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동두천 클럽에서 보낸 도현은 어려서부터 동네건달들에게 탭댄스를 배우거나 음악을 접 하곤 했다. 이때 도현과 아주 가까이 있었던 두 사람, 해주와 타잔아저씨였다. 어린 도현을 잘 돌봐줬 던 타잔아저씨는 도현에게 그의 어린시절을 얘기해 주면서 도현의 아버지가 쳤던 전기기타를 건네 주고는 그곳을 떠나게 된다. 성장한 도현은 해주와 함께 록 그룹 '위더스'를 결성해 오디션을 받으러 가지만 고고와 디스코의 열 기에 젖어가던 당시의 상황에 록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현의 그룹은 갈 곳을 찾지 못한다. 극장 식 레스토랑에 취직을 한 '위더스'. 그곳에서 도현은 그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 폭력배의 보스, 뿔뿔이의 정부인 댄서 지원을 만난다.
어느날 도현은 혼자서 춤추고 있는 지원을 몰래 훔쳐보고 그녀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도현은 그의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지원의 주위를 맴돌기만 한다. 지원의 꿈이 가수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보스는 레스토랑의 지배인에게 지원에게 노래를 가르치라고 지시하고 이 일을 도현이 맡게 된다. 지원과 도현은 단둘이 앉아 노래를 배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원은 도현의 숨겨진 재능에 감탄하고 지원의 가슴에도 어느새 도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을 속삭이는 도현, 지원의 모습이 그만 보스에게 드러나고 만다. 보스는 깡패들을 시켜 도현에게 린치를 가하게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지원의 애원으로 보스는 도현을 보내주게 된다. 결국 도현과 지원은 헤어지고 만다. 록 그룹 '위더스'는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면서 해주는 이제 도현이 완전히 지원을 잊었다고 생각한 다. 그래서 도현을 향한 그녀의 마음을 고백할 순간을 찾는다. 그러나 어느날 그곳에 지원이 나타난 다. 해주는 아픈 가슴을 억누르고 지원을 도현에게 안내한다. 지원과 도현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 모습을 몰래 바라보면서 해주는 남몰래 슬픈 노래를 부르며 눈 물을 흘린다. 그러나 행복한 시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어느날 공연장에서 보게 된 살수차리는 댄스그룹의 인기는 도현의 밴드가 지금껏 누려왔던 인기를 순식간에 무색케 하고 만다. 공연 도중 도현은 관객과 실랑이를 벌이고 이를 억누르지 못해 기타를 내팽개치고 공연장을 빠져 나간다. 이 일로 도현은 밴드와 지원을 떠나 잠시 잠적을 하게 된다. 실의에 빠져있는 도현은 혼자서 바닷가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모래성 쌓기를 하며 놀고 있는 꼬마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때 그곳에 해주가 나타난다. 해주의 안내로 강주는 자신의 고향인 동두천으로 향한다. 타잔 아저씨가 운영하던 미군부대 옆의 바 에 들어간 도현은 그곳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한 꼬마가 도현의 아버지가 물려준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의 분위기는 예전의 바가 아니라 하드록 까페라는 작은 라이 브클럽으로 변모해 있다. 도현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그 순간 그곳에 지원과 타잔 아저씨가 나 타난다. 도현의 아이를 낳은 지원은 해주의 도움으로 타잔 아저씨를 찾아와 그를 기다리며 같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자신의 안식처로 돌아온 도현을 축복하듯 옛 밴드들과 많은 사람들이 하드 록 까페 안으로 몰려들고 일제히 춤과 노래를 부른다.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록 뮤지션이나 록 매니아의 이미지는 일반인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몽상가'다. 그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서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길길이 고함을 지른다. 심한 편견을 보낸다면 이들 대부분은 '마약쟁이"고 '오입쟁이'다 이런 험한 표현을 '섹스, 드럭, 록큰롤의 3위 일체'라는 유토피아적 해방의 언어로 만들었던 신화적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 물론 이런 '록의 신화'는 30년이 더 지난 아주 오래된 이야기고, 더구나 미국이라는 먼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그렇지만 꼭 미국만의 얘기도 아니다. 서구나 일본 등 선진국들에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국제적 록스타를 배출하지는 못했어도 탄탄한 저변을 갖춘 록 씬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러시아와 동유럽, 중국 심지어 인도네시아같은 '후진국'에도 '전국민적 록 영웅'이 탄생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빅토르 최, 중국의 츠이 잰 등은 '우리와 피를 함께 나눈' 한국계 인물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얘기들은 남의 얘기고 앞서 얘기한 '몽상'에 속한다.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록'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낯설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도 나의 '일상'과 록의 '이상'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다. 이 거리가 오히려 더 많은 신화를 갈 구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록은 청년 반항의 사운드라거나 20세기의 진지한 예술이기 이전에 대중 음 악'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현실은 여기서는 아직도 '남의 일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 음악'에 집착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좋은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인가. 아니면 창조적인 음악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인가. 우리 주위를 한 번 돌아보자. 우리에게 과연 '음악 문화'가 있는가. 있다고 한다면 중앙집중적인 매스미디어에 의해서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입된 문화가 있을 뿐이다. 