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전형적인 시골.
이곳엔 엄씨네(필순)와 김씨네(분여)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집안의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망백이 넘은 필순은 지금껏 큰아들 엄인봉이 비전향 장기수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기 한번 펴지 못하고 살아왔다.
월북 후 남파 간첩으로 내려왔다가 붙잡힌 큰아들이 석방되지만,
그는 어머니를 남쪽에 남겨둔 채 북송을 선택한다.
30여년 감옥에서 보낸 그 역시 노모와 마찬가지로 병마에 시달리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흔 노인, 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이 그리워
북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가 떠나고 북녘 송환을 거부한 조하문, 허인숙
부부는 필순을 모시며 살게 된다.
단지 수감생활에서 하문에게 보여준 인봉의 미소가 인연이였다.
인봉의 동생인 수봉은 '빨갱이집안' 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냉대 등으로
어머니나 형과의 관계가 소원하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이 불구가 되고
소년병으로 전쟁에 나갔던 큰아들 수현과 형을 찾으러 나갔던 둘째 규현 마저
소식이 끊기자 분여는 북(빨갱이)에 대한 강한 저주를 갖게 된다.
아들이 전쟁에서 보낸 편지를 한평생 간직하며, 안씨, 박센 등 마을사람들과
함께 옆집에 사는 엄씨네 사람들 을 줄곧 괴롭혀 왔다.
막내딸 명현은 그런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세월이 흐를수록 분여의 신세 한탄은 잦아진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이 북에 귀순해 살았고,
손자 명국이 탈북해 남한 땅으로 오면서
그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진실을 경험한다..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두 여인의 대립구도가 중심이다.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아들을 가진 노인 '필순'과
남편을 전쟁으로 잃고 두 아들마저 북에 빼앗 겼다고 믿어온 노인
'분녀'의 반목과 갈등을 통해 개인에게 씌워진 정당하지 못한
역사의 굴레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의 아픔을 안고 사는 두 가정을 통해 비전향장기수와 탈북자라는
시대의 아픈 코드가 함께 섞여 있다.
우리 삶의 화해를 방해하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씨줄로 배치하고,
그 위에 장기수로 복역하던 엄인봉의 선택이 날줄로 얹히면서 평생
등을 돌리고 살았던 두 여인이 진심으로 화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에서의 '상봉'은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어미와 자식의 만남이면서,
평생 적대시해온 이웃의 화해(만남)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안고 있는 것이다.
<상봉>은 2003년 전북연극제와 전국연극제에서 희곡상을 수상했으며,
전국연극제에서는 대통령상과 연출상, 연기상까지 함께 수상했다.
이 작품은 '남북관계가 일대 전환기에 있고, 이데올로기 대립을 초월하는
화해의 정신이 높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회를 향한 강한 메시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글 - 최기우
2000년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 당시 서울을 방문한 북녘의 오영재 계관시인은 "별(형제)들 다섯이 모여도 햇볕(어머니)만 못하다. 체제가 달라도 체온은 같다"며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상봉의 소회를 시에 담았다. 이 수난의 역사, 피눈물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혈육들이, 가슴이 터져 죽는다고, 민족이 죽는다고........
작품 <상봉>은 2000년 미전향장기수 63명이 판문점을 통과해 북녘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구상했다.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았던 고향행! 자유의사에 따라 북한으로 송환을 원하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건 없이 보내주겠다는 남한정부와 남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북한당국의 결정이 분단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이뤄진 것이다. 감옥에 갇혀 보낸 수십 년의 세월. 늙고 병들어서야 꿈에 그리던 고향땅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두 송환된 것은 아니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떠날 사람은 떠났지만 모두 송환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고 싶어도 못 떠난 사람과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 형제를 보낸 이 땅의 남은 가족들이 있었다. 남은 이들은 보낸 이의 옷자락을 또 한번 볼 기회를 갈구하며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송환은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이산가족을 만든 것이다. 이산가족들의 상봉도, 이산의 슬픔이 또다른 그리움을 낳는 일시적인 '상봉'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깨달은 아픔이다.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굴레처럼 씌워진 운명을 감당해야만 하는 개인의 상처. 나는 분단 반세기가 이들에 준 아픈 상처와 서러움을 풀어내고 싶었다. 작품을 쓰면서 부안 출신으로 32년을 복역하다 골수암 진단을 받고 풀려난 고(故) 신인영 선생을 자주 떠올렸다. 선생은 감옥생활 32년을 "민족의 슬픔 가운데 내 몫을 짊어진 세월"이라고 표현했다. 부안 출신이지만 삶의 터전은 평양시 순안군. 한국전쟁 때 홀로 월북했고, 북에서 결혼해 3남매를 두었다. 1997년말 골수암 진단을 받고 1998년 3월 형집행정지로 교도소를 나섰지만, 그를 맞은 것은 '터전 없는 고향'일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등진 지 오래고 어머니는 3살 노인이 돼 있었다. 분단 반세기는 어머니와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다. 선생의 선한 눈매가 아직도 눈에 어린다. 경험이 미천한 젊은 작가가 담아내기에는 너무 큰 주제였지만, 나는 이 작품을 간절하게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첫 장을 쓴 2002년 12월 27일, 작업공간이 없었다. 부모님의 집에는 나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없었고, 그렇다고 독립을 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결국 한 시민 단체(전북민예총) 사무실을 빌어 작품을 썼다. 3일 밤을 꼬박 새워 '너무도 빨리' 초안을 냈지만, 연습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전주와 순천 공연을 통해 이 작품은 '너무도 오랫동안 여러 차례 수정됐다. 작가와 연출과 배우의 시각이 각기 다를 수 있고, 연습과정을 거치며 합일점을 만들어 가는 작업 이 바로 연극이며, 연극대본이라는 뻔한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희곡은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시기와 무대, 배우에 따라 메시지나 의미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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