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세르히오 블랑코 '테베랜드'

clint 2024. 8. 22. 15:16

 

 

 

나는... 아버지를 죽였어요
극작가 'S'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감옥에 수감중인  범죄자 '마르틴'을 만난다.
S는 마르틴과의 대화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고
내무부의 협조를 통해 무대 위 철창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마르틴을 실제 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반대 의견에 부딪혀 계획이 무산되고 
그를 대신할 연기자 '페데리코'를 섭외한다.
S는 대화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마르틴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페데리코는 S의 이야기를 통해 마르틴에 대해 알아가며 작품을 준비한다.
한편, 페데리코가 자신을 대신해 무대에 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르틴은 
현실 속 자신과 작품 속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틴은 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작품 개막은 점차 다가오게 되는데...

 


<테베랜드>에서 프로이트, 도스토옙스키, 모파상, 소포클레스 등 다른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극작가 S는 <오이디푸스왕>에서 카프카와 프로이트의 글을 거쳐 <카라마조프가 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부친 살해 문제를 다룬 위대한 글들의 다시 읽기를 제안한다. 세르히오 블랑코는 이들 작품이 <테베랜드>를 형성하고 의미를 창출하면서 관객에게 20살 무렵의 젊은이가 왜 부친을 살해하게 되었으며, 그가 저지른 부친 살해의 이면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극은 젊은 부친 살해자와 그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려는 극작가가 교도소안 창살에 둘러싸인 농구장에서 만나는 것에서 출발한다. S는 부친 살해범 마르틴을 통해 오이디푸스왕의 신화를 연극적으로 재구성하면서 마르틴의 범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극화한다. 농구를 사랑하는 마르틴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 한 젊은 남성으로 한순간 차가운 혈기로 평소 자신을 무시해오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였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연상시킨다. 나아가 이 작품은 모파상,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프로이트가 부친 살해 관점에서 시도한 도스토옙스키 분석을 제시하며 작품의 방향을 이미 경찰 조사에서 설명된 살해 행위와 범인의 인성 자체가 아니라 살인 동기에 대한 근본적인 시작점을 파악하는 것으로 바꾸어 간다. 그 과정이 이 연극을 이끌어 가는 극 사건의 의미이며 궁극적으로 관객을 인식 변화로 이끈다. 이처럼 <테베랜드>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부친 살해의 동기 분석에서 시작해, 사회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이 살인이 단순화된 편견으로 부당하게 평가받는 이미지를 넘어서서 사건의 모든 사항과 층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동시에 메타 연극적인 복잡 한 탐구를 통해 연극의 의미와 구성, 구조와 형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기하면서, 하나의 사건 혹은 한 사람을 어떻게 무대에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 변화를 보여 준다.

 



