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괴짜 예술가 서윤성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문자메시지... (중략) 암에 걸렸습니다, 제가.
3기이고, 수술하면 살 수도 있답니다.
5:5 정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수술비가 없습니다.
국민은행 866821-83-873992 서윤성
물론 안 보낸다고 서운해 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몇 푼 보낸다고 대단히 고마워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까짓 거래에 감동을 기대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조금 위험한 투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살아나면 이자 쳐서 돌려받으실 거고, 죽으면 꽝입니다.
여러분이 가짜 예술의 등에 올라타고 질주하는 동안
진짜 예술과 씨름하며 죽어가고 있는 예술가, 서윤성 씀.
문자는 적폐로 물든 연극계에 불편한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정표를 이용해 거액의 작품제작지원금까지
타낸 서윤성은 돌연 사라지는데...
작가의 글 - 윤서비
대본공모를 통해 셰익스피어 같은 훌륭한 이야기꾼을 배출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하이너 뮐러, 페터 한트케가 나올 수 있을까? (특히 한국에서?)
또는 대본이라는 형식이 현대 연극의 다양한 양상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희곡은 실연예술가와 어떻게 만나야 하고,
또 희곡은 관객을 어떻게 예상해야 하며,
과거에 쓰인 희곡은 공연에서 어떻게 현재화되어야 하나?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진 이상, 희곡쓰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희곡 집필 단계의 실험은 어때야 하는지 골몰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허구라는 틀 자체, 연기라는 독특한 예술형식,
한국 연극현장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을 다루는
‘연극에 대한 연극’을 쓰게 되었다.
하나의 사건을 스토리의 골자로 하되, 상황이나 대사보다는
상징적 미장센으로 주제를 암시하고자 애썼고,
희곡의 집필 시점과 공연 시점을 매칭시키면서
현실과 환상을 적절하게 뒤섞고자 했다.
다양한 담론들을 다루되 너무 엄숙하지 않도록,
논쟁을 촉발하되 교묘하게 세련된 이중성이 표현되도록 고민했다.
특히, 내용이 곧 형식이 되고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심했다.
알프레드 자리, 이오네스코, 페터 한트케 같은 작가들을
감히 가슴에 품고 작업하는 내내, 오만과 겸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고,
당당함과 소심함을 오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작품도 하나 정도 있을 법하다...며
용기를 내보는 쪽에 표를 던졌다. 작품을 쓰는 내게는 물론이고,
앞으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될 여러 연극 예술가들에게도
‘실험과 도전으로써의 연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내내 가지고
집필에 임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대본공모에 내고, 선정되고,
쇼케이스까지 하는 자체가 흥미로운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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