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개'는 19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이다.
지금은 전보다 못하지만, 당시만 해도 신춘문예 당선은 대단한 영광이요, 성취였다. 요즈음 같으면 방황을 시작할 나이에 그는 방황을 끝내려 하고 있으며 그 계기로<들개>를 창작한 듯 보인다.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쓴 단막작품이어서 짧은 탓도 있지만, 얼핏 보면 이 희곡은 미완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앞에서도 잠간 언급했듯이<들개>의 결말도 작가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완전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단막으로 처음 연극계에 데뷔하는 전진호는 이 짧은 작품에서 뒤에 발표하는 희곡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주제적 특징 을 이미 다 설정하고 있다. 즉, 분단과 전쟁으로 야기된 가족의 가슴 쓰린 아픈 문제 하나를 던지고 그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제시한다.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풀면서 크로노스 궁전의 미로에서 빠져나오듯이 작가가 던진 실타래를 쥐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우리 현대사의 딜레마에 부닥치고 만다. 작가가 제기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의 상처까지 끌어안아야만 한다는 문제의 근원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들개>는 단막 작품이다. 무대는 남쪽의 어느 항구. 허름한 선술집 앞이다. 때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이다. 전쟁에 가족과 헤어지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이 선술집을 차리고 살고 있다. 평양댁은 전쟁 통에 가족을 모두 잃은 과부이고 들개는 가난으로 해산을 잘못하여 아내와 아이 모두를 잃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홀아비다. 들개는 전쟁 통에 고아가 된 순나를 데려다 기르며 선술집 진남포를 꾸려간다. 북에 남겨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는 태산은 벌써 10년째 항구에 배만 들어오면 부두로 나가 승객 가운데 아내가 섞여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막이 오르면 진남포 댁에 하숙하고 있는 인철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평양댁과 들개는 장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일상의 장사 걱정을 나눈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고동소리가 들리자 태산이 부두로 가려고 나온다. 태산의 처지를 한심스럽게 여기는 들개는 태산에게 배 만 기다리는 10년 세월 동안 무엇을 이루었냐고 다그친다. 태산은 들개에게 미안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힘없이 부두로 나간다. 들개는 평양댁에게 혼자 살아가는 이유를 밝힌다. 들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내가 해산을 하려하자, 무명지를 잘라 피를 받아 먹이려고 했던 지난 일을 회상한다. 아내와 아이가 죽자 다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얘기를 듣고 평양댁은 들개를 동정 한다. 들개는 주워서 딸처럼 기른 순나의 혼처를 평양댁에게 부탁 한다. 취객들이 지나가면서 부두에서 죽은 사람의 소식을 전한다. 들개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취객들이 전한 소식을 확인하러 부두로 향한다. 들개의 진남포집에 하숙하고 있는 인철에게 순나는 삶의 의욕을 북돋아주려 한다. 순나는 들개 아저씨가 막노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딸처럼 키운 과거를 밝히면서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한다. 부두로 나갔던 들개가 태산이 물에 빠져 자실한 소식을 확인하고 돌아온다. 태산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는 들개는 먼저 세상을 하직한 태산을 나무라며 친구의 죽음에 오열한다. 앞으로 나올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공통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들개의 독백으로 작 품은 막을 내린다.
당선소감 : 전진호
“잃은<때>를 찾아야겠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언제까지 누워 있겠느냐.
일찍이 한때, 나는 모른 것을 잃고 살아왔다. 진실이라든가, 순수라든가를 외면한 채
벌레처럼 긴 잠 속에 빠져 있었다. ....잠언에서.
그리고 방황이라는 내기에 나를 걸고 위태로운 생을 지켜왔다. 끝없이 파고드는 실의의
바람, 실상 나는 '떠돌이별'이었다. 이제 내겐 무서운 내적 체험이 남아 있을 뿐, 잃어버린 때(時)를 찾아야겠다.
고맙다. 고맙습니다. 나는 약속한다. 끈질긴 집념을 갖고, 내일을 향할 것을.
끝으로 볼품없는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님께 인사드립니다. 아울러 신문사의 여러분들께도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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