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원종 '두더지의 태양'

clint 2023. 12. 11. 13:47

 

 

극중 배경은 한여름 고등학교 복도. 

17살 세진은 전교생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인물이다. 

유급생인 인호 일당은 세진에게 대걸레로 세수를 시키거나 

주먹 세례를 퍼붓고 돈을 갈취한다.
어느날 자신을 괴롭히는 인호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되자 민석에게 도움을 청하는 세진. 

그러나! 민석은 8년간 집밖을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왕따와 은둔형 외톨이와의 만남! 

학교에서 인호 일당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세진, 

친구라고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민석 밖에 없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세진은 메신저 친구인 민석과 머리를 맞댄 끝에 

인호를 흉기로 살해하고 토막 내 한강에 내다버린다. 

이들은 좀더 대담한 행동에 나서기로 하고 제자인 슬기를 성노리개로 삼은 담임교사를 

다음 타깃으로 삼는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져 오면서 상황은 점점 긴박해 진다.

 

 

 

 

칼이어야 한다. 상대에게 내가 당한만큼의 고통을 주기위해서는. 왕따와 몰매와 주먹다짐에 시달린 중학생이 쉽게 더할 수 있는 힘. 칼로 급우를 찔렀다는 엽기적인 사연이 소설과 영화가 아닌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극단 작은 신화의 스물 여덟 번째 레퍼토리 <두더지의 태양>은 무대에 피를 낭자하게 흩뿌리는 그간의(?) 방식 대신 번뜩이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희생자의 윤리 보다는 폭력 주체의 불가피성에 초점을 맞췄다. 2009년 신작희곡 페스티벌 선정작인 이 작품은 현 한국사회의 고등학생 이야기를 다룬다. 학원물이라, 산뜻하고 발랄한 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무대 위 실상은 암울하고 전혀 유쾌하지 않다. 프로그램에서 “하드코어 코메디” 를 표방했다고 하지만, 코메디보다는 하드코어가 훨씬 세다. 폭력과 욕설, 비아냥과 조롱이 난무하는 이 극은 우리 사회를 미화하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문제적 현상을 그대로 무대화 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편하다. 무대에 만연한 폭력의 실상은 관객을 괴롭게 만든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원조교제, 패거리 문화, 은둔형 외톨이, 온라인 폐인, 학업지상주의 등등 교육문제의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진다. 인터넷, TV,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접했던 문제적 실상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이러한 자극적 ‘흥미’ 는 관객을 충격과 사유의 미로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한다. 폭력을 고발하는 이 작품은 폭력의 ‘재현’ 을 통해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면서, 한편으로 이를 청소년의 ‘성장’ 과 연관시키고 있다. 성장 드라마는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을 전제로 한다. 그러면서 ‘성장’ 자체를 아픔과 고민을 동반하는 성숙 과정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이 연극은 뭔가 어긋난 지점을 지향하고 있다. 외톬이 주인공이 살인을 하고 나니 세상이 달라져 보였고, 뭔지 모르게 앞으로 나아간 듯한 느낌을 깨달음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성장’ 이고 ‘진보’ 일까? 과연 발전을 위한 성장통이 맞는 것인가?

 

 

 

 

작품에서는 폭력 혹은 살인의 원인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강자는 약자를 구속하고, 약자는 강자가 되기 위해 칼을 든다. 더해지는 폭력의 연쇄적 고리. 원인이 편재되어 해결할 수도, 해결하기도 어려운 무방비의 폭력 상태.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담임의 말은 이 사안이 ‘회피’ 말고는 ‘답 없는’ 문제임을 여실히 반증한다. 학교를 찾아온 세진의 어머니에게 전학을 종용하던 담임은, 사정하던 그녀에게 성을 내며 답한다. “아예 청와대에 가서 말하세요. 그러면 교육청에서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럼 교장한테 연락이 갈 거고, 교장은 담임인 저에게 조사하라고 시켜요. 결국 제가 하는 겁니다.”

