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의 주인공은 ‘바스테트’라는 고양이로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여신의 이름을 딴 ‘집고양이’다. 나는 프랑스 한 도시에서 살았으나, 어느 날 인간들의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거리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지옥과 같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벌어졌으며, 그동안 지하에 숨어 지내던 황갈색 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 마치 다시 중세로 돌아간 것처럼 ‘페스트’가 창궐했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추풍낙엽처럼 죽어 나갔다. 나는 파트너인 고양이 ‘피타고라스’와 이전부터 동무였던 앵무새, 개, 토끼, 돼지, 그리고 인간 집사인 나탈리와 나탈리 짝이면서 내 정수리에 제3의 눈을 이식해 준 과학자 ‘웰즈’교수 등과 프랑스를 탈출하기로 했고, 〈마지막 희망〉이라는 이름의 함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35일 뒤였다. 그러나 뉴욕도 유럽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뉴욕항에 도착한 배에서 하선 하기 전에 닻줄을 타고 올라온 뉴욕 쥐들의 인서전술(人鼠戰術)에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필사의 싸움에서 나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겨우 살아났지만, 동료 고양이 140마리, 인간 10명, 돼지 65마리, 개 52마리가 죽었다. 앵무새 ‘상폴리옹’과 나탈리를 비롯해 겨우 일곱이 살아남았는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지,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밤중 뉴욕 고층빌딩 맨 위층에서 보내는 불빛을 보고 그들과 모리스 부호로 통신을 교환해 그들이 보내 준 드론을 타고 그곳으로 옮겨가다가 내 짝인 피타고라스를 잃었고, 앵무새 상폴레옹까지 잃었다. 다행히 아들 ‘안젤로’와 집사 ‘나탈리’등 5명만이 살아남았다. 빌딩 안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뉴욕 쥐들이 이미 콘크리트까지를 갉아먹어 1932년 지어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 전부터 무종교인 대 종교인, 가난한 자와 부자들의 대결로 내전의 우려가 상존하고 있는 데다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구성원 공동체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면서 동시다발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흑인, 백인, 중국계, 히스패닉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독일계, 북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일본계, 한국계 등으로 나뉘고, 종교는 개신교,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공화당, 민주당, 공산당, 무정부주의자, 히피족, 펑크족, 고스족, 록 족, 테크노족 등으로 나뉘어져 미국 전역이 그야말로 대혼란을 빠져 있었다. 우리는 이미 유럽에서 겪었던 것처럼 행정과 국가관리 시스템이 점차 마비되다가 어느 순간 작동이 멈추자, 그때부터 도시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하고, 쥐들이 하수구와 터널 같은 지하 서식지를 버리고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검은 쥐, 흰쥐, 회색 쥐, 갈색 쥐가 주도권을 놓고 싸우더니 결국은 갈색 쥐가 세력을 잡았지만, 그들은 유럽을 휩쓴 돌연변이 페스트의 매개체로써 인간을 무더기로 감염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 연구에 집중할 환경이 못 됐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몇몇 과학자들이 페스트 백신이 아니라, 쥐를 죽이는 쥐약 개발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험용 쥐를 이용해 독감에 걸린 쥐가 재채기를 하는 순간 주변에 있는 쥐들에게 바이러스가 퍼지게 하는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개체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살아남은 쥐들이 맨해튼을 탈출하였고, 몇 주 뒤에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는 이들을 막을 수조차 없는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었다.
