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신우암 말기환자이고 노파는 간질성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을 이 병원에서 보내며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인은 과거를 망각한 그 노파가 어떤 존재인자를 쉽게 알아차린다.
결혼 직전에 충격적으로 이별한 '잊지 못하는 여인'이다.
두 사람은 학생시절에 의정부에서 서울까지 함께 기차로 통학한 첫사랑의 연인이자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였다. 통학의 낭만과 첫사랑의 애틋함이 풍기는 과거가 떠오른다.
남동생을 대동하고 군부대에 위문을 갔다가 동생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동침하고 온
장래의 예비부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자 모친의 결혼 반대로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고
이렇게 불치의 환자로서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이유는 출산하기에 허약한 체질이라는 막연한 단정에서 비롯되었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다시 우연이 된 둘의 과거가 노인에 의해 되살아난다.
노인의 아내는 불치병 환자로서 늙은 남편에게 부담 주기 싫다면서 이미 자살하였다.
노파의 남편은 환갑에 이혼하고 연하의 제자와 재혼, 다시 이혼하고 호주로 떠났다.
그 아들은 며느리가 자식을 두고 가출했고, 재혼해서 어렵게 가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렇게 모자의 인생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아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사업의 재기를 위해 어머니 소유의 건물을 팔려는 의도이다.
아들들 만나면서 노파의 기억력은 기적적으로 되살아난다.
노파가 노인의 실체를 알아 보는 순간, 노인은 병이 악화되어 사경에 이른다.
노인 곁에서 마지막 길을 지키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부동산 위임장에 서명을 강요한다.
사자와 생존자의 질서가 다른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자리에서
노파는 아들에게 사자가 아들의 친부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나타낸다.
노인은 숨을 거둔다. 이렇게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토벤 소니타 <템패스트>의 울림 속에서 끝난다.
'동행'은 노인 전문 요양병원에서 젊은 날의 연인이었던 두 노인환자가
재회하고 끝내 사별하게 되는 사태를 그린 작품이다.
삶의 우연성과 필연성올 노인 환자들을 통해 절묘하게 부각시킨 수작이다.
희비극적인 요소들도 잘 조화되어 삶의 내면성과 그윽함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노년의 애뜻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은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뒷방 늙은이로 취급하는 그들에게 더 진한 사랑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한 개인의 역사이고 인생임을 우리는 나이가 들어 깨닫게 된다.
한나라의 역사가 중요하듯 한 개인의 역사를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두 남녀가 삶의 황혼에서 기적 같은 만남을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오직 사랑을 통해 다시 한번 '삶의 의지'와 '꿈'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진솔하고 애절하게 보여준다.
작가의 말 - 윤대성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
세상에 단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죽는 것 일까?
우리는 왜 사랑하고 서로 미워할까?
슬픔은 무엇이고 분노는 무엇일까?
여기 죽음을 기다리는 두 남녀가 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의 삶이 있는 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요양소에서 만난다.
남자는 아내가 자살한 충격 때문에 삶을 포기한 인생이고, 여자는 뇌졸중으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껍데기뿐인 삶을 유지하면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여인이다. 그런데 그 두사람이 젊은 시절의 첫 사랑이였다는 사실을 남자가 기억해낸다. 60년전의 사랑의 흔적을... 남자는 여인의 기억을 살려주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리고 서로의 과거 그 추억을 되살리면서 죽어간다. 인생에는 슬픔만이 있고 상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도 간직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죽음이 뭐고 살아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어 이 작품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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