대로 소화 못하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름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자기의 것, 우리의 것이 되어 있어 친밀감을 가질 수 있으며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연출자에게 作業을 하는데 많은 여유 를 주고 있다. 따라서 연출 여하에 따라 그 表現은 얼마든지 달라질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鄭福根의 작품을 정규 공연 작품으로 채택한 극단 가교와 이 작품의 진가를 인정, 연출에 성의를 다한 김기주氏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작가의 글 - 정복근

우리는 항상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의 탈피를 갈망하면서 산다.
재수나 운명, 아니면 자비로운 신의 손길이라도 닿아서
현재의 고통스러운 입장에서 빠져나갈수 있기를 원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 자기 외의 어떤 외부적인 구원이 가능할 것인가, 
곰곰히 따져보면 결론은 결국 '아니'라는 쪽으로 낙착되곤 한다.
목매어 자살한 사람이 사용한 끈을 삶아 먹으면 만병이 통치 된다는 
속설을 중심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엮어보는 
것은 다만 우리 모두가 한 그루씩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자살나무의 
그림자에서 스스로 무엇인가 발견해 보고 싶은 안타까움 때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