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은 오랜만에 장례식장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몸도 불편하고 말도 어눌한 사람들이다.
공장에서 일하던 큰형은 분명 사고로 죽은 듯 보이지만,
어쩐지 사망 원인보다는 큰형의 죽음을 둘러싸고 생긴
돈 문제, 즉 지급될 보상금과 그가 남긴 부채가 가족과
사측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남겨진 가족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사측은 '상속포기'라는 제도를 권유한다.
사측은 보상금을 줄일 수 있고 가족은 큰형의 부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득이 되리라는 것이다.
세상의 시간이 멈춘 사흘 동안 가족들은 큰형의 생애를
돌아보고 추억하며 어딘지 자꾸만 무료해지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상속포기로 모든 걸 깨끗이 다시 시작하자고 의견이 모아지지만,
둘째는 형의 이름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소란을 피운다.
그리고 분명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큰형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모인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자본과 화폐에 비틀어진 우리 사회가 한 죽음을 대하는 시선과 방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다양한 인간 군상의 초상(肖像)을 엿보인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엔 갖은 혐오와 멸시, 폭력이 도처에 일상으로 익숙하리만큼 횡횡하지만. 이 모든 감정이 모여, 폐허로 가닿는 ‘죽음’이란 사건은 언제나 낯설고 황망히 느껴지기만 한다. 평소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존재들의 죽음 앞에서 남겨진 이들과 우리 사회는 언제나 때늦은 호명과 기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때가 많았고, 그것은 늘 아쉬운 후회의 순간이 될 때가 많았다. 이 같은 현실 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하나의 질문이 이 작품 창작의 첫 시작이었다. 연극 이야기와 무대란 공간이 다룰 수 있는 최소, 최대한의 가치 지점이 동시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성 탐구 및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질문과 담론 생성이란 믿음 아래, 자본에 찌들고 멍든 사회가 인간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잃어버린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따뜻한 고민도 함께 담겨 있는 작품이다. 고인의 마지막 편지가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틈틈이 써내려 가던 '시'였음이 밝혀지는 극 후반부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당선소감 |고정민|
나는 여전히 비문(非文)을 쓰고 어떤 냄새만 풍기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늘 두렵습니다. 별자리 만큼이나 아득한 객석에 앉아 은하수 달나라를 꿈꾸어도 모두가 걸어가는 세상 우리가 사는 푸른 별 지구. 극장을 오지 못하거나 극장 회전문 앞을 서성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건 내가 아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막연한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 많은 거짓이 필요한 작업들을 생각합니다. 서걱거리는 도구 쥐고 그럴듯한 삶을 살고 싶어하던 나를 돌아봅니다. 살아 있는 것보단 살아온 시간, 더 대단히 느껴지는 밤 행복한 연극은 좋은 연극이 될 수 있다 말해준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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