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소피 트레드웰 '마시날'

clint 2024. 5. 9. 16:01

 

 

 

속기사인 '여자'는 엄마를 부양해야해서 그 회사 부사장과 맘에 없는 결혼을 한다. 
자기 몸에 부사장의 손끝이라도 닿게 되면 치를 떠는 여자는 그럼에도 섹스를 하고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다 술집서 만난 남자와 집에서 원나잇을 하고 
자신을 알아봐줬다고 착각하며 사랑에 빠진다. 
정작 그는 시작과 동시에 끝을 말하고, 계속 함께하자는 여자에게 
'모르는 일'이라는 대답으로만 일관한다. 
여자는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과 더불어 자유를 꿈꾸게 되고, 
마침내 돌이 든 병을 남편 머리에 내리친다.

그리고 살인혐의로 구속되고 언론의 주목 속에 재판을 받고

전기의자에 앉는다.

 

 

 

극작가면서 동시에 유능한 신문기자였던 트레드웰이 1927년에1년간 뉴욕 주 롱 아일랜드의 한 가정주부 루스 스나이더의 실제 재판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쓴 1928년 발표한 희곡이다 .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재즈가 흘러 나오는 라디오, 새로 건축 중인 병원 건물의 강철 소음, 금주 시대의 불법 주점, 축적한 부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의 남편 등의 배경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인 본질을 가진 사회속에서 평범하고 젊은, 그러나 섬세한 한 여성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한 여자가 나오고 그녀의 주변인들이 나온다. 여자는 그녀가 속한 사회 어디에도 안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지친 그녀는 자유를 원하게 되지만 그녀가 자유를 구하려는 행동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다.

 

 

 

이 작품으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라는 것의 위험함이다. 옛날 사회주의 체제가 크게 문제 되었던 것이기도 한, 사회는 개성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분명히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지만, 사회 때문에 많은 개성이 파괴되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 큰 주제를 말하자면 현실사회 비판 개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극스타일은 표현주의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주의 사조 자체가 사회주의 비판 그리고 개성성 인간성 지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이 작품의 주제와 비슷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사회 비판이라는 것은 이 작품이 1920년대의 미국 현실에 대한 고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보자면 지금 까지 20대로서 내가 겪은 조기교육, 입시문제, 취업문제가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문제 때문에 발버둥 치고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해결하려는 생각 보다는 뒤처지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런 문제들의 해결점은 좀 더 개인의 가능성을 중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여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즉 사회를 이루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최소한의 개성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과 사회성이 적절하게 조화가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배경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혹은 겉도는 사람이 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할 것이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맞다고 믿고 있는 것들 때문에, 사회에 잘 적응 못하는 사람을 배제한 것 때문에, 혹은 한 사람을 그 사람 자체가 아닌 직원으로써 딸로써 아내로써 대한 것 때문에 어떤 여자는 파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고 작가도 여성작가여서 그런지 패미니즘 적인 작품이기도 한데 내가 하고 싶은 주제는 분명히 패미니즘 적인 요소도 있지만 패미니즘을 포함하는 이야기 이고,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 뿐만이 아니라 남성까지도 어우를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작가의 글 - 소피 트레드웰
이 작품은 남편을 살해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여자. 아무 여자. 그 여자가 부딪히게 되는 인생의 각기 다른 국면들과. 그 국면들 중 어디에서도 그녀가 자신의 자리나 평화를 찾을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자는 것이 작품계획이다. 그 여자는 본질적으로 연약하고 예민하며, 그녀를 둘러싼 삶은 본질적으로 딱딱하고 기계화 되어있다. 일, 가정, 결혼, 아이를 가지는 것, 쾌락을 추구하는 것-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어렵다- 기계적이고 신경에 거슬릴 뿐. 단 한번의 금지된 사랑 속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을 위한 인생의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것을 되찾기 위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은 결국 그녀를 파멸로 이끈다. 
 이 이야기는 9개의 장면들로 보여진다. 장면들의 대화 속에는 우리의 일상적인 도시 말투의 리듬- 즉, 귀에 거슬리는 빽빽거리는 목소리, 혹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습관 등-을 포착하려는 노력이 있다. 이 극에는 또한 다른 많은 소리들이 사용되는데, 그 소리들은 무엇보다도 그 자체의 고유한 감성적 효과 때문에 선택이 되었지만 (강철에 리벳을 박는 소리, 성가를 부르는 신부, 노래하는 흑인, 재즈 밴드, 등등) 또한 배경, 즉 분위기를 창조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하나의 “스타일”을 가진 공연을 창조하고, 동시에 이야기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드라마를 통해서, 그것을 말하는 단도직입성을 통해서, 장면들의 다양성과 그 신속한 전환을 통해서, 그리고 음향의 자극을 통해서 하나의 흥미로운 연극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작품의 바람이다.

