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곽노흥. 김흥우 공동작 '하늘의 울림'

clint 2023. 11. 29. 09:09

 

 

 

고구려 성밖에서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던 온달은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하고 세상물정을 몰랐지만 착하고 곧은 마음씨를 가진 청년이었다. 워낙 가난한 사람에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고 이에 대한 놀림에도 화를 내지 않아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어느 날 온달의 집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아내가 되길 청한다. 궁궐에서 내쫓긴 평강 공주였다. 젊은 나이에 아름다운 여인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만은 욕심 없고 제분수를 알았던 온달은 평강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욕심 없고 제 분수를 알기는 제 어미도 마찬가지였다. 평강의 목소리만으로 그 지체 높음을 알고 아들과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이미 굳은 결심을 하고 온 평강은 두 사람을 설득, 혼례를 치르기에 이른다. 온달은 아내가 된 평강에게 글을 배우고 무예를 익혀 늠름한 청년으로 변한다. 그 즈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지방을 침범하니 평원왕은 온달로 하여금 이를 맞아 싸우게 한다. 온달은 용맹스럽게 군사를 지휘하며 전투에 임해 적군을 격파하고 돌아온다. 평원왕은 이때야 비로소 온달을 사위로 맞아 "대형"이라는 높은 벼슬을 내린다. 얼마 후, 평원왕이 승하하고 고구려 26대 영양왕이 즉위했다. 온달은 영양왕 앞에 나아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고 그 곳에 살고 있는 고구려 백성들을 구하겠다고 간청한다. 영양왕의 승낙을 받은 온달은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나 아차산성 전투 중 전사한다.

후일 장례를 치르려고 하나 관이 움직이지 않아 평강공주가 달려와 삶과 죽음이 이미 정해졌으니 고이 가소서 하며 눈물을 흘리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강인한 여성 평강공주는 매일 그렇게 울기만 하니 사대부집 부인이 되기는 글렀고 어디 온달에게나 시집보내 주련? 고구려 25대 평원왕의 놀림은 평강이 울 때마다 반복되어 버릇처럼 굳어져 궁내에서 울보 평강공주는 온달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혼기가 되자 왕은 평강을 명문가인 상부 고씨 집안에 시집보내려 하나 평강은 완강히 저항했다. 필부조차 거짓말을 꺼리거늘 어찌 아바마마께서 하신 말씀을 어기오리까? 저는 온달님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결국 궁궐에서 내쫓긴 평강은 물어물어 온달의 집을 찾아간다. 마음이 한데 얽히면 신분의 고하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마다하는 온달을 설득 그의 아내가 된 평강은 궁궐을 나올 때 가지고 온 황금 팔찌를 팔아 논밭과 집을 사고, 소와 말을 샀다. 그리고는 온달에게 글과 무예를 익히게 해 바보 온달을 장군 온달로 바꿔 놓았다. 평강의 이런 위대한 사업은 지순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신분제도 등 당시의 이념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남자를 구국의 장군으로 변화시킨 주체적이고도 강인한 여성, 바로 이 시대가 바라는 충·효를 겸비한 작품이다.

 

 

 

작가의 글 - 곽노흥. 김흥우

 

우리는 고구려를 말할 때면 민족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연연히 이어오는 고구려인의 용맹과 기상이 우리 민족의 표상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과 과감한 국토회복의 투쟁을 벌여 영토확장을 해나갔으며 굳건한 통일국가체제를 완성시켰던 것이다. 부족국가로 출발한 고구려족은 B.C 37년에 동명성제에 의해 주변의 여러 부족을 규합 통일하여 고대국가의 틀을 마련하였으며, 이때부터 고구려의 활달한 투쟁정신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제의 국가적 목표는 옛날 단군왕조시대의 영화를 되찾고 그 시대의 영역을 회복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고구려의 국가적 목표였으며 고구려인의 정 신적 지주였다. 이러한 고구려인들의 정신을 집약해보면 그들의 정신은 곧 상무정신(常武精神)인 것이다. 고구려인은 늘 상무정신으로 무장하고 외세에 대항하여 투혼을 불사르고 승리를 쟁취했다. 이러한 정신은 발해, 고구려의 국선도, 신라의 화랑도 임진왜란시의 승병, 의병정신, 일제치하의 독립군 등으로 맥을 같이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온달장군의 이야기는 자칫하면 만화나 우화로 전락하기 쉬운 소재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고구려인들의 투혼이 온달에 의해 묘사되고 있으며 그의 애국정신은 바보 온달이라는 정체적 이미지를 뒤바꿀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음을 반증해주고 있다. 온달장군이 바보라는 것 혹은 바보였었다는 것 자체가 커다라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어찌 바보가 대형(大兄)이란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으며 장군이 되어 고구려를 위해 살신보은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시대를 잘못 만난 이유로 온달은 산속에 칩거하며 일반적인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온달의 어머니는 장님이었으며 온달을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바보처럼 키워야 했다. 그것은 온달의 가계가 궁궐로부터 숙청당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온달의 생애는 고구려 후기인 평원왕(559) 시절을 살아간 인물이다. 당시에는 수나라의 침입이 잦았고 장수왕 때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고구려는 계속적인 남진정책으로 신라와 백제를 대상으로 치열한 영토확장 전쟁을 치뤘다. 평원왕은 온달로 하여금 장수왕 시절의 고구려 영토를 회복시키려 하였고, 마침내 온달은 아차산에서 애국적인 생애의 최후를 맞게 된다. 온달장군의 위상은 그보다 몇 년 뒤 살수대첩으로 이름난 을지문덕장군보다 형편없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궁궐을 저버린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끝내는 평원왕의 신임을 받아 대형(大兄)의 벼슬을 하여 나라를 위해 아차산에서 장렬히 산화하기까지 그의 생애는 설화적 차원을 넘어서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 작품은 바보 온달로 인식되어 지던 온달장군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해석하며 온달은 바보가 아니었다라는 데서 출발하고 있는 종합적인 총체연극이다. 바보 온달이 아닌, .. 채를 겸비했 던 훌륭한 고구려의 청년 온달이 극의 주인공인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설화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온달장군의 위상이 새롭게 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쪼록 '하늘의 울림을 위해 애써 주신 제3부대 정운 대표님과 배우, 제작진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일 '영웅 만들기'  (1) 2023.11.30
이재현 '사파리의 흉상'  (2) 2023.11.30
최인석 '사막이 꽃이 되리라'  (1) 2023.11.28
우봉규 '서천 꽃밭'  (2) 2023.11.27
이강백 '온갖 잡새가 날아드네'  (1) 202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