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지숙 '거룩한 양복'

clint 2023. 10. 13. 14:09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연극, 영화, 소설 등 장르를 불문하고 무척 많다. 

그러나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은 왜 그런지 찾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무척 적다. 

그런데, 김지숙의 <거룩한 양복>이 연극으로는 처음 그것을 다룬 것 같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끈 이는 순박한 국민이었다. 불합리한 대우와 낮은 임금에도 하루하루 밥 한 끼를 위해 열심히 일한 노동자와 소시민들 말이다. 이런 현실을 18년 동안 견딘 이들은 결국 쌓여 있던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의 소원은 자유”. 동요 <우리의 소원>의 가사를 바꿔 목 놓아 부른다. 18년 간 독재를 자행한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연극은 먼저 현재를 보여준다. 한 세대의 시간마저 훌쩍 넘어선 어느 날, 최정호는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해 냈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순간, 당시 독재자에게 머리가 으깨진 노동자 유치진이 산 사람처럼 찾아왔다. 최정호는 유치진과 함께 그날 그 사람들을 찾기위해 양복을 갖춰 입는다. 1979년 10월16일, 평범한 청년 최정호가 면접을 보러 가던 길에 우연히 시위대에 휩쓸리면서 겪는 일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무자비한 폭력 속에 우연히 마주한 이름모를 노동자와 대학생, 고등학생들은 모두 평범하지만 선량하고 위대한 역사의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담담하게 풀어간다. 부마민주항쟁은 시민들에게 민주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거룩한 양복>은 박정희가 10.26사태로 암살당했을 당시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한 고등학생이 “우리 할매가 대통령 죽었다고 대성통곡해서 나도 엄청 울었다”라고 말하자, “야! 너거 독재자가 죽었는데 울긴 와 우는데, 잘 죽은 거다”라고 친구가 외친다. 그는 부마민주항쟁을 통해 얻은 민주의식에 따라 생각한 것이다. 이 장면을 통해 박정희가 없으면 세상이 멈출 것만 같던 사람들과 독재 정치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이 동시에 드러났다. 그 시절을 살던 사람은 모두 ‘울분’이라는 감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위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잡혀갔다. 고문실에서 밧줄에 매달리고 물고문 당하며 매질을 견딘다. <거룩한 양복>은 이들 중 2명을 조명한다. 한 대학생이 “제가 형님을 방화범으로 만들었어요”라고 말하자, 한 노동자는 “그게 와 동생 탓이고, 데모하다 잡혀온 사람들 누구도 잘못한 사람 없다”라고 답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범죄자로 치부한 정부의 행태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을 뿐이다.

 

 



부마민주항쟁은 민중들이 민주화를 이루고자 처음으로 일으킨 시위다. 거세게 저항하고 울분을 토하는 민중의 모습에 정부는  비상식적인 고문을 행했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 장면에 신이 나는 음악을 넣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라는 걸 부각하려 했다. 연극에서 주인공의 ‘양복’에는 부마민주항쟁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부마항쟁 당시 주인공 최정호는 함께 투쟁했던 공장노동자에게 양복을 빌려주기로 약속했다. 그 시절 양복은 서로가 갈망하고 도달하고 싶었던 상징적인 물건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최정호는 그 양복을 입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다. 부마항쟁 시절의 사람들을 계속 기억하고 그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끝내 최정호는 그 양복을 떠도는 망령인 유치진에게 부탁한다 " 이걸 김도철에게 꼭 전해달라"고 한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에게 통째로 주려고... 

 



연극은 <부마항쟁 진상규명·보상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기도 했다. 진상규명위는 부마민주항쟁 참가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항쟁에 참여한 증거를 요구했다. 최정호한테도 마찬가지였다. “내 기억 속에 있다. 너희들이 믿지 못할 뿐이야”라고 최정호는 외치지만, 진상규명위는 증인과 증거가 있어야 보상을 해줄 수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이 장면은 연극에서만 풀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됐다. 

 

 

 

 

김지숙 작가는 “진상규명위 때문에 부마항쟁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자괴감으로 바꼈다고 진술한 분들이 많다”라며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위해 참여했던 사람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모순된 현실이다”  또 “이름만 남는 운동으로 부마항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주인공 최정호처럼 계속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