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옥주 '수염 난 여인들'

clint 2023. 4. 29. 18:28

 

1972년 현대문학지에 발표한 전옥주의 단막 희곡이다등장인물이 4명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60대의 노파, 50대의 부인, 30대의 처녀, 그리고 갓20에 접어든 소녀가 나온다. 각각 나이대에 맞게 생각이나 행동이 따라갈 것이라 생각하면 작품이 너무 진부해져.. 일까? 내용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소녀는 이 집의 외동딸로 부인이 엄마이고, 처녀는 소녀의 고모이다. 소녀의 아빠는 해외출장이 잦은 사업가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큰집이며 살림살이를 봐도 부유한 집안으로 보인다. 갓 대학에 들어간 여대생으로 집안에서의 일에 끼어들 만큼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 고모인 노처녀와 티격태격한다. 고모는 미국에 유학 가서 석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박사과정에 있다. 때를 놓쳤지만 여자가 학벌이 높으니 웬만해서 남편감이 나서질 않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 갈피를 못잡고 있다. 엄마는 50대인지라 집안을 지키는 부인의 역할을 기대했으나 딸인 소녀의 말을 들어보면 아빠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고 특히 남편이 해외에 나가면 그 스트레스를 풀려는지 외출이 잦다. 노파는 이 집과의 혈족관계가 아니다. 소녀의 가정교사였던 혁준의 모친으로 외아들 잘 되기만을 바라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형이다. 결혼 후, 남편이 집을 나가 객사하는 바람에 평생을 수절했고 아들을 키워 왔고, 혁준을 부인이 잘 봐서 어머니도 이 집에서 같이 살게 된 것이다.노파의 아들 혁준은 직장에 다니는 노총각이다. 오늘도 부인은 잔소리를 딸과 고모에게 늘어놓고 젊게 차려 입고 외출하고고모도 뒤늦게 외출하는데, 집에는 소녀와 할머니가 남아 이런저런 얘기로 가족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소녀는 심지가 굳고 이해심이 많은 할머니가 맘에 들어 내심 과외 선생이었던 혁준을 좋아했던 터라 할머니의 며느리로 평생 모시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엄마도, 고모도, 혁준도 자정이 되도록 귀가하지 않고 소파에서 기다리다 잠든다. 새벽녘에 통금이 해제되고 고모가 들어온다. 고모가 울며 하는 말이 퇴근 길에 무작정 혁준을 보러 갔는데 먼저 부인과 같이 만나서 미행했단다. 그들은 여관에 갔고 통금으로 자신도 그 여관의 옆방에서 자다가 새벽같이 울면서 집에 들어온 것이다. 고모도 혁준을 남몰래 짝사랑 했었고 고백하겠다는 마음으로 나갔다가 못볼 것을 본 것이다

 

 

인간이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일반적으로 그 가치의 행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구체적 상황이 결국 한계상황과 연결된다고 믿게 된다. 수염난 여인들은 바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한계상황에 이르기 전에 이미 구체적 상황에서 여성 특유의 한계를 느껴보는 실태를 그린 작품이다. 그 때문에 여기 나오는 부인이나 처녀나 소녀는 모두 이미 노파가 걸어온 길을 다시 밟으면서도 또 구체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때 그떄 모면해 가려는 양상으로 특별한 극적 사건 없이 다루운 작품이나 무대 형상화에 있어 이것을 하나의 관념화된 생의 환희로 나타낸다.

 

전옥주 극작가

 

- 1962년 현대문학에 희곡 <운명을 사랑하라> 추천 등단

- 저서로 희곡집 <<낮 공원산책>> <<아가야 청산가자>> <<꿈지우기>> <<영혼의 소리>> 외 수필집, 공트집 다수

-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역임

- 현재 <문학의 집 서울>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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