아래로부터의 창조성과 자발성은 이 문화에서는 수용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음악인으로 존중받는 사람은 많지 않고, 가요의 곡조는 남아도 음악으로 기억되는 것도 많지 않다. 소수의 음악인들만이 '맨 땅에 헤딩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면서 외로운 길을 선택 했다. 이들 모두가 록 음악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록 음악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달리 말해 현실이든, 신화든, 록은 창조적이 고 진지한 음악의 기호였고, 삶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의 음향적 반영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사랑과 평화, 동서남북 등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선구자들을 시작으로 산울림, 작은 거인, 들국화 등의 그룹사운드 시절을 거쳐 1980년대 이후의 헤비 메탈 밴드들과 1990년대의 많은 '인디 밴드들'에 이르기까지 이 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방금 언급했던 이들을 묶어 한국 록의 정통 계보'를 만드는 일은 무리가 따 른다. 무엇보다도 록은 '한국의 음악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록 음악을 하 는 사람들은 마치 시장의 장돌뱅이처럼 대중음악'판' 주변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세상은 대개 그들을 경멸하고, 그들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방인들이다. 또한 한국 록은 선대의 영향력이 후대로 잘 전승된 역사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단절이 발생하 는 불행한 역사를 가졌다. 그 단절에는 음악외적인 제재와 금기가 뒤따랐다. 따라서 한국의 록 뮤지션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한국 록의 신화창조'같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연주자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공연장을 공동체로 만들어 모법 적인 음악 문화를 형성하는 일은 영원히 미완의 꿈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록 음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과거를 향한 낭만적 향수로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리 낙담할 필요는 없다. 과거를 향한 향수가 '작지만 소중한'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연결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도 그것을 강렬하게 갈구하는 '패거리들'의 문화로 남아있 는다면 말이다. 문화란 고상하게 승화된 예술이기 이전에 비루하고 일상적인 삶의 양식이다. 한 시대 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만인에게 보편적일 필요는 없다. '한국적인 삶의 방식이란 이제까지 바쁘게 뛰어왔으면서도 다시 뛰어야 하는 게 전부라고 해도 지나 치지 않다. 이런 '문화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에만 유일하게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여기 록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신화와 현실이 뒤섞인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록 음 악'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사운드가 현재 우리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있는 그대로 지켜 보자.
작가의 글 - 박용재
내가 성장하던 60, 70년대는 전망 부재의 시대였다. 가난하기도 했고,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독재의 시대였다. 학교에서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그리고 새로 입각하는 장관의 이름을 조회시간에 외워야 하는 시대였다. 자유보다는 강제가 인간보다는 조직이 앞서는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유신, 10.26, 광주민주항쟁, 군사독재, 문민독재를 거쳤다. 그리고 지금 1998년 서울의 가을. 또 다시 우리는 전망부재의 세기말적인 혼란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순환 논리 인가? 지난시절 갑갑한 마음을 흔들어주던 음악은 다름 아닌 록이었다. 강릉에는 그 지방에서 이름난 음악실 '넘버나인'이 있었다. 멋진 디제이도 있었다. 거기에서 록을 듣는 일은 유일한 위안거리였으며 마음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풀 수 있는 일이었다. 록은 그냥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저항정신이 배어있는 음악적인 미학을 지닌 영혼같은 것이었다. 존재에의 저항, 사회악에의 반항, 반전, 반마약 등등 그런 음악이 나는 좋았다. 이번 무대의 첫 의도는 '하드록 카페'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젊은 군상들의 반항과 저항의식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다. 두 번째는 다시 불고 있는 록음악의 부활에 대해 말해 보려고 했다. 청년시절 뜨거운 열정을 식혀주던, 피를 뜨겁게 달구어주던 노래들을 1998년 가을에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세 번째로는 세기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징후를 통해 삶의 형식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능력은 미치지 못했다. 이렇듯 거친 나의 생각은 김광식형의 솜씨로 아름답게 다듬어졌고, 김준원형의 탁월한 음악적인 감수성 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조용한 감성으로 명작을 빚어내는 드라마의 마술사인 황인뢰형의 고뇌로 관객들과 만나 게 됐다. 이번에 공연하는 '하드록카페'는 그 시작이며 작은 반란인지도 모른다. 안주하려는 모든 삶에 작은 혁명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번 무대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께 축복을! 새로운 전망 있을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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