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재현 '사파리의 흉상'

clint 2023. 11. 30. 08:23

 

 

 

「사파리의 흉상」-극단 성좌 (문예회관 소극장, 1991년 9월 28일∼10월 10일)


1장
교정에는 아직 제막을 하지 않은 동상이 있고 그 주위에는 사람들이 엄숙하게 서있다. 기자인 양찬식은 사파리에 있는 한천 박갑도 선생의 흉상 제막식을 취재하러 나타난다.
2장
양찬식은 청산학원의 교장인 곽현채를 만난다. 양찬식은 청산학원의 장학재단과 선행에 대해서 칭찬하고 한천선생의 일대기를 20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하려고 한다는 뜻을 밝힌다. 이때 한천선생의 형인 박문도가 나타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한천 박갑도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군에 입대했다. 그는 해군에서 선박 정비공 일을 배워서 제대 후에는 기관사로 취업을 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을 떠나 라스팔마스로 가서 월급을 모와 폐선 하는 배를 산다. 그리고 그 배를 수선해서 원양어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드디어 선박 왕이 된다.
3장
한천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며칠 후 사파리에 의문의 사나이가 찾아온다. 의문의 사나이 강진우는 한천선생의 가족을 찾아온다.
4장
강진우는 박갑도 아래에서 함께 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박갑도의 심부름으로
포르투갈에 갔다가 마약밀매로 잡혀서 형무소에서 8년 동안 복역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생계비를 요구하고 이 이야기를 들은 박문도와 박상숙은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미친놈 취급해서 내쫓아 버린다.
5장
이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양찬식은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박문도는 강진우에게 그냥 돈을 주어서 보낼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을 인정해 버리게 되고 소문이 점점 확대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해서 정신병동에 가둔다.
6장
사파리 사람들은 서서히 한천선생의 업적을 의심하게 된다. 박상숙은 양찬식과 함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때 초췌한 모습의 강진우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그는 그동안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폐렴으로 요양소에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강진우를 욕하며 폭행하자 화가 난 강진우는 칼을 휘두르다가 유치장에 가게 된다.
7장
유치장에 갇혀있는 강진우를 양찬석이 찾아온다. 양찬식은 단지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강진우는 자신의 착잡한 마음을 이야기하며 한천선생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배를 타던 시절 박갑도와 강진우는 절친한 사이였다. 한 때는 고기가 많이 잡혔지만 나중에는 적자로 어려움에 직면하자 박갑도는 마약을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박상숙은 강진우가 정당방위로 입건되지 않은 사실을 알리려고 나타난다. 또한 강진우에게 요양할 것을 권유하고 치료비는 일체 재단에서 지불하겠다고 말한다. 박문도도 나타나 강진우에게 백만 원을 주며 떠날 것을 요구한다. 강진우는 난감해 한다.
8장
한밤중에 강진우가 동상이 있는 교정을 찾아온다. 그는 한천선생에게 그만 사파리를 떠나겠다고 이야기하고 박문도가 그에게 준 돈을 되돌려 준다. 이때 한천선생의 동상이 걸어 나와 그를 꾸짖으며 지난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는 선박경영의 어려움으로 마약밀매를 하게 되고 자신의 실수로 강진우가 잡히자 당분간 몸을 피하고 있는 중에 죽게 된다. 박갑도는 강진우를 돕고 싶지만 죽은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말만을 남긴 채 다시 동상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강진우는 죽음을 선택하게 되고 그는 자신의 동맥을 직접 끊는다. 그러나 강진우는 극적인 순간에 박상숙에 의해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한편 박문도는 양찬식에게 쓰던 기사를 계속 쓰기를 바란다고 하고 양찬식은 진실을 밝히기 전에는 기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9장
박상숙은 성의껏 강진우를 간호한다. 박문도는 그를 요양소로 보내려 하고 상숙은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
10장
박문도는 양찬식에게 기사 마무리를 한천 해양박물관의 기공식으로 끝을 맺어주길 바라지만
양찬식은 그동안 알게 된 진실에 대해서 말한다. 경찰청에 있던 자료에 박갑도는 마약 밀매꾼으로 올라 있다. 박문도와 상숙은 몹시 놀라지만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해양박물관 기공식에서 거짓 연설을 한다. 양찬식은 기자로서 진상처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동안 연재한 기사를 생각해서 진실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는 대원칙에 도전하고자 노력한다.

 

 

 

작가 이재현이 쓰고 길명일이 연출한 극단 성좌의 「사파리의 흉상」은 해외에서 큰돈을 벌어 자신의 고향 마을을 위해 유산을 내놓은 어느 기업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회적 업적과 인간적 음험함의 양면성을 대비시킨 작품이다. 고향 사파리에 전 재산을 희사하고 죽은 박갑도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형 박문도는 마을 유지들과 함께 흉상 제막식을 거행하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기자가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 앞에 강진우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급작스럽게 전환된다. 박갑도를 모시고 선원 생활을 했다는 그는 자신이 박의 마약밀매 행위의 억울한 희생자임을 주장한다. 강의 발설을 우려한 박문도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를 강제로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또 한 번의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 강진우는 인질극을 벌이며 대항하지만 자신의 진실이 은폐되는 서글픔에 자살을 기도하나 실패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박문도에 의해 작은 보상금과 더불어 요양원으로 보내지게 된다.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게 된 취재기자는 고민에 빠진다. 한 인간의 진실보다는 박갑도가 이룩한 업적을 통해 혜택을 받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진실이 감추어져야 한다는 박문도의 논리에 그는 착잡한 심정에 빠져 그 질문을 관객에게 남겨준다. 이 작품이 던져는 질문은 다소 의미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주지는 못하기에 깊은 감동으로 전이되지 못한다. 더욱이 작품의 전반적 구조가 이러한 질문에 모두 걸려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빼고 나면 작품의 구성이 매우 취약해지고 마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단조로운 무대구조에 별 다른 특징 없는 연출로 작품은 대체로 생기를 잃은 듯하다. 윤주상의 노련한 연기 수준에 비해 다른 배우들이 보여주는 그것은 현저히 미달되거나 아니면 열의가 없어 보인다.

 

 

작가의 글 이재현

한때 우리 나라에도 동상제작 붐이 일어 앞서간 여러 선현들의 동상이 거리 곳곳에 세워졌다. 외국에 나가봐도 그들 나름대로 의의 있는 동상이 도치에 의연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년에 KBS울산방송국이 공업도시화 되어 거의 외지인으로 가득 찬 울산시에 애향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 고향출신인 외솔 최현배선생의 동상을 세울 계획을 세우고 외솔선생의 거룩한 업적을 극화해줄 것을 의뢰해와 집필을 하고 필자가 대표로 있는 극단 부활이 울산에 가서 공연하여 그 수입금으로 울산 남부도서관 앞에 외솔선생의 동상을 세운 바 있다. 아주 멋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상의 수난시대도 다가와 스탈린의 동상이 목이 잘린 채 길거리에 나뒹구는가 했더니 레닌의 동상마저 철거되는 광경을 우리는 볼 수가 있었다. 동상을 세우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것을 다시 내치는 사람은 누군가? 이번에 그 동상에 대해서 다루어본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절대가치의 한계성에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들이 상투적으로 변하고 있는 위선과 진상의 정체도 도마위에 올려놓고 싶었다. 한 인물의 진정한 평가는 적어도 한 세기 이상의 시간은 필요한듯 한데 당대에 이러한 평가를 내린 김일성의 동상은 언제 이런 수난을 당할 것인지?

작가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