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홍진 '가스통 할배'

clint 2023. 12. 9. 06:1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정세가 불안하자
평소 가스통 할배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장필국은 반공 활동에 더욱 열을 올린다.
반면 사업실패로 대리기사 일을 하고 있는 아들 정석은 아버지 필국의 행동에 항상 불만이다.
필국은 군대시절 자신의 중대장이었던 이인호가 부럽다.
그의 아들 성준은 어엿한 변호사가 되어 있고
인호는 말년을 편안하고 부유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늘도 늦게까지 대리기사 일을 하고 들어와 자고 있는 정석은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떠는 아버지가 짜증난다.
게다가 여동생 연자가 남편에게 매를 맞고 친정을 찾아온다. 
정석에게는 아버지나 여동생이 모두 답이 없는 한심한 사람들로 보일 뿐이다. 
연자가 친정을 찾은 날은 마침 필국의 생일이다.
연자는 케익을 준비하고 연자와 정석은 아버지의 생일 축가를 부른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필국과 정석은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가 난 정석은 집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새벽 늦은 시간, 필국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대리운전 일을 하던 정석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정석은 크게 다쳐 수술을 하게 되고 결국 의식을 찾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석의 과실로 사고처리가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데....

 

작가의 글 박홍진

일전에, 광장시장에서 막걸리를 한잔하고 종로를 거쳐 광화문까지 걸은 적이 있었다. 광화문에 다다르자 진보단체의 반정부집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묘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옛 군복 차림의 7~80대 노인들이 진보 단체 바로 건너편에서 "빨갱이들 물러가라!"고 진보 단체에 맞불을 놓고 있던 것이다. 욕설은 물론, 가스통까지 동원한 노인들의 폭력적인 모습에 시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그날 특별한 불상사는 없었지만 착잡한 심정은 오랫동안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가스통 할배'를 검색했더니 이분들의 우익활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중은 이분들의 폭력적인 행태에 비난 일색이었다. 이론이 뒷받침된 좌우 이념 논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이 든 노인네들의 추잡한 모습만 부각되어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분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우리 이웃이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온 분들이 아닌가? 저분들에게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안되면 때려 부순다는 폭력적 성향과 편향된 이념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인가? 아니 변화되어야 하는 건가?'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심각한 사건, 사고로 얼룩져 있다. 그에 따른 갑론을박이 SNS를 타고 그 어느 때보다 논쟁적이다. 논쟁은 담론을 만들고 보다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실망스럽다. 오히려 우리 사회를 둘로 쪼개는 역효과만 가져오고 있다. 좌 아니면 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너무나도 뻔한 상식,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나는 그렇게 본다. 우리는 지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무서운 해 프닝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가스통 할배>는 좌우 논쟁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가족의 붕괴를 통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저항 - 권리를 위한 투쟁은 무엇일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려는 것이다. 가스통을 들고 광장으로 향하는 할배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에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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