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가 열리면, 한 여자와 남자가 서 있다. 여인은 독백을 한다.
자신을 저버린 남성에 대한 분노, 실망, 미련을 남김없이 토해놓는다.
남성이 무대에서 사라지면 여인은 본격적으로 자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자신의 육체가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사살을 이야기하면 소도구로 사용된
팔다리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무대에는 어두운 벽이 등장하고 그 벽은 여인을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으로 인도한다.
과거 속에서 여인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어머니, 자신의 육체를 깨달았던 기억,
자신을 노리개로만 취급했던 다른 여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기억을 되새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해왔음을 깨닫는다,
타인과의 관계계가 단절되었음을 알아차리고 두려워하는 순간
무대에는 비구니가 나타나고 그 비구니는 여인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어
쟁반에 올려놓는다. 비구니는 내장을 씻고, 여인은 자신을 저버린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는 듯한 환상을 맛본다.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자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꿈과 환상, 기억 속에서 자신을 찾는 한 여성의 여정.
<생사계- 삶과 죽음 사이>는 가오싱젠의 작품 중 자신의 연출로 가장 많이 공연했던 작품으로 불어로 창작하고 다시 중국어로 쓴 작품이다. 여주인공의 서술적 독백으로 진행되는 이 연극은 남성 또는 다른 여성에 의해 타자화된 자아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삶과 죽음 사이)(1991년)는 {대화와 반문)(1992), (야유 신)(1993)과 함께 가오싱젠의 메타 연극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자아의 탐구와 성적 주체성 해체라는 주제가 주된 맥락을 이룬다. (삶과 죽음 사이》는 1993년 호주 시드니 대학과 프랑스 파리에서, 1994년 이태리 베를리에서, 1997 년 미국 뉴욕에서, 2001년 프랑스 아비뇽, 2003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등에서 그 자신의 연출로 공연된 바 있다. 2003년 그에게 한국에 가장 소개하고 싶은 근작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이 작품을 첫 손에 꼽았고 그래서 '한국연극' 2004년 9월호에 원제대로 (생사계)라는 제목으로 번역 소개한 바 있다. 거의 여주인공의 서술적 독백으로 진행되는 《삶과 죽음사이>는 언어와 여성의 몸과 연관하여 성적 주체성을 살핀 작품이다. 한 중년여인이 남성 자아에 대한 타자로의 여성 자아를 구성하는 꿈으로 시작되어, 남성 또는 다른 여성에 의해 타자 화 된 자아를 통해 여성과 남성이라는 고정된 성적자아를 해체해가며 궁극적으로 인간존재 본연의 문제로 다가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 작품에 시도된 언어적 실험에 대하여 가오싱젠은 평론집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중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문장이 많고 주어가 바뀌어도 동사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중국어의 특성은 서사적 시각의 변화에 융통성을 부여한다. 즉 문장의 화자인 자아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 자아는 초월적 또는 비 자아가 된다. 화자의 변화에 따라 객관화된 자아 또는 분리되어 나를 관찰하는 자아가 되고, 이 과정에서 자아는 자아 분리로 인한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빠져나와서 정관하기 또는 '관조하며 명상하기'라 한다.”
그의 소설이나 희곡에서 화자를 나타내는 대명사의 변화는 그의 내적 관조를 대변한다. 이러한 언어적 방법을 통해 자아로부터의 분리와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자아는 감각하는 주체로서 동시에 감각되는 객체로서 현존하게 된다. 그의 메타 희곡 삼부작 뿐 아니라 소설 (영혼의 산》과<한 사람의 성경>역시 이러한 언어적 실험을 통한 자아 탐구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언어적 착안은 선의 '정관'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언어 너머의 추구로 나아간다.
삶과 죽음 사이〉 연출에 관한 약간의 설명과 건의 - 작가 주
1. 본 작품은 중국 전통극의 공연 개념에서 출발하여 현대 연극의 공연형식을 모색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 소위 '진실'올 만들어 내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극장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 본 작품은 비극, 희극, 소극을 한 그릇에 녹였고 잡기와 춤, 마술을 배제하지 않으며, 단순함을 추구하여 서술 어조의 통일만이 시종 연결되도록 하였다.
3. 작품 속의 서술자, 즉 여인으로 분장한 사람은 한 특정 역할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녀는 역할들을 넘나들며, 여전히 본래의 신분을 유지한다.
4. 작품 속의 대사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절대 피해야 한다. 연극은 연극이기 때문이다.
5. 배우들도 무대 위에서 세세한 것에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그저 집중된 연기로 무대 위에 신념을 형성해야 무대 아래 관객과의 소통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이상의 건의는 그저 참고로 제시할 뿐이다. 본 작품의 창작은 프랑스 문화부의 찬조로 이루어졌으며, 초연권은 프랑스에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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