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성현 '동시대인'

clint 2025. 9. 15. 11:49

 

 

동시대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 여기를 살아내고 있는 걸까?
<동시대인>은 두 사람이 등장하는 45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장면들은 순서가 따로 없고 대화가 나눠지는 곳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모두 다른 장소, 다른 인물이 모두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극이다.
이들은 성 정체성이나 성별이 같거나 다른 인물들이며, 

나이 차이가 안 나기도 하고 조금 혹은 많이 나기도 한다. 

친구 사이일 때도, 연인, 부부 사이일 때도 있고, 직장 정료나 선후배, 

때론 낯선 사이일 때도 있다. 이들은 거실에서, 공원에서, 교실에서, 

이와 비슷한 그 밖의 장소에서, 꿈 해몽에 대해, 수학 문제 풀이에 대해, 

소개팅에 대해, 이와 비슷한 그 밖의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의 시대라거나 무언가의 시대가 아닌 동시대를 동시대로 

사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1. 공원에 자원봉사 나온 도우미들 2명이 행사전에 무단 탈출하는 이야기
2. 편의점사장이 일 잘하는 직원을 부득 해고하는데, 직원은 왜 해고되는지 불만이다. 

사장은 고민한다. 아는 친척이 취업 부탁 때문이다. 
3. 백화점 테라스에 여고객 둘. 꽃꽂이 강의를 듣는 친구얘기에 솔깃한다.
4.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연인, 해외로 이민갈까, 여행 갈까하는 고민 뒤에 

남자는 알바하고, 여자는 취업시험 준비하는 하루의 고달품이 묻어나온다.
5. 회사휴게실에서 여과장의 전화를 엿들은 신입여직원. 

사랑스럽게 전화하던 과장의 날카로운 지적에 움찔하는 여 신입.
6. 회사휴게실에서 남자 직원 2명이 비슷한 나이의 차장을 흉본다. 

이들은 웨딩 촬영 기사들이다.
7. 고교 교실 학생2명이 수학문제를 푼다. 학생1이 풀겠다고 하다 못풀어 

친구한테 부탁한 건데 학생2도 헤맨다. 
8. 여고생 둘이 젤리를 먹으며 초등 얘기를 한다. 2가 1에게 그때 남자애한테 

초콜릿 몰래 선물한 거를 말하자, 딱 잡아떼는 1. 그런데 그건 사실이었다.
9. 누님 같은 분의 서류신청을 도와주는 남자. PC로 모두 자신이 해주는 것이 

불만. 향수냄새도 고약하고. 핸드폰 온 것처럼 급히 통화하고 나간다.

 

 


10.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 둘, 사장과 과장쯤으로 보인다. 

새로 들어온 친구가 금요일만 되면 땡- 하면 퇴근하는 걸 각자 추론한다.
11. 헬스장이다. 친구인 회원1, 2가 운동중이다. 회원1은 대충하고 가자 하고, 

2는 좀더 열심이 한다. 회원1은 투덜거린다. 혼자 할거면 왜 날 끌고 왔냐고... 
12. 연인 사이로 보이는 남녀가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온 걸로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속마음으론 아는 번호이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13. 50대 남녀로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인데 성격은 정반대다. 여자는 젊은 애들 

떠들고 제멋대로 하는 거에 불만이고 남자는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잖다.
14. 닭집에 간 50대 남녀. 부부인 듯. 그런데 요즘 조류독감이 유행이라 

여자는 꺼리고 남자는 백숙을 시킨다.
15. 영화를 보러 극장앞에 간 두 친구. 친구1이 영화를 고른다고 하는데 

2는 볼 게 없다고 말하고 티격태격한다.
16. 약국에서 처음 만난 60대 여성이 물에 대해 얘기한다. 조금 안다고 손님1이 

물을 차게 먹지 마라는 둥 잔소리에 손님2도 비슷한 나이에 지지 않으려 한다.
17. 교실에 남아있는 남학생이 심심하다며 책상을 뒤져 일기를 훔쳐 읽는다.
여학생이 주의를 주지만 막무가내다. 여학생은 포기한다.
18. 여교사가 학생을 불러 봉사활동 추천서를 보여주고 이 활동을 권한다. 교우관계도