세르히오 블랑코의 작품들에는 기본적으로 오토 픽션(auto fiction)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한 등장인물이 자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날 때 우리는 무대에서 이야기된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중 앞에 있는 등장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며 그가 말하는 에피소드도 실제가 아닐 수 있다. 이처럼 세르히오 블랑코는 연극 작품에서 실제 이야기와 허구를 넘나드는 양식을 활용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실제인지 허구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관객에게 예술에 대한 성찰, 세상을 대하는 삶의 지혜를 깨닫는 기회와 더불어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를 추리하게 만드는 색다른 재미 또한 제공한다. <테베랜드>는 오토 픽션을 떠오르게 하는 흥미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 작품은 극작가이자 연출가 S가 부친 살해자의 이야기를 극화하기 위해 실제로 동종 법 죄로 수감 중인 마르틴이라는 젊은 재소자를 면회하고 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나가면서 전개된다. 우선 S라고 불리는 인물에게서 오토 픽션의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S라는 명칭은 다양한 인물을 연상시키는데, 먼저 작가 자신의 이름인 세르히오 블랑코(Sergio Blanco)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부친 살해를 다룬 가장 대표적인 고전 <오이디푸스 왕>의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도 연상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은 꽤 복잡하게 얽힌 메타연극으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S는 작가인 세르히오 블랑코를 가장 강하게 암시하는데, 39세라는 나이 외에도 결정적으로 극작가이자 연출가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학교수라는 점, 스포츠에 대한 적은 관심, 한때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와 같은 사항이 텍스트에서 두드러진다. 파리에 거주한다는 것과 두 언어, 즉 모계(스페인어)와 부계 언어(프랑스어) 사이 매우 중요한 시적, 정신 분석적 관계도 S가 작가 자 신에 대한 분명하고 강력한 투영임을 보여 준다. 세르히오 블랑코는 실제 마르틴과 페데리코가 연기 하는 마르틴 캐릭터의 유사점을 교차해 오토 픽션의 중요한 특징인 현실과 허구 사이의 치밀한 게임을 관객에 게 제시한다.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S는 부친을 살해해 교도소에 수감된 마르틴을 배우로 기용하려 했다. 그러 나 당국이 재소자를 무대에 올리는 것을 반대하자 페데 리코라는 배우가 마르틴 역할을 맡게 한다. 이 작품에서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같은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같은 브랜드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젊은이들이다. 연극은 배우 1인이 실제 수감자와 그를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함과 동시에 S와 마르틴 사이의 대화를 보고 듣는 것처럼 처리한다. 이처럼 두 명의 젊은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왔음에도, 그래서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듯 보이지만 마치 하나처럼 보인다. 세르히오 블랑코는 그들이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세르히오 블랑코는 한 인터뷰에서 <테버랜드>의 중심주제는 만남이라고 했다. 갈수록 소통이 사라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테베랜드>는 세 개의 세계가 교차하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극작가의 세계가 있다. 외롭고 무관심하고 관대하지 않으며,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까지 비웃는 일종의 오만함을 가진 극작가가 사는 세계가 첫 번째 세계다. 그의 세계는 부친 살해범 마르틴의 세계와 만난다. 마르틴이 속한 세계는 주변부 세계이 자 배제된 세계다. 자기중심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중심부세계에 의해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부정당하고 폄하되며 왜곡된 평가를 받는 차별의 세계다. <테베랜드>에서는 이 두 세계가 서로 만난다. 그리고 세 번째 세계가 이 두 세계에 접근한다. 바로 부친 살해범 마르틴을 연기 하는 페데리코의 세계다. 페데리코의 세계는 자신감 넘치는 세계이고 배우의 세계이면서 진실함과 순진함의 세계다. 이 세계 세계가 교차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눈 이 새롭게 확장된다. 또한 각자의 세계는 각자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S의 세계가 모차르트의 세계라면, 마르틴의 세계는 로베르투 카를루스의 세계이고 페데리코의 세계는 U2의 세계다. 이처럼 작품은 세 가지 음악을 통해 이들 음악이 대표하는 세 가지 세계의 만남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 차츰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인물이 타자에게 매혹당하는 것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다름을 인정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 작품의 철학적· 정치적 토대다. 그런 점에서 <테베렌드>는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 정치문제를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타자의 문제와 세계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세르히오 블랑코는 나와 다를수록 타자와의 만남은 더 아름다울 거라 생각한다. 셋의 만남이 바로 그런 만남이다. 동시에 작품은 고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각자 자신의 세계에 있는 3명의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데리코는 공연의 세계에서 외롭다. S는 창조한 세계, 창조자의 고독한 세계에서 외롭다. 마르틴은 부친 살해와 같은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고통과 지옥의 세계에서 외롭다. 이렇게 외로운 셋이 만나 타자를 이해하고 다른 세계를 인정하면서 외로움을 치유한다.

 

 

 

Sergio Blanco

현재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극작가이자 연출가 중 한 명. 1971년 우루과이에서 태어나 몬테비데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대학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 코메디아 프랑세즈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전적으로 희곡 집필과 연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도살(Slaughter)], [야만(Barbarie)], [카산드라(Kassandra)], [다윈의 도약(El salto de Darwin)], [오스티아(Ostia)], [뒤셀도르프의 포효 소리(El bramido de Dusseldorf)], [당신이 내 무덤 위를 지나갈 때(Cuando pases sobre mi tumba)], [교통(Trafico)], [실종에 대한 지도 제작(Cartografia de una desaparicion)], [코비드 451(COVID 451)] 등이 있다. 그의 연극은 전 세계 25개국 이상에서 출판되고 공연되었으며, 2022년 밀라노의 피콜로 극장에서 신작 [동물원(Zoo)]을 발표했다. 극작과 연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세미나와 강의를 하는 등 학술 활동도 활발히 병행하고 있다. 2013년 우루과이 국립극단의 초청을 받아 1년 동안 국립극단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2014년 우루과이 국립 무대예술 학교에서 1년 동안 수행할 오토 픽션을 주제로 한 연극 연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