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은영 '그루터'

clint 2024. 4. 4. 13:00

 

 

지구 종말의 시간...
마지막 생존인간 맨발, 마지막 동물 왕대, 
그리고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 정식. 
이들은 지상 마지막 장소에 모이게 된다. 
오래 전 지구 탄생일 때부터 살아 온 그루터는 
종말의 예언을 전하고 전한다.
마지막 지구의 순간에 다시 생명의 소생을 위해 
파란, 노리끼, 불띠, 거무테, 희멀건과 함께 맨발을 부르고, 
정식을 만나고, 왕대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살을 하려던 맨발과, 
인간을 증오하는 정식과, 증오로 가득찬 왕대는 삶을 거부한다.
그들은 지구 마지막 순간에 생명의 선한 의지로 지구 생명을 
이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서로에게 희생하려 한다.
그때 멀리서 떠내려오는 땅덩이를 보며 희망을 갖는데...
그러나 그건 쓰레기 더미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최은영의 희곡 중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세상의 종말을 잠언적으로 그려낸 것이 <그루터>이다. <그루터>의 시간과 공간의 배경이 지구 종말 직전이라는 특징 때문에 이들 대사가 잠언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사는 사색적이고 아름답다.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는 내전이든 침략이든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빚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 등등의 종말적 징후가 인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작가의 사유는 이러한 세상에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존재들의 눈물겨운 상봉,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세상에 임신을 한 어린 소녀 맨발과 마지막 남은 개체 호랑이 왕대, 왕대를 추적하고 있는 호랑이 다큐멘터리 제작 PD 정식 등이 만나 절망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그루터는 '시공의 운행 이치에 순응하는 나무들의 수장'인데 현자 같이 인간들에게 위기가 왔다는 것을 깨닫기 원한다. 사람들의 탐욕 때문에 결국 세상은 무너지고 모두가 사라졌다. 그런 세상에 맨발은 임신했지만 지구의 모든 사람이 죽어 혼자가 되었다며 스스로 사라질 계획을 세운다.

 

최은영 작가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른 존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그래서 자연은 맨발에게 죽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맨발은 계속 저항하는데 그때 정식이 나타난다. 정식은 인간임을 거부하고 자연에서 반인반수로 살아가며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호랑이 왕대를 기다리고 있다. 정식은 다큐PD로서 인간들의 터전이었던 자연을 망치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이 숲에서 동물처럼 살아왔던 터.... 임신한 아이의 진통이 시작된 맨발은... 그리고 이 지구의 모든 동식물들은 어떻게 될까....? 

다시금 환경에 대한 인류의 책임과 역할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