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성희 '그림자의 눈물'

clint 2024. 7. 11. 14:04

 

 

어느 날 전쟁 게임에 몰두한 소년에게 그림자 하나가 들러붙는다. 
그림자는 자신의 주인을 잃어버렸다며 주인을 찾아달라고 조르면서 
소년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그림자와 여정을 떠나야 하는 소년에게 
소년이 예전에 버린 4가지 캐릭터들이 등장해 함께 가기를 청한다. 
언젠가 파버린 코딱지, 까치에게 던져준 유치(齒), 깎아 버린 손톱, 
한 짝만 남은 신발 이 4가지가 동행한다. 소년과 그림자, 4가지 캐릭터… 
6인의 등장인물은 여행 중 전쟁광 마법사와 무기상인 등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림자의 주인이 중동의 어느 사막 지역 전쟁에서 
희생된 소녀임을 알게 되는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모험담 속에 반전(反戰) 메시지를 쉽고, 

재미있게 연극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림자의 눈물」은 한 소년의 ‘그림자 주인 찾아주기’ 모험을 통해 

전쟁의 아픔과 상실을 조망하는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탐욕과 어리석은 증오심, 과학적 발명의 잘못된 남용 등 

전쟁의 사회구조적인 배경을 우화적인 이야기 틀 안에서 담아내면서 

쉽고 재미있게 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그리고 놀이와 상상력으로 가득 찬 무대 표현, 생생하게 의인화된 

캐릭터 등은 교육적 목적이나 교훈전달에 치우치지 않고 

연극의 생기로움을 한껏 제공한다.

 

 

한 공연 관람기
처음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란 소리에 아이들에 수준에 맞춘 조금 유치한 공연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후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야말로 진정한 공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성인들에게만 개방하는 문화들이란 너무 퇴폐적이고 성적이며 자극적이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순수나 맑음은 찾아 보기란 어려워 보인다. 소극장에 처음 들어가서 눈길이 제일 먼저 간 것은 무대였다. 흙바닥에 파란색 큰 벽돌처럼 생긴 벽으로 극장 두 면을 차지한 무대는 동화 속 분위기를 연출하기 딱 좋았다. 구석구석 배우들이 사라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놓은 것도 신기하였다. 소년처럼 귀여운 인상의 주인공 아이는 머리스타일하며, 노란 티셔츠에 멜빵바지와 운동화. 그야말로 귀여운 꼬마를 연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 아이가 마지막에 그림자를 떠나보내며 그림자에게 마지막 인사하는 부분은 너무 가슴 찡한 부분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 하는 코딱지, 손톱, 운동화, 이빨이란 소재들은 참 무심코 지나쳐버리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대장과 그림자의 모험에서 그들은 참 많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때론 웃음을, 때론 생각을. 전쟁이라는 것. 잊고 있었다. 항상 남들의 일들이라고만 여겨졌었다. 올 봄에도 이라크에선 전쟁이 있었다. 신문지상과 tv뉴스를 보면서 '참 안 됐다'라는 생각과 '미국이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밖에 가지지 못했다. 난 어쩌면 그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같은 인간으로써 너무 무자비하다는 생각뿐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 뼈져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마법사에게 더 좋은 무기를 위해 그리고 그 무기를 사서 전쟁할 기쁨에 들뜬 그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눈물을 팔아버린 사람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어 너무 씁쓸하고 가슴한쪽이 안 좋았다. 하얀새처럼 그렇게 맑고 따뜻한 눈물을 잃어버리고 산 느낌이었다.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전쟁놀이를 하는 대장과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무표정하고 생기와 가슴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다. 그냥 시계같다는 느낌. 나의 의지가 아닌 타엽이 감겨져 돌아가면서 일어나는 일들같은, 살아있지 않은 기계같은. 이 연극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살아있던 아이들의 표정이었다. 기쁠 땐 웃을 줄 알고, 슬플 땐 울 줄 아는 그 아이들의 표정이 제일 부러웠다. 그리고 내 안에는 그런 살아있는 생기가, 눈물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였다. 머리만 있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리로 내게 이익이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하고 이 자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전쟁을 일삼던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많은 희생들을 만들어냈는지. 위대한 발명으로 찬사를 받았던 노벨은 자신의 발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아파하며 노벨평화상을 만들었을는지. 뒤늦은 후회와 아픔으로. 연극 속에서 노벨박사가 등장한다. 해골을 등에 메고 목에 건 채로 정신병자처럼. 그리고는 자신은 너무 하루가 너무 바쁘다고 말한다. 날마다 늘어나는 해골들을 모두 묻어주려면 하루는 너무 짧다고 한다. 그리고 다이나마이트란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너무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전쟁을 일으킨 부시도 그런 죄책감에 힘들어했을까? 그냥 생각없이 그들의 기사를 접한 난, 난 어땠지? 흠 정말 내가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류로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또 연극을 보면서 세상 어느 것에도 눈물을 바꾸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기뻐하는 일보다 같이 슬퍼하는 일이 훨씬 더 힘든 일임을. 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눈물이 절실히 필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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