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유진규 마임극 '동물원 구경가자

clint 2024. 9. 30. 16:46

 

 

 

남자 1인이 등장하는 작품은 극장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현장성에 촛점을 두고 
쓴 것이란다! 이 작품은 무대장치·효과, 조명, 의상, 분장, 음악 등의 극의 효과를
조명으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기도 하고, 구분을 없애기도 한다.
구성은

1. 동물 이름 알아 맞추기 놀이
2. 동물원
3. 나와서 함께 걷자. 

3장으로 이루어진 대사가 없이 팬터마임으로 관객에게 행위로
그 동작의 내용을 구현하며 의미를 전달한다.

 


한상철 교수의 관극평
...... 내가 柳의 쇼를 본 것은 한국인에 의한 무언극을 처음으로 접한 것이었고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나 나름대로 무언극은 무엇이고 그것의 가능성과 한계를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그것은 70년대초 을지로 입구의 에저또 소극장에서였다. 유감스럽게도 무언극을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전혀 생소하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해외에서 몇 번의 이러한 쇼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무언극이 이제 한국에서는 신기한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게끔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이제 마임이 그저 마임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단계를 벗어나야 되지 않겠느냐는 반성을 일으킬만한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번의 공연이 그러한 반성을 강하게 자극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임이 무엇인가를 단순히 보여주는 쇼는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이들의 유희의 한 종목이며 예술의 前단계인 것이다. 동물들의 시늉을 보여 그것이 무엇이냐를 관객들에게 묻는 柳의 쇼는 무지한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지는 몰라도 마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관객이 시늉된 동물의 이름을 알아맞치게 함으로써 관객을 쇼에 끌어들이고 그렇게 하는 것을 현장성 있는 연극이라 생각하는 것은 전혀 착각이다. 그것은 오히려 게임이다. 예술로서의 연극과 게임을 구별짓는 것은 상상력의 문제다. 마임이 예술이 될 수 있으려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신화가 현실이 되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임 자체의 철학적 깊이가 더 해져야 한다...... 철학적 깊이를 주기 위해서는 먼저 테크닉의 완성이 필요한데 그들의 테크닉은 마임의 테크닉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확성, 명료성, 이해가능성을 충분히 개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임이 사실적이든 상징적, 추상적이든 (대체로 사실성에 머물러 있지만) 언어가 없는 것이 관객에게 도리어 불편을 느끼게 하는 마임이라면 그것은 사상 이전에 테크닉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마임은 언어가 없음을 전혀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끔 되어야 함은 물론, 마임의 생명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 이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데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상황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이미 언어 표현의 가능성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도리어 언어를 배제시킬 수 있는 마임이 더 중요시되고 인기가 있는 예술이 되고 있다면 그러한 마임의 존재 의의를 확신까지는 못되더라도 예시와 암시 정도는 보여주었어야 될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육체의 언어에 대한 보다 깊고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째서 육체가 언어나 그밖의 매체들 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인 표현력을 가질수 있느냐에 대한 반성과 탐구일 것이다. 마임은 결국 고도의 정서를 표현해 주는데 귀착된다. 이와같은 마임의 본질에 대한 천착과 결론이 그 행위자 자체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유도되지 않는한 훌륭한 마임이스트는 출연하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柳(진규)의 몇차례 공연에서 보여주고 있는 잔혹성은 슬픔이 없기 때문에 잔혹성만 남는다. 그것은 생리적 불쾌감을 유발시키며 무대를 정서가 묻지않은 폐허로만 남게 만든다. 시인과 生의 차이는 生이 잔혹하면 할수록 더욱 시인은 그 생의 폐허위에 서서 생의 슬픔을 노래할 수 있는 데 있다. 柳는 충분히 노래할 수 있는 마임이스트로 알고 있다. 그의 詩人의 마음에 생의 황폐함이 자리잡지 않기를 바란다.

 



