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생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12분의 1은 꿈을 꾼다. 그러나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 정도로 생각할 뿐 잠자고 꿈꾸는 사이 벌어지는 일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수면 주기는 잠의 깊이와 뇌파의 종류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마지막 단계에서 안구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두뇌활동은 활발해지면서 선명한 꿈을 꾼다. 렘(REM) 수면 또는 역설수면(逆說睡眠) 단계다.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잠'은 역설수면 다음에 여섯 번째 단계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스물여덟 살 의대생 자크의 어머니 카롤린은 수면을 연구하는 신경생리학자다. 카롤린의 설명에 따르면 6단계 수면은 좀더 깊은 잠을 인공적으로 유도해 얻어지는 단계다. 심장 박동은 더 느려지고 몸은 이완되지만 두뇌활동을 더욱 활발해진다. 카롤린은 이 단계를 '솜누스 인코그니투스'(미지의 잠)라고 이름 붙인다. 그러나 6단계 수면을 확인하기 위한 비밀실험 도중 피실험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카롤린은 다음날 실종된다. 어머니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자크는 꿈에서 20년 뒤의 자신을 만난다. 미래에서 온 48세의 자크가 자초지종을 전한다. 카롤린이 수면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다음 실험을 성공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났다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카롤린은 강연에서 자각몽을 완벽히 통제해 불안·우울·공격성·자살충동 등을 제거한 말레이시아 세노이족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자크는 혼란에 빠진다. 미래의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꿈 속 인물의 조언을 듣고 어머니를 구하려 찾아갈 것인가. "내가 지금 자네한테 말을 할 수 있는 건 미래에 내가 한(그러니까 '자네'가 하게 될) 발명 덕분이야." 중년의 자크가 한 말에 6단계 수면의 비밀이 담겨있다.
작가는 수면과학의 실제 연구결과와 상상력을 결합해 정교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다. 1980년대 과학 전문기자로 일하면서 쓴 자각몽에 대한 르포, 2014년 시작된 불면증이 이 소설을 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작가가 작중 인물들의 입을 빌려 소개하는 '잠 잘 자는 법'이나 '잠을 이용해 공부하는 법'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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