 

 

 

소피 트레드웰 (Sophie Treadwell. 1885-1979)이 '마시날'을 썼던 1920년대는 미국 역사에 있어 가장 “역동적”인 시기이자 또한 정서적으로 매우 ''이상한" 시기였다. 190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인구가 새로운 이상과 기회를 찾아 이주해 오던 시기였으며 대도시들이 팽창하고 경제적 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속도로 이루어지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낙관적인 세계관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192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강철 산업의 발전으로 커다란 다리들과 거대한 고층빌딩들이 세워졌다. 지하철이 생기고 더욱 발전된 철로들이 놓였으며 최초로 미국 전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 되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더욱 여유 있는 삶을 즐기게 되었으며, 민간 항공기의 운행으로 장거리 여행 역시 보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되었다. F. 스캇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1920년대는 또한 "재즈의 시대”였고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는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빠르게 스며들어 가기 시작했다. 전국을 잇는 라디오 방송 망이 개설된 것도 이 시기였다. 연극에 있어서는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한 상업주의가 빠른 속도로 무대를 장악해 감과 동시에. 실험적인 정신과 현대적인 연극개념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예술가들이 이러한 상업주의와 관습주의에 도전장을 내밀며 미국 연극의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 활발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주의와 희망의 이면에는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문제점들이 있었다. 부의 축적에 따른 소비주의가 팽배하게 되었으며, 금주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주류 밀매업과 범죄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1919년 여성 투표권 인정에 따라 여성의 법적 사회적 지위는 발전을 보이기는 했지만 사회 제도는 여전히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상업과 과학의 발달에 따라 대도시의 삶은 점점 기계적이 되어갔으며. 사람들은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1927)에서와 같이 사회의 기계화 속에서 영혼을 잃어 갔다. 현대와 과거. 욕망과 도덕 사이의 정서적 갈등은 혼란과 불안을 낳았다. 1920년대는 ''어떤 이들에게는 해방의 시대, 어떤 이들에게는 억압의 시대였다"
기계적인. 혹은 의지에 따라 이루어 지지 않은 행위를 뜻하는 불어 제목 <마시날> (Machinal) 속에는 이러한 사회를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 트레드웰의 의도가 담겨 있다. 당시 사회의 특징적 요소들을 배경 속에 섬세하게 배치하면서, - 재즈가 흘러 나오는 라디오. 새로 건축 중인 병원 건물의 강철 소음, 금주 시대의 불법 주점. 축적한 부와 어울리지 않는 취향의 남편 등 - 트레드웰은 이중적인 본질을 가진 사회 속에서 한 예민한 여성이 자신의 외부 세계와 의사소통 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파멸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시날> 이후 30여년이 지난 1955년, 트레드웰은 한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작품을 쓰기 시작하던 때, 내가 가지고 있던 단순하고 기본적인 생각에 대해 간단히 말씀 드릴게요. 사실 모든 건 제목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기계(Machine)-적인 기계와 같은… 인생과 사랑을 기다리고 또한 열망하는 한 젊은 여자…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삶으로 가득찬 -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풀어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은 사실 쥐어 짜이고 - 부서지고 - 죽은 상황이지요.… 그 여자는 선천적으로 이 인생의 기계화에 맞지 않는 여자입니다."

 

 

 

실제 사건과 재판.

1927년 3월. 앨버트 스나이더라는 남자가 둔탁한 물체로 머리를 맞아 피살된 것이 발견이 되었고. 그의 아내였던 루스 스나이더는 곧 그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사건 당시, 그녀는 재갈이 물리고 몸이 묶인 채 딸의 방 바깥에서 발견 되었는데, 수사를 하던 경찰은 도둑맞았던 것으로 알았던 그녀의 보석들이 침대 매트리스 밑에서 발견이 되고 남편의 사망 소식에 그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약간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그녀를 수상히 여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시간 정도의 심문 끝에 루스 스나이더는 자신이 속옷 판매원 애인 저드 그레이와 함께 남편을 살해했음을 시인했다. 그 이듬해 1월 스나이더와 그레이는 전기의자로 사형되었다. (루스 스나이더는 전기의자에서 사형된 뉴욕 주 최초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사건 발생 당일부터 두 범인이 사형되고 난 이후까지 거의 10개월 동안, 스나이더/그레이 사건은 거의 매일 신문에 등장하면서 온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대중들의 전례 없는 관심 속에 180명의 기자들이 오로지 이 재판 과정의 취재만을 위해 배치되었으며,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법정에서 그 재판 과정을 참관했다. (관람을 위해서는 입장권이 요구되었고 길거리 암표상들이 생겨났다) 비록 신더와 그레이 모두 재판을 받았지만, 미국인들의 관심은 거의 신더에게로 쏠렸다. 자신을 남편 살해에까지 끌어 들인 사악한 여자라며 신더를 비난하던 그레이와 함께, 언론은 (신더와 그녀의 딸이 남편에 의해 잦은 구타와 협박을 당해 왔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신더를 구제 받을 수 없는 잔인한 살인자로 그려냈으며, 그녀와 그레이의 연애 과정 속 온갖 자세한 내막들까지 보도해 가면서 이 사건을 "극화” 시켜갔다. 연일 보도되는 이 재판 과정의 상황들과 온갖 가십 거리들에 미국 사람들은 그 어느 사건 때보다도 더욱 많은 호기심을 갖고 신문을 읽어내려 갔는데. 그들이 그 토록 이 사건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살인자가 자신들의 “이웃과 같은. 조용한… 너무나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의 재판의 배심원 12명이 모두 남성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던 루스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한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에 이 사건은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피 트레드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