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황정은 '여기'

clint 2023. 4. 29. 06:39

 

빈 공원. 한 노인이 공원에서 꽃을 키우는 일을 한다. 벤치에서 쉴 때 고교생으로 보이는 우영이 온다.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비벼 끈다. 노인이 한소리 한다. 담배, 재를 함부로 바닥에 버리지 말라고. 우영은 투덜거리며 벤치에 앉아 돈을 센다. 5만원권 100. 수입 자전거를 산다고 한다. 노인은 그 돈이 복사된 가짜돈이라 한다. 우영은 놀란다. 다음날 그곳에서 또 우영과 노인이 만난다. 우영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담뱃재를 그냥 털다가 또 노인에게 혼난다. 노인은 자전거를 보고 가짜라고 한다. 라벨에 덧붙인 것이다. 우영은 열 받으면서도 이 이상한 노인에게 뭔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걸 알려 달라고 하나 노인은 엉뚱한 얘기를 한다. 여기가 예전에 바다였고 여러 소리, 환영이 보인다고…. 우영은 이 노인 미친 거 아냐…? 하면서도 궁금하다. 다음날 또 이곳에 온 우영은 같은 학교 은호를 만난다. 은호는 돈 복사 소문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인데기끔씩 계속 환청으로 소리를 듣는다. 둘의 얘기가 계속되는데, 학교에 우영이 복사 돈을 쓴 게 알려져 빨리 도망가라고 한다. 경찰에서 수사한단다, 우영은 도망가는 처지가 됐고, 얼마 후 은호가 이곳에 와서 노인을 만난다. 궁금해할까 봐 우영의 소식을 전해준다. 경찰에 잡혀 조사 중이란다. 그리고 아빠가 병원에 계신데 탐험가였고 이곳이 예전에 바다였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노인과 같은 얘기다. 그리고 예전에 만든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준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닌 지도. 둘의 공통점이 있는데 노인은 그런 모습들을 보고, 은호는 듣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나는 이 공원도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고얼마 후, 우영의 엄마가 노인을 만나러 이곳에 온다. 노인때문에 아들이 망가졌다고 한다. 애가 노인에게 들었다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위조 돈을 만든 것도 노인이 시킨 것 아니냐며 노인을 다그친다. 애를 위해 노인이 희생해 달라는 거다또 시간이 흐른 후, 우영이 나온다. 공원에 온다. 완전 폐허가 된 여기. 그는 여기에서 진동을 느끼고, 아우성을, 환청을 듣는다. 마치 노인이 된 듯이.

 

 

작가의 글 - 황정은

가끔 내가 밟고 있는 땅이 누가 밟고 있던 땅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 이전에도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그들의 흔적이 남은 땅은 어쩌면 자신 위에서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그 땅 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역사를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땅만은 기억하지 않을 까요땅이 붙들고 있는 그 기억이 만약 진실이라면, 과거의 진실이 현재의 우리에게 건네는 끝없는 노크, 그 노크 소리를 과연 우리는 들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진실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지 않을 테니까요진실의 생존력에 대해, 그렇게 '여기' 이 땅 위의 진실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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