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낙형 '나의 교실'

clint 2024. 4. 16. 04:49

 

 

어느 교실 안.

상화는 교실에서 친구들로부터 심한 소외를 당하는 후유증으로 인해

화장실에서도 눈치를 보고 쉬는 시간에도 괜히 자리에서

어슬렁거리기 일쑤다. 점차 성적도 떨어지는 차에 어릴 적부터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쌓아온 현경이 전학을 온다.

현경은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져 임시로 철거지역에 살고 있는데

언제 헐릴지 모르는 집 때문에 여러 옷을 두껍게 껴입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상화와는 서로 믿는 사이이기 때문에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그 고민을 털어 놓는다. 점점 상화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현경에게 1등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어느 날 바람이 몹시 불어 대던 날,

교실에 토끼 한 마리가 뛰어다니게 되고 (현경이 상화에게 선물한 토끼)

누군가의 손에 의해 3층 교실에서 던져져 죽게 된다.

그리고 학급에서 없어진 물건들이 현경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다.

아이들은 서서히 현경에게 분노를 느끼고 더욱 대담해진 상화는

쉬는 시간때마다 급우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현경을 못살게 군다.

이로써 상화는 자신의 괴로운 역할을 현경에게 강제로 떠넘기게 되고,

자신도 폭력적인 놀이에 빠져들면서 비밀편지 내용들을 퍼뜨린다.

여러 학우들과 진심으로 믿었던 상화의 손으로 껴입은 옷들이 벗겨지자

현경은 견디지 못하고 3층 옥상을 오른다...

 

 

 

 

2000년대 초에 대학로에서청소년 연극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방학이라도 돼야 한두편 만날까 말까다.

중고생이 볼 수 있는 성인극이 많다지만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연극이

줄 수 있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잘 만든 청소년 연극을 만나기는 더 어렵다.

TV 드라마 같은 평이한 구성의 연극이나 청소년 문화를 피상적으로 차용한

가벼운 오락류의 퍼포먼스가 예전의 청소년 연극의 현주소다.

지금은 다양한 공연들이 많고 관심 작가들도 많기에 진일보 한 거다.

연극나의 교실’(김낙형 작·연출)은 무엇보다 기존 청소년 연극의

상투성을 과감히 벗어던졌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청소년 실험연극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파격적인 구성과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형식적 차별성뿐만 아니라 극이 전달하는

주제의식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무대는 단촐하다. 예닐곱개의 책상과 걸상이 전부다.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상화는 어릴 적 친구 현경과의 편지교환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지옥 같은 일상을 견딘다. 하지만 현경이 상화의 학교로

전학오면서 상황은 돌변한다.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다 못한 상화는 결국 현경을

자기 대신 집단 따돌림의 대상으로 끌어들이고, 현경은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한 아이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친구들의 끔찍하고 잔혹한 놀이는

다양한 퍼포먼스로 형상화되는데 그 시각적인 이미지가 대단히 충격적이다.

대사보다는 몸짓과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이 연극의 스타일은 집단 따돌림의 폐해를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절절히 느끼게 한다.

오브제의 다양한 활용도 두드러진다.

두루마리 휴지는 현경이 키우는 토끼로 표현되고,

책걸상은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쉼없이 이동한다.

연극은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시선을 돌린다.

심심풀이삼아 상화와 현경을 괴롭히던 아이들이누가 나를 좀 멈춰줬으면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마지막 대목은 그래서 더욱 가슴 쓰리다.

 

 

김낙형 작가의 글

제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한지는 15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중고등학교에서 각각 100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물으면 몇 가지는 꺼내 보일 수 있지만 "무슨 생각을 했었냐고 물으면 나 자신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치열하면서도 멈춰있었던 기분이들어서 그럴까요아님 많은 시간이 흘러서 기억력부실로? 분명히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 아마도 기억나는 일들은 15일중 어느 특정한 날들에 걸쳐있지만 기억해야할 생각들은 105일중 그날 그 시간 그 순간이 아니면 사라지기 때문일까요? 아님 전자는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기 때문이고 후자는 문장의 형태인데 공부를 너무 열심히해서 들어갈 자리가 없었을까요그 생각들은 어디에 숨어있을까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그 질문만 생기면 고문이었습니다. 팡팡 기억이 축구지도 요즘 청소년들의 그것과 빛깔 차이가 클 텐데하는 걱정으로 머리 이쪽저쪽을 쥐어뜯어봤지만 나오는 건비듬뿐이고.... 사실 이번 극은 4년 전에 학교교실의 문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상연된바있습니다. 그때는 딱히 청소년 대상의 연극이 아니었기에 간략한 주제와 행위 위주의 형식으로 꾸며졌었습니다. '어떤 일들을 보여주면서 무슨 생각 들을 새로 떠올리게 하는 극이 아니라 무슨 생각들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 이극의 목표입니다. , 어쩌면 청소년 관객분들은 대부분 왕따 문제에 있어서는 본의 아니게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연극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면서 보는 관객분들도 계실 겁니다. 불길한 꿈속의 형태들불가해한 속죄욕망들 오래된 과거의 시간 같지만 지금의 원형과 닮은 점 등등을 생각하며 옆길로 샐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보고가는 공연이 아니라 한두가지를 깊게 생각해보고 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바램입니다. 모니터링을 위해 주로 택시를 타셔야 했던 여러 학교 선생님들과 시간을나눠주신 여러 학교 학생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작 기획팀분들 배우분들 스탭분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