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페터 한트케 '현명하게 말하기'

clint 2024. 4. 28. 18:51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우리의 모든 것은 매듭에서 끊어지고 비틀거린다.

대기는 비유로 전한다.

어떤 말도 다른 말보다 훌륭하지 않고.

지구는 은유에게 위협받는다......" (서문)

 

 

 

한트케의 언어극에서도 브레히트의 서사극처럼 무대와 객석을 차단시키는 장막이 없다. 무대와 객석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다. 무대 위에 불을 켜두는 것도 브레히트의 연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과는 다르게 한트케의 연극에서는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배우는 객석으로 내려와서 연기하고 - 「관객모독」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배우는 말을 퍼붓는다. 어떤 의미가 있는 얘기가 아니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서사극으로부터낯설게하기기법을 수용하여 언어와 현실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고 언어파괴를 통해 사회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트케의 드라마는 서사극의 기법을 수용했으면서도 서사극의 성격과는 많은 차이점을 나타낸다우선, 전통극의 핵심 요소였던 ‘3일치의 법칙을 놓고, 브레히트의 드라마와 한트케의 드라마를 비교해보면, 전통극의 경우,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사건은 24시간이라는 제약을 받는다. 사건은 단 하루 동안에 진행된다. 장소는 고정되어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테베의 궁전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줄거리는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어 있다브레히트는 이 ‘3일치의 법칙을 해체한 작가이다. 그가 창시한 서사극의 경우,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시간은 현재, 과거, 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특정한 장소에 묶여 있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행동하는 장소는 다채롭게 변화된다. 줄거리들은 여러 개의 토막, 여러 개의 단편으로 분절될 수 있다. 각 줄거리마다 독립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한 토막을 따로 떼어 놓는다 해도 관객은 충분히 사건진행을 읽어낼 수 있다. 줄거리는 시간과 장소에 구속되지 않는다. ‘3일치의 법칙이 해체된 것이다. 한트케도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아 ‘3일치 법칙을 해체하였다. 그러나 브레히트가 시간, 장소, 줄거리에 각각 의미를 부여한 것과는 다르게 한트케는 3가지 요소의 의미마저 부정하였다. 그의언어극에서는 시간, 장소, 줄거리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시간은현재또는지금이다. 과거와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대 위에서 등장인물들이 행동하는 장소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 이며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세계그 자체이다. 사건진행, 즉 줄거리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다. 언어의 나열이 줄거리를 대신한다. 줄거리를 대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또는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다.

 

Peter Handke

 

한트케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의 모순과 병리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요,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잘못된 언어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람의 의식 속에 고정관념을 불어넣고, 이 고정관념은 사회를 타락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및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여 현실인식을 마비시키고 진실을 호도합니다. 그러므로 한트케는 고정관념 속에 사로잡힌 의식을 해방시키려고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기존의 언어를 비판하고 파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의 언어극 「관객모독」에서 욕설, 조롱, 야유가 난무하는 것은 곧 기존의 언어에 대한 비판과 파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