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은희 뮤지컬 '오! 해피데이'

clint 2024. 11. 17. 08:17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너무 남발하여 보스에게 날개를 
빼앗기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그는 보스가 선택한 남자와 자신이 선택한 여자가 
진실한 사랑을 나누게 되면 날개를 되찾을 수 있다.
벤처 사업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사이버 세계에만 빠져 있는 수로와, 
쇼핑을 좋아해서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순정이 
선택된 인물들이다. 순정은 부자로 보이는 수로를 적극적으로 유혹하지만 
수로는 구속의 올가미가 될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결혼 이벤트 업자로 변신한 에로스의 중재로 둘은 서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계약 하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수로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파탄의 조짐이 보인다.
수로는 돈이 떨어지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순정을 의심하게 되며 
순정은 그런 수로에게 실망하게 된다.
에로스가 날개를 다시 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사라진 것일까? 
날개를 달고 무수히 화살을 날리던 옛날의 영광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에로스는 순정과 수로의 마지막 가능성에 온 힘을 기울이는데....



이 작품은 ‘조건부 사랑’ 대 ‘순수한 사랑’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여 새로움과 재미를 주고 있다. 사이버세계에 중독된 수로나 쇼핑에 중독된 순정의 삶은 뭔가에 중독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의 외로운 자화상이다. 번개팅으로 만나 러브호텔로 직행하는 풍속도는 찰나적 사랑과 순간적 쾌락이 난무하는 현실의 극단을 보여준다. 
수많은 결혼 이벤트 회사들이 생겨나고 정보화사회에 걸맞게 컴퓨터에 입력된 온갖 정보들을 통해 남녀의 짝짓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조건이 잘 맞으면 결혼하고 그 조건들이 소멸되면 이혼하는 계약 결혼, 또는 애초부터 그 조건들의 부합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계약 동거도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수로와 순정은 뜻밖에도 위기의 과정을 겪으며 최초의 안락한 조건들이 사라져버린 상태에서 오히려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물론 이처럼 행복한 결말은 매우 성급하고 작위적이다. 두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심각하게 변화되는 심리적인 추이가 치밀하게 구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유쾌함과 행복감을 안겨주려는 뮤지컬의 속성상 이런 결함들 은 쉽게 눈감아진다.
에로스로부터 수로의 친구, 결혼이벤트 업자, 유럽 관광지의 카메라맨과 뱃사공, 포장마차 주인과 카페의 바텐더, 심지어 여자 역할로까지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는 에로스 역의 연기를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뮤지컬이다. 

 



작가의 글 - 오은희
사랑과 결혼의 합일점을 찾아서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엮어있다는 것은 참 많이 불편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리고 사랑은 점점 식어가서 무덤덤 해진다. 사랑이란 세월 앞에 무심해 지는 거니깐. 그리고 이혼을 한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 무렵 다시 새로운 사랑하고 재혼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결혼일기"에서 해설자는 결혼에 대한 회의주의자였다. 일종의 독신주의라고 할까? 난 그 해설자를 에로스로 바꿔놓았다. 독신주의와 에로스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결혼일기"와 "오! 해피데이"의 간극은 크다. 하지만 그 간극이 뭐든 간에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 골치 아픈 세상 좀 웃으면서 살았으면 하는 게 내 원칙이니깐. 

 

오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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