대혼란을 피해 104층 고층 빌딩으로 피난한 4천여 명의 각계 부족들은 대표단을 결성키로 하고 〈101인 부족 대표단〉을 창설했다. UN 총회 같은 역할을 하게 될 대표단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이때 쥐들도 고층빌딩을 공격할 음모를 꾸며 건물 지하 환풍구를 통해 화염 공격을 시도해 온다. 진화 장비를 동원해 불을 꺼 보지만, 이미 물탱크가 비어 있어서 뽀족한 수가 없다. ‘크렌트’장군 부하들이 2층으로 내려가 기관총을 난사해 보지만, 탄약보다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쥐들은 한 마리가 쓰러지면 세 마리가 빌딩 앞으로 몰려왔다. 쥐들이 놓은 불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빌딩 안에서는 더이상 버티기 어렵게 되자, 드론으로 피난하자는 의견이 분분할 때 우리의 주인공 바스테트가 “우주여, 제가 이 행성을 통치하게 되길 바라신다면 지금 저를 구해 주소서!”하고 신에게 기도하여 비를 내리게 해 일단 위험을 모면했다. 이렇게 되자 바스테트는 고양이 부족도 ‘101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 부족들은 동물이 대표가 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101인 부족 대표단〉의 수많은 대책 회의에도 불구하고, 쥐들을 박멸하기는커녕 당장 쥐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바스테트는 미국 쥐 우두머리 ‘알카포네’와 유럽 쥐 우두머리 ‘티무르’중 한 명인 티무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쥐 군단 지휘관인 그들을 죽이지 않고는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며 동료인 ‘에스메랄다’와 ‘부코스키’를 대동하고 드론을 이용해 적의 주둔진지가 있는 ‘자유의 여신상’지하 계단으로 몰래 잠입한다. 밤중에 몰래 잠입했음에도 적들에게 발각되어 싸우다 부코스키를 잃고, 에스메랄다와 필사적으로 드론을 타고 도망쳤고 겨우 비속을 뚫고 104층 빌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끝까지 자신의 꼬리를 물고 따라온 제후 쥐 한 마리를 얻었는데, 그를 설득하고 개조해 적 정보를 알게 되면서 적의 2차 화염공격을 막아내기에 이른다. 이로 인하여 나 바스테트는 〈101인 부족 대표단〉의 일원이 되었고, 이제 조직은 〈102인 부족 대표단〉이 되었다
나 프랑스에 살던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 지하에서 생포해 쇠뇌시켜서 풀어준 뉴욕 쥐 세계의 2인자 폴의 도움으로 쥐 세계 황제 티무르를 만나 인간과 다른 102개 종족이 머물고 있는 프리덤 빌딩에 대한 쥐들의 화염 공격을 중지해 줄 것을 협상하기 위해 티무르를 만났다. 새하얀 털에 새빨간 눈을 가진 티무르가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네가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어. 난 실험동물이었던 내게 고통을 준 인간들에게 복수해야 해. 고양이는 살려줄 수 있지만, 인간은 안 돼. 인간들의 실험을 위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내가 다짐한 게 있어. 그 해로운 기생충들을 지구상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밀이야. 그들이 세계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지 너도 알잖아.”
티무르는 자신이 실험실에서 겪은 것처럼 21분 동안 물에 빠져 고통을 겪은 것처럼 내게도 이를 이겨내야 공격을 멈추겠다는 요구를 받아주겠다고 한다. 티무르의 요구에 나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살아남으로써 우리 일행이 프리텀 빌딩을 빠져나와 다른 데로 가기로 하고, 뉴욕은 쥐들이 통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들, 인간 4만 명, 고양이 8천 마리, 개 5천 마리는 43일 동안 350㎞를 걸어서 보스톤에 있는 다이내믹스 공장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여기는 유리벽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는 곳이고, 로봇 고양이 2천 마리가 지키고 있어서 우선은 안전해 보이고 자급자족도 가능했다. “공룡들처럼 인간들도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해! 인간이라는 종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 해만 끼치는 기생충이야! 너와 나, 그리고 고양이와 쥐들은 공존할 수 있지만, 인간들과는 불가능 해!”티무르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고 옥좨오자 102개, 아니 나 바스테트와 보스톤 다이내믹스 공장의 회장 마크 레이버트까지 104개 종족대표의 투표로 뉴욕을 핵미사일로 공격하기로 결정이 내려진다. 결국 실행된 다코마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떨어진 미사일이 바스테트가 미리 조작한 덕에 터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적을 파괴해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격분한 티무르는 3천만에 이러는 쥐 떼를 이끌고 보스톤으로 진격해온 것은 핵미사일로 자신들을 공격하겠다는 내용을 모두 도청된 뒤다. 죽고 죽여도 시체를 넘고 넘어 보호막을 넘어온 쥐 떼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디어를 낸 것은 역사 바스테트였다. 그것은 드론을 타고 지휘하는 티무르를 죽이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발견하고 드론으로 그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를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석 달 뒤 쥐들이 물러갔고 티무르 소식은 끊겼다. 나와 우리팀이 퍼트린 박테리아 때문인지는 모른다. 