1976 ~ 1978-> 유진규의 글
1976년부터 시작된 「유진규 무언극」이란 공연활동을 스스로에게 확인해 보는 의미로 이 글을 씁니다. 76년 4월. 제대직후인 그 당시의 나는 상대없는 울분속에 파묻혀 있었다. 무엇이든지 터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연극을 내게 가르쳐준 방태수선생님과 같 은 길을 걷고있는 동지인 김성구, 그리고 오늘까지기 획을 맡아준 원유숙씨의 도움이 없었으면 첫 공연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첫 공연 「육체表現」은 그런 가운데 나온 작품이었으며, 그 속에 나의 직업방향을 암시해준 「표현의 일련」이 있었다. 「표현의 일련」은 내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사상의 단절을 겪어야 했던 여러 일들이 이미지를 주었고, 그 이미지는 인간이란, 힘 앞에 어쩔수 없는 존재라는 뿌리박힌 나의 관념과 어울려 몸짓으로 표현되어 나왔다. 77년 5월의 「발가벗은 광대」를 하기 위해선 1년이 필요했다. 그간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프로세니움 아치속의 연극으로는 이미 아무런 이야기도 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허구(虚構)를 조작하여 관객들을 환상속으로 끌어들이려는 낡은 수법이 역겁기만 했다.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을것이란 가능성을 뒤지기 시작한 결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 발가벗은 광대를 보여주자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가 손에 쥐어졌다. 거기서 「표현의 일련」의 맥을 이은 「옛 광대」, 「오늘 광대」, 「흐름」이 만들어졌다. 「옛 광대」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를 연극속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 객석을 돌아다니며 혼란을 일으켰고, 「오늘 광대」에서는 그 혼란을 상승시켜 관객들을 객석으로 끌어 들였고, 「흐름」에서는 관객 모두가 배우가 된 상황에서 하나의 사건을 같이 해결해 보자는 의도로 살아있는 개구리를 등장시켰으나 약간의 혼란만을 야기 시켰을뿐. 하나의 사건을 같이 해결하는데까지 이르려면 더욱 섬세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데 그치고 말았다. 「표현의 일련」에선 꽃이 등장하고, 「흐름」에서는 개구리가 등장한다. 죽어있는 것들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보여주는 조작이 싫었다. 자연의 - 길들여지지 않은- 생명체가 등장하므로서 무대의 상황은 꾸며진 상황이 아닌 진행형의 상황이 되며 그것은 劇의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되는 것 이다. 그 속에 참여되어 있는 관객의 극적체험은 바로 현실의 체험이 되고 그 체험을 통해 자각(自覺)을 얻자는데 생물체 등장의 필연성이 있었다. 끈에 묶인 개구리와 계속적으로 던져지는 가위의 상황- 작품 「흐름」은 그 당시 나의 상황이었다. 환경으로부터 계속 공격당하는, 힘 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존재라는 흔들리지 않는 관념에 변함이 없었다. 

 

 


78년 1월. 새로운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으나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다가 2월말경 우연히 창경원에 들렸을 때야 비로소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 「동물원 구경가자」이다. 동물원의 그들을 보는 순간 나를 보았고, 나와 그들이 별로 다름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것은 「벗어날 수 없는 힘 앞에 서있는 인간의 숙명이다」는 처절한 필연성이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구체적인 나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동물원 구경가자」에서는 새로운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하나는 짤막한 단편들의 연결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고 싶은것과, 여때까진 혼자 쓰고, 구성하고, 출연 했었는데 다른사람과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다. 김재연씨가 거기에 응해왔다. 물론 김재연씨와 많은 싸움이 있었으며 그의 포용력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의도는 의도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공연을 시작한 「동물원 구경가자」는 커다란 수확을 거둔 성공작으로 나타냈다. 그것은 나의 연극방법을 얼마만큼 정리해준 것이었다. 환상조작의 거부, 현장성과 거기서 나오는 우발성, 직접적 체험. 이 세가지로 나의 연극방법론은 기본뼈대를 갖게 되었다. 「동물원 구경가자」에서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존재의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연극의 방법론에 대하여는 새로운 탈출구를 언제든 지 뚫을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질수 있으나, 작품의 주 제에 있어서의 나의 탈출구는 아직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둠일 것이고, 어둠속을 돌아다닐 것이고, 어떠한 빛도 비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하나의 빛이 될때까진.......

 

 

유진규

 

유진규(1951년생)는 1972년 실험극단 ‘에저또’에서 연극과 함께 마임을 시작했다. <첫 야행 – 억울한 도둑>을 무대에 올린 이래 김성구와 함께 한국 마임을 개척해온, 1세대 마임이스트리고, 말이 필요 없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사이다. <육체표현>(1976), <벌거벗은 광대>(1977), <동물원 구경가자>(1978), <아름다운 사람>(1979) 등의 작품을 통해 마임의 지평을 넓혔으며, 서양 마임의 한계를 벗어난 작가주의적 공연을 해왔다. 1989년 한국 마임의 중흥을 위해 ‘한국 마임 축제’를 춘천으로 가져와 ‘춘천 마임 축제’를 세계 3대 마임 축제로 성장시켰다. 1998년 초연한 <빈손>은 해외에서 ‘한국적 마임’이란 호평 받으며 반향을 일으켰다.
<빨간 방>(2008), <하얀 방>(2009), <까만 방>(2010), <노란 방>(2015)으로 이어지는 ‘방’ 시리즈는 공연예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 73세인 아직도 마임이스트 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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