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구지수 '과자집에 살아요'

clint 2023. 10. 12. 22:03

 

“이게 정상은 아닐 거야. 열여섯, 열여덟이 이렇게 죽도록 걸어야만 살 수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잖아.” 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현재' '초록'은 깊은 숲속의 과자집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둘의 옆에는 20살 언니 '아이'가 있다. 마을로 나가보자는 초록과 마을을 두려워하는 현재, 마을을 혐오하는 아이. 이들은 무너져가는 과자집에서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고주영 드라마투르그)

집이 없는(homeless) 사람들이 있다. 가족제도에서 탈락되거나 배제된 사람들, 더구나 아직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되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비성년의 청소년들은 의료, 주거, 교육,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그들에게 '마을' '읍내', 나아가 나라는 살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데도 살 수 없게 만드는 공동체에 불과하다. <과자집에 살아요>를 읽는 과정은 얼핏 '헨젤과 그레텔'의 잔혹동화 버전으로 보이는 희곡이 동화나 우화가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혹은 보고 싶지 않았던 현실임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초록이 도끼를 든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성인이 되는 연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 사회의 성원으로 살고 있는 나는, 우리는 과연 사회에서 '어른'이기도 할까를 뼈아프게 질문해본다.

 

작가의 말 - 구지수(2022 동아일보 신춘문예희곡 당선)

모든 존재는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당위적 명제를 수호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착각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나는 <과자집에 살아요>를 쓰는 동안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누구는 쉽게도 가로질러 가는 길을, 왜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헤매야 하는지, 철조망은 무엇으로 끊어낼 수 있는지, 부서진 치아로 음식을 씹는 것, 그리고 도끼를 등 채,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모두와 이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이 희곡을 읽고 생기는 오해와 의문이 오로지 나에게로 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