이쯤 되면 성장드라마에서 그 ‘성장’ 이라는 말은, 영화 제목처럼 “공공의 적”이 판을 치고, “부당거래” 가 빈번한 그 살육과 경쟁의 장 가운데 부당한 폭력에 길들여지고, 비윤리적 ‘타협’에 적응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인호를 토막살해해서 유기하던 세진과 민석, 현규 일당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피해자의 정당함으로 위장한 가해자의 ‘칼날’ 을 들이댄다. 그 와중에 왕따는 연대를 하게 되고, 히키코모리는 은둔을 포기하며, 찌질이는 용기를 내는 아이러니컬한 사태가 벌어진다.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성장 모험담의 외피를 입게 되는 셈이다. 담임 살해를 실패하고 그의 발밑에서 ‘귀찮아서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고 오열하는 세진과, ‘너희 쓰레기들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가졌다’ 며 세진을 밟는 담임의 절규하는 모습에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격이 결국 한데로 섞이게 되는 ‘폭력성’ 의 무참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두더지의 태양>은 하드코어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하드코어하게 텍스트에 풀어냈고, 정리된 무대로 옮겨졌다. 즐길 수 없이 불편했던 두 시간 내내 누굴 죽여야지만 성장하게 되는 불쌍한 어린 존재들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사회를 모방하는 ‘유사’ 범죄 현장이 된 학교.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면 스스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 태초에 두더지로 주어진 존재에게 태양을 보는 일은 그 자체로 파국을 예감한 일일 테다. 눈먼 자의 손에 칼이 주어지는 것. 그것은 자기의 성장이 아니라 괴물의 성장이며, 발전이 아니라 절벽으로 내딛는 발걸음인 것이다. 과연 출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작가의 글 - 최원종
이런 꿈을 오래전부터 꾸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수천마리의 두더지들이 사막을 달려가는 모습들. 바다를 건너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모습들. 어느 날 도시 한복판 위로 수천마리의 두더지들이 사람들을 피해 뛰어가는 모습들. 그 모습들은 저의 머릿속에서 늘 한 여름의 태양과 만납니다. 두더지의 눈은 퇴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빛을 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퇴화되어버린 것인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그 어떤 선택이든 하나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빛과 만나고 싶어" 그런 두더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더지. 우리가 마음속에서 키우고 있는 두더지 어느덧 우리의 마음속을 헤집으며 돌아다니고 있는 두더지들이 빛과 만나는 이야기. 저는 19살에 저의 첫 번째 두더지를 만났습니다. 두더지 나이도 19살이었습니다.  19살의 두더지는 선언을 했습니다. 지금의 감수성을 절대 잊지 않겠어! 그 녀석은 그 결심을 태양처럼 바라보며 견뎌왔고 어느덧 나이가 들어 36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곧 조만간 40살이 되겠죠. 19살, 26살, 28살, 32살 34살 그리고 36살은 제게 커다란 고통과 열망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 나이 때마다 두더지를 한 마리씩 만났으니 지금은 총 여섯 마리의 두더지 들을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한밤중 제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컴퓨터 앞에로 걸어오면 졸졸졸 따라와서 컴퓨터본체와 모니터 옆에 먼저 몸을 기대고 눕는 여섯 마리의 두더지 저는 그 두더지의 소리를 들으며 자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하얀 모니터 속 텅 빈 한글문서에 저는 '세상' 이라는 단어를 쳐봅니다.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칠 때마다 내 머리 속에서 떠올려지는 어떤 폐허 같은 이미지는 지를 무척 공포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한때는 공포소설가 가 되어볼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공포를 잘 느끼니까 공포소설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스티븐 킹이나 도준치의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더 로드'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어서 즐겁게 봤던 영화입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공포하고 있다 면 그것은 언젠가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겠죠! <두더지의 태양>은 세상과 싸워나가는 아이들의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세상과 맞서 싸울만한 힘도 무기도 없습니다. 그때 어떤 힘을 가져야 할까요. 어떤 무기를 들고 나를 짓누르는 이 거대한 세상의 공포와 싸워서 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그것이 늘 화두였습니다. 살의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희망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그 누군가에게, 그 대상에게, 혹은 세상에게 살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 살인을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고 목표물을 향해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것. 그 노력들이 그 고민들이 희망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더 이상 밑바닥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절망의 마음에 있을 때 자신을 절망에 빠트린 무엇을 향한 살의는 두더지가 태양과 마주하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실명(ces of eyesight) 되더라도 말이죠. 저는 그런 노력들이 방안에 있던 존재들을 방밖으로 나오게 하고, 태양과 마주하게 하며, 본인 자신의 힘을 느끼게 하며, 세상의 공포와 맞서는 힘이 되어줄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더지의 태양>은 희망을 얘기하는 이야기입니다. <두더지는 태양은 눈부신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두더지였던 저에게 빛이 되어줬던 모든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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