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미리 '정물화'

clint 2024. 8. 23. 06:24

 

 

4월의 마지막날,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계 여고의 좁은 문예부실에

5명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여학생 다섯이 모여

방과전과 방과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교실과 교복 속에 갇혀있는 이 어린 육체들에게 삶과 세계는

피부로 경험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떤 불투명한 막 저편에 있는

불확실하고 미지의 것인 듯하다.

이들은 수업놀이와 같은 유희로 시간을 보내며 사랑이나 성, 죽음에 대해서

수다를 떨거나 감상에 빠져든다.

또 옆에 있는 친구의 사랑을 얻기 위해 골몰하고 그 때문에 상처받는다.

소녀들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지금의 이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하거나

자기불안과 갈등이 없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데.....

 

 

 

 

 

유미리와<정물화> 소설가로 더 알려진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는 연극과 희곡쓰기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유미리의 초기 희곡들은 공통적으로 사춘기의 경험과 감성, 그리고 죽음에 대한 경도를 담고 있는데 <정물화>는 그런 초기 희곡의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단일한 사건의 기승전결적 전개에 의지하지 않는 듯한 구성이나 무대화가 불가능한 세세한 심리까지를 기술해놓은 길고 수사적인 지문 등을 주목한다면 매우 문학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물화>는 유미리가 성장기에 경험한 경험과 감성이 직접적으로 녹아있다는 점에서 유미리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다. 또 각 장면에 배어있는 서정성과 인물과 상황의 흥미진진함은 빼어난 데가 있다.

 

 

 

 

 

<정물화>는 작가 유미리 희곡 중 첫 출판작이라 한다. 기존 관람작 <그린 벤치>, <해바라기의 관>, <물고기의 축제>보다 먼저 집필된 <정물화>는 발랄하면서도 사춘기 여고생의 고민과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학창시절의 감성들이 함축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깊게 내 마음을 파고든다. 장면 하나에 많은 감정들이 밀려든다. 그 발랄함과 방황의 여고생들에게 숨겨진 절제된 무대는 잘 나눠놓은 퍼즐처럼 연출되어 있었다. 내게 마저도 너무 많은 수다를 나열하지 못하게 만든 무대였다.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다."
1968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출생. 고교 중퇴 후 도쿄 키드 브라더스를 거쳐1988년 청춘 5월당(靑春五月黨)을 결성하여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1993년 스물다섯 살 최연소의 나이에 희곡<물고기축제>로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의 영예를 안았다.<정물화>,<GREEN Bench>등의 희곡 작품과<가족의 표본>,<사어사전>,<유미리의 자살>등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첫 소설집<풀 하우스>로 제 24회 이즈미 교카 상과 노마분게 신인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제 113회, 제 114회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으며, 1997년 중편<가족시네마>로 제 116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다. 일본의 20대 순수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며, 가족 및 삶과 죽음을 테마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