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노경식 '강건너 너부실로'

clint 2025. 4. 27. 06:29

 

 

임진왜란이 지나가고 또다시 터질 정유재란으로 온 나라가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전라도 장성의 맥동마을 '김남중'의집안도 그런 나라 사정에

대비한 준비로 부산하기만 하다. 김씨 집안의둘째 며느리 '기씨부인'은 왜란으로

시아주버님과 조카딸을 잃고 화병으로 돌아가신 시부모의 상을 치루었으며,

남편마저 4년째 생사를 알지 못한다. 게다가 맏동서 '태인 박씨'는 난리통에

실성한 기미가 있다. 맥동마을 강 건너편의 '너부실'은 기씨부인의 친정이다.

그곳에서 부인의 오빠 '기효증'이 찾아와 곧 전쟁이 있을 테니 미리 친정으로

피난하라고 한다. 부인은 그러나 양반가의 아녀자로서 집을 버릴 수 없거니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려야만 한다고 말한다.

기효증은 그런 누이의 태도를 격려한다.

 


마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기씨부인은 창고에 모아 둔

약간의 곡식을 모두 내어 준다. 또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학문에의 정진과

나라에 대한 충성을 올곧게 가르치며 밤낮으로 남편의 무사함을기원한다.
기씨부인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어린 아들의 공부를 권면한다. 부인과 아들은

친정 '너부실'에서의 평화롭고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며 감상에 젖는다.

그날 밤, 부인의 집 창고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도둑떼가 침입한다.

부인은 의연히 그들과 맞선다. 그때, 마을의 마지막 수비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은 가족을 이끌고 친정 '너부실'로 피난을 결행하게 된다.

강의 절벽 즈음에 이르러 배를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왜병 서넛이

그들을 둘러싼다. 실성한 맏동서는 두려움에 못이겨 절벽아래 강으로 뛰어들고

어린 아들은 왜병에게 잡혀간다. 기씨부인 역시 위험한 곤경에 빠졌으나

하인 덕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왜병의 손아귀에 잠시라도 잡혔던

자신을 수치스러워 자 신의 팔뚝을 은장도로 자르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정유재란이 끝난 뒤 부인의 친정 식구들과 살아 돌아온 부인의

남편은그녀의 정조와 충성심을 높이 기린다.

 

 

 

“강건너 너부실로”는 전라도 장성군에 전해 오는 팔뚝무덤의 전설을 소재로 한 것이라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1597년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이른 정유재란 때의 일로 학덕이 높은 장성에 사는 하서대감 집안 며느리 기씨부인의 절개와 정절을 이야기한 것이다. 미증유의 국난 속에 겪는 사대부집 며느리 기씨부인의 비극적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오늘의 시대정신에다 대비시키고 재조명 한다. 역사의 수난 속에서도 양반이나 상민 모두가 내 집, 내 조상을 잘 보전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어우러져 민족의 생명력과 자존성과 자주성이 영원한 미래로 이어지는 민족의 생명력을 키워온 것이라고 본다.흔히들 우리의 역사를 가리켜서 수난의 역사라고 한다. 이러한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져온 생명력은 악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백성들의 저항정신과 선비들의 고결한 정신이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이다. 사대부집 며느리(기씨부인)을 통해 선비사상의 일면을 단순한 도덕적인 훼절이 아닌 연면히 흘러가는 피(혈통)의 정체성과 당위성을 재조명해 보고자하는 것이다. 기씨부인은 남편 김남중이 의병에 참전한 채 생사를 모르고 있는데 또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난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다. 그러나 대를 이을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홀로 된 동서와 어린 종년, 모두 왜병에게 부로(포로)로 끌려가고, 기씨부인 자신도 부정한 왜병들에게 손목을 잡혔으니, 이 왜병에게 더럽혀진 자신의 팔뚝을 은장도로 자르고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심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허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렇게 논리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기씨부인의 팔뚝 이야기가 불가사의한 것이지만, 기씨부인의 서릿발 같고 대쪽 같은 내면세계를 설득력있게 표출함으로써 이 시대의 녀성상이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에다 접목시키고 잘 키워나가야 할 것 이다. 

 

 

 

"팔뚝무덤" 이야기 - 작가 盧炅植의 글
내가 전라도 地方에 전해 오는 "팔뚝무덤"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극히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지난 83년 여름에 나는 전라도 남쪽 지방을 여행한 일이 있다. (...) 잠시 光州에 들렀다. 차시각도 알아보고, 점심 요기도 할 겸 광주 어느 밥집에를 들어갔는데, 정말 뜻밖에도 우연찮게 그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張某 연극인을 반갑게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저런 담소 끝에 결국 나는 "팔뚝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 그로테스크(?)하고 장렬한 죽음에서 일종의 충격과 흥분을 느꼈다. 여기서 작자는 한 사대부 집안 젊은 여인의 비극적 삶과 죽음을 통해서, 흔히들 민초라고 불리는 민중적 삶과는 또다른 의미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곧 당시의 시대상황과 단순한 도덕적 굴레를 뛰어넘어서,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우리 민족의 혈통의 순수성에 대한 自己 거부이자 한 인간의 지키기 위한 자기투쟁이며, 갈고 닦아야 할 선비사상의 일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자는 굳이 "정절"이니 "수절" "훼절"이니 하는 낯익은 어휘들을 피하고자 노력하였음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이 졸고는 전적으로 작자 자신의 허구와 상상임을 밝히고 행여 잘못과 소홀함으로 그 집안에 누를 끼쳤다면 넓은 이해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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