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은옥 '초원빌라 B001호'

clint 2025. 9. 16. 07:48

 

 

순애는 10대 후반의 딸과 함께 반지하 셋방에 살고 있다.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외동딸 경희가 밥을 잘 먹고 건강해 지는 것과

지하를 벗어나는 것이다. 청소를 업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세상의 모든 때란 때는 다 벗길 자신이 있지만 눈앞의 허물은 외면하고 싶다

경희는 전 우주를 통틀어 엄마가 제일 좋다.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TV만 보는 경희는 전화 오면 하던 걸 팽개치고 달려간다. 혹시 엄마일까 봐. 

하지만 정작 엄마를 보면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땡강만 부리는 어린애다

순애와 경희는 뿌리는 깊지만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 영양결핍 나무와 같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각자 자기방식으로만 이야기할 뿐 소통이 부족하다. 

일부러 죽은 동생 이야기를 꺼내는 경희. 엄마의 관심이 그립다

순애는 셋이서 살고 싶다는 경희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속뜻은 생각하지 않고 ‘3’이라는 숫자만 생각한 탓이다. 

이제 경희는 엄마의 남자친구 경수와 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 

경희는 엄마를 사이에 두고 경수와 경쟁을 벌이게 된다

경수는 인생역전을 꿈꾼다. S대학 출신이라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매일 노트북과 알 수 없는 내용이 적힌 종이로 뭔가를 하지만 동전 한닢

자기 힘으로 벌지 못한다. 쌓여가는 서류만큼 느는 것은 술병뿐이다.

무섭게 대립하던 경희와 경수, 어느 새 둘 사이엔 공동 전선이 생긴다. 

바로 순애의 등 뒤, 눈 밑이다. 왕따인 경희가 학교에 안 가는 것을

경수가 숨겨주는 대신 경희는 경수가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

함구하기로 무언의 약정을 맺은 것이다. 세 식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간다. 

경수가 온 뒤로 조용할 날이 없지만 은근히 다들 바라던 바이다. 

이 소박한 행복은 경수와 경희가 서로를 여자 남자

바라보게 되며 깨져버린다.

 

 

 

이 작품은 여성작가답게 꼼꼼한 면이 돋보인다. 순애와 경희는 마치 진짜 모녀처럼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극 중 경희가 집착하는 보라색 조화, 빨간 튤립, 죽은 동생은 경희의 폐쇄성을 드러낸다. 경수의 술병, 노트북은 이중적인 위선을, 순애의 성모상과 책은 그녀의 삶에 대한 끈기있는 노력을 보여주며 확실한 캐릭터를 구축한다.

덕분에 일상의 소재를 담담하게 이야기 하지만 순애의 입에서 대사가 나올 때, 경희의 목소리로 들을 때 결코 진부하지 않다. 여기에 사실적인 공간과 현실적인 대사가 합쳐지자 육중한 무게감이 실렸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건지 정말 무대 위에 살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눅눅하고 어두운 반지하 셋방은 소품과 세트가 적절히 활용되어 일상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하와 지상에 반쯤 걸쳐있는 창문은 무대에 현실감을 주는 일등 공신이다긴장이 흐르는 순간 터벅터벅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집안을 비추면 다시금 여기가 반지하 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순애가 행복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하고 터지는 폭죽은 순애의 소망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허상과 같은지 보여준다조명과 음향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클로즈업을 하듯 단독조명을 쏘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특수효과의 느낌이 난다. 여기에 공포영화의 괴기한 느낌까지 더하며 이들의 아픔을 부각시킨다이게 무슨 개꿈이고!”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순애가 울부짖을 때 귀가 따가운 기계음과 함께 자동차가 급정지하는 소리는 대사의 느낌을 한층 더 살린다. 텔레비전의 소음, 비 오는 소리 등은 별다른 장치 없이 공간을 활용하는 역할까지 겸했다파국을 맞은 세 명의 등장인물을 바라보다 보면 새삼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 과연 행복한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인가? 물같이 흐르는 게 삶이라는데 어디로 흘러가는지 소망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깜깜한 복도를 헤매는 것 같다는 순애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작가의 글 - 최은옥
이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그저 그런 에피소드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어느 날 저는 은행에 지갑을 두고 왔고, 지갑을 찾기 위해 경찰까지 동원해서 은행내부에 설치된 CCTV의 보관된 필름을 확인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지갑을 가져갔을 법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부수수한 파마머리의 수더분하게 생긴 한 아주머니였습니다. 피로와 근심에 젖은 한 아주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잃어버린 지갑을 꼭 찾고 싶다는 일념은 점점 포기로 변하면서, 한편으론 그 수더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다시 마음을 바꿔 지갑을 돌려주기를 기도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를 영영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보상받으려는 심정으로 이 작품을 구상하였습니다. 누군가 내 지갑을 가져갔다는 소시민적 적개심이 점점,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아줌마"라는 동병상련의 연민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 작품의 인물들이 스스로 입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일상의 한 편린은 존재와 구원에 대한 몇 가지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작품을 쓸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의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떠 돌이로 살다가 집이라는 은신처를 발명해내면서 정착민으로서 삶의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착민들은 여전히 그들이 정착해야 할 한 평의 은신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일까. 국가와 사회 개인이 공모하여 이루어왔던 이 거대한 문명, 정착민의 은신처를 강력하게 규율해왔던 신념들은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 건설된 은신처의 가부장의 지위를 위해 떠돌이 시절의 그 무한한 창의성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남성성은 얼마나 많은 자기기만의 상처를 떠안아야 했을까.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좀 더 능력 있는 수컷이 필요했던 암컷에 기원을 둔 이 시대의 문명화된 어머니들이 지불해야 했던 희생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두 번째 질문은, 아이가 딸린 여성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터에 나가야 할 때, 남겨진 아이의 안전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시대가, 한때 야생의 자유를 구가해 왔던 암컷들을 문명화된 어머니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여성에게 너무 많은 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아이가 딸린 여성이 여전히 유목의 삶을 그리워하고, 자유의 길을 가려고 할 때, 인간적 권리와 모성적 의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골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가부장제로 규율되는 은신처, 그리고 신경증을 앓고 있는 정착민들의 삶은 과연 개선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인물의 "성격"과 "공간"에 대한 형상화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해보려 했습니다. 모성적 의무와 자유의 의지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순애, 순애의 심리적 반영이자 현실적 좌절과 희망의 거점인 경희, 유목적 삶에 기원을 둔 허랑한 남성성의 김 씨. 여자와 어린이 그리고 남자는 중앙집권적으로 문명화된 이 사회의 대표적인 경계인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경계인들이 거주하는 초원빌라라고 하는 낭만적 이상을 담은 목가적인 이름의 공간도 사실 공간의 한계상황을 지시하는 반지하 집에 불과합니 다. 인도의 종교사상은 "신체집우주라는 동일시의 상징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세 인물의 상처받은 영혼이 거주하는 빛이 들지 않고 헐벗은 반지하 집은 순애의 자궁이자, 헐벗은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혹을 깨달아야 할 나이에 악몽을 꿉니다. <초원빌라B001호>가 일별했던 삶의 아이러니, 이 악몽의 중심과 혹은 주변에서 함께 해주었던,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 그리고 사랑을 전합니다. 

 

최은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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