넓히고, 특히 입시점수 가산점이 10점 이상 된단다. 갑자기 학생은 눈이 커진다.
19. 뉴욕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 왔다가 친구집에 왔다. 예쁘게 베란다를 온실로
여러 꽃들을 키우는 주인.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공허하다.
20. 카페에서 옆자리의 남녀가 싸우는 걸 보고 껴들어 말리자, 왜 그래, 

남녀의 옥신각신하는 이야기다.

 

 


21.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주식하는 친구를 보고 할까말까 고민하는 주부의 고민. 

"쟤 대박나면 배아플 것 같다는" 독백... 이해할 것 같다.
22.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일꾼이 어젯밤 돼지꿈을 꾸었다고 로또나 사야겠다 하고
말리는 동료와 옥신각신한다. 한두번 로또 산 게 아닌듯.
23. 담배를 피우며 선후배가 얘기하는데, 후배 여자 요리사가 실력도 좋고 예뻐 

후배한테 소개시켜주려한다.. 마지못해 응하는 후배, 딴 소개팅을 취소하고. 
24.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여자. 곧 무슨 발표를 해야는데 어딨나고 

찾으러 오는 동료팀원. 발표 망치면... 으름장을 놓는다.
25. 취준생 친구와 같이 사는 자취방. 1이 오늘 면접이라며 단장을 한다. 

2는 얼마전 면접에서 떨어졌다. 2의 엄마가 1에게 전화가 오자, 2는 긴장한다.
26.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을 뽑는 두 사람. 친구다. 현금 세일하는데서 뭔가 

사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며 속말을 독백하는게 재밌다.
27. 합창반에서 제비뽑기로 독창에 걸린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대신 해달란다.
둘은 서로 좋아하는듯 실랑이가 오고간다.
28. 남여학생이 교실에서 회비 사용한 것 정리하고 있다. 여학생이 할 일을 

남학생이 잔소리 들어가면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녀를 좋아하기에.
29. 강아지 입양을 놓고 고민하는 친구. 그에게 마지막이라고 부축이는 개 주인.
30. 노인 부부가 서로 운동을 해야한다면서도 물한잔 떠달라는 것도 다리가 

아프다며 핑계댄다. 그리고 또 까먹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

 

 


31. 경비와 택배기사의 하루다. 종일 경비 모니터를 보는 경비와 

바삐 물건배달하는 택배기사가 대비된다. 
32. 가정주부 둘이 시장에 장보러 와서 옥신각신한다. 한사람은 빨리 싸고 

가까운 데서 사자는데 다른 주부는 터, 과거 인연, 좋은 기억으로 사려한다.
33. 옷가게에 옷을 사러 둘러보는 20대 여성 둘. 서로의 생각과 

사려는 옷에 생각이 틀리고 서로 합리화 한다.
34. 이삿집 배달 차량에 운전자와 탑승자. 운전자가 자기 동네로 지하철이 뚫린다고 

좋아한다. 셈이 나는 친구는 빨리 이사가라 한다. 분명 전셋값 오른다고.
35. 친구와 같이 신작소설을 사러온 구매자는 친구의 그 책 작가의 

사생활 험담에 왜 친구랑 같이 왔는지 후회한다.
36. 집안 일을 가지고 서로 옥신각신하는 젊은 부부의 속내...
37. 전철 안. 친구와 같이 가는데 반대편 좌석에 대학동기가 있고... 

그 옆에 여자가 자신이 사귀었던 여자다...

 

 


38. 체육시간에 고교생 둘이 잡담한다. 학생1이 반장이 요즘 쟤랑만 같이 있다고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친구는 조목조목 반박한다. 
39. 전셋집을 보러온 부부. 몇 집 중에 지금 본 집이 제일 맘에 든다. 