우리는 뉴욕으로 돌아가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유엔본부에 모여서 새 의장을 뽑게 되어 여러 후보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모르몬교 목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쥐가 나타난 것은 술과 마약, 무분별한 성행위, 황금만능주의의 죄를 저지르며 타락한 인간들에게 신께서 내린 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첨단기술 중독과 물질 숭배에서 벗어나 영적인 삶을 제안하면서 농사를 짓고 기도를 올리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쥐들은 이전처럼 지하로 숨어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가능성은 있다. 설사 쥐가 아니라도 바퀴벌레일 수도, 비둘기일 수도 있다. 바스테트는 고양이 대표로 의장에 출마하면서 인간 종족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지금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라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다시 공격해 올 것입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 바스테트는 2표, 아니 자신의 표까지 3표를 얻는데, 불과 했다. 집고양이 바스테트가 꿈꾼 세상은 아직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옮긴이의 말
「행성」은 스페인독감 이후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출현한 뒤인 202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집필을 마무리했을 그해 봄이 우리가 막 터널로 들어섰을 때여서 그랬는지 작품 곳곳에 바이러스의 흔적이 깊이 남아있다. 2016년과 2019년에 각각 발표된 고양이 3부작의 「고양이」와 「문명」에 비해 대멸망 이후의 세계는 한층 더 폭력적으로 그려지고 세상을 점령한 쥐떼와 싸우기 위해 주인공들이 고민하는 해법 역시 보 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제시된다. 서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 또한 달라진 점이다. 이번 작품은 내용상 전작들과 이어지긴 하지만 독자들은 새로운 땅을 무대로 펼쳐지는 고양이 바스테트의 새로운 모험담으로 읽어 주면 좋겠다. 이번 소설의 배경은 뉴욕 맨해튼이다. 같은 해 발표된 초단편 「호모 콘피누스」에서 지하세계에 격리된 신인류를 출현시킨 바 있는 작가가 지상을 점령한 쥐들에게 쫓겨 고층 빌딩들에 고립된 <공중 인류>를 선보이기에 뉴욕만 한 도시가 없었을 것이다. 바스테트 일행은 미국에서 강력한 쥐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서양을 횡단해 뉴욕에 도착한다. 그러나 눈앞에 드러난 신대륙은 부족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고, 뉴욕은 쥐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멸망을 겪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 이전과 달라져 있을까. 종간소통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고양이 바스테트의 눈에 비친 그 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도 소통할 줄 모르는 존재들이다. <인간들 입에서 나오는 건 소통의 소리가 아니라 소음이야.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말할 뿐이야.> 작가는 인간 생존자들이 구성한 임시 내각의 좌충우돌을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정치 전반과 민주주의, 이민자 문제, 인종 갈등, 성 평등, 광신주의 등을 풍자적으로 다룬다.
「행성」(원제 <고양이 행성>)은 제목에서부터 지구 행성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이 주제는 베르베르 작품세계를 이루는 큰 축 중 하나로, 그는 「파피용」과 「제3인류에서 이미 파국을 맞은 지구의 인간 문명을 다룬 바 있으며 가장 최근에 발표한 소설 「꿀벌의 예언」 역시 임계점에 도달한 지구 생태계의 현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인 바스테트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지금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쥐가 아니더라도 다른 동물이 분명히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번 신작에는 특히 전직 과학기자인 작가의 지식과 통찰력이 엿보이는 부분이 많다. 일종의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기술을 비롯한 최신 연구 성과들이 소설적 상상력과 맞물려 작품에 흥미를 더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쥐의 간을 파괴하고 뇌를 손상시키는 바이러스가 당장 실험실에서 개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느냐인데, 지금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인한 전쟁을 떠올리면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행성」은 고양이 3부작을 완결한 작가에게도 그렇겠지만 번역가인 내게도 뜻깊은 책이다. 2018년 「고양이를 번역할 때 처음 만나 바스테트라는 이름을 붙여준 서촌의 길고양이가 ‘행성’을 작업하는 동안 집으로 들어와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앙다문 듯한 바스테트의 입매를 보면서 우리의 도도 한 주인공 바스테트를 비슷한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고양이 폐하의 필경사가 되어 야옹 소리를 한 자 한 자 우리말로 옮긴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꿈꾸는 세상. 고양이의 행복이 가득한 세상. 2022년 5월 전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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