그러나 좀 비싸다. 부부는 서로 갈등한다.
40. 학교 담을 넘어 땡땡이 치려는 두 여학생의 의지가 서로 부딪친다.
41. 발레파킹 주차알바를 하는 청년둘. 그중 알바1은 고급차종을 파킹하며
마치 자기 차인양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42. 회사 옥상에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있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고 

비흡연자는 초콜릿을 먹는다. 서로 흉보면서.
43. 등산을 온 두 사람. 종친회 명부를 새로 해야한다면 옥신각신한다.
나이는 등산2가 많으나 항렬은 등산1이 높다. 서로 푸념이다.
44. 미장원에서 중년여인 둘이 아들걱정인듯 하다가 자랑으로 바뀐다.
45. 자취방에 두 명의 여자. 동생이 알바 면접보러 가기에 톡톡 쏘면서도 

화장해주는 언니, 풀어지며 화장하는 동생.

 

 

 

현대는 개인의 시대라고 한다. 점점 많은 이들이 혼자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성에도 함정은 있다. 자신만을 돌보다 보면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연대감마저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내가 무심코 하고 있는 작은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공유 감각이 묻어있다. 하나로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지만, 모아 놓으면 동시대의 인간 전체를 연결해주는 말과 행동들. 이 작품은 이것을 동시대 감각이라 부르며, 이 감각의 회복을 통한 ‘연대감’을 이야기한다. 예술 작품은 언제나 동시대를 향한다. 특히 연극은 동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 줄 사건이나 인물을 찾곤 한다. <동시대인>에서는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이 동시대다. 모든 순간을 그려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호명되지 않던 순간들을 무대에 불러올 수는 있다. 관객들 삶의 매순간이 그대로 동시대라는 걸 말하기 위해, 그리하여 동시대를 나 자신의 순간들로 사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작품은 ‘순간’을 이야기한다  

 

 

 

<동시대인> 작가의 글: 전성현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수많은 작가들은 인간 본성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을 탐구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한 미지의 영역은 일상에서 갑자기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더 쉽게 드러납니다. 그러니 작가들이 그런 상품을 그려내려 하는 건 당연한 전략이라 하겠습니다. 특별한 상황을 던져놓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 진지한 작업이며 존중 받을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판단하는 데는 본성을 보는 걸로 충분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인간본성을 이해함으로써 스스로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스스로의 추악함을 고치는 모습보다 본성에 원래 그렇다는 핑계 뒤에 숨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이 시대의 절망이 생존을 미끼로 인간을 점점 움츠려 들게 하기 때문이겠죠. 이런 때엔 본성의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일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성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도, 그 속에 추악한 면이 아직도 꽤나 숨어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위대한 면이 남아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혹, 그런 본성의 영웅이 아직 남아있다고 해서 그에게 이 시대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알려지지 않은 본성의 추악함이 더 드러난다고 해서 우리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시대의 희망을 찾는 길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본성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그럼 무엇으로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저는, 인간은 스스로 완성해가는 것이며 현대인은 더욱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무엇을 하느냐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게 추악함이든 탁월함이든 본성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그리는 것을 조금 비열한 전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나 지금껏 쌓아온 것들이 아닌, 날 때부터 지닌 무언가로 그를 판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절망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해도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인간 본성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서가 아니라 훤히 드러난 우리 시대의 우리 모습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합니다. 영웅을 찾아내려고 해선 안됩니다. 영웅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나약한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개인의 확고한 지배로 되돌아가는 것이 반동이라면, 영웅 찾기라는 것도 어쩌면 시대를 거스르는 움직임이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의 시대라거나 뭔가의 시대가 아닌 동시대를 동시대로 사유하는 것.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진 흐름 속에 있다고 여기더라도 모든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태어나기 전으론 갈 수 없고 죽은 후로도 갈 수 없습니다. 거기에 인간의 비극과 희극이, 가소로움과 위대함이, 고통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시작과 끝에 갇혀있는 인간. 인간은 자기 생의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동시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 동시대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동시대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동시대인이 될 수 있을까요? 

 

전성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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