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재상 '만조화락'

clint 2023. 4. 26. 09:19

 

여름 4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 최리가 출행하였다가 그를 보고서 묻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겠는가?”하고는 마침내 함께 돌아와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 최씨 딸에게 알려서 말하기를 “만일 그대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찢고 부수면 내가 예로써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앞서 낙랑에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서 적의 병력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부수게 한 것이다. 이에 최씨 딸이 예리한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의 면(面)과 뿔피리의 주둥이를 쪼개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아 대비하지 못하였다. 우리 병력이 갑자기 성 밑에 도달한 연후에야 북과 뿔피리가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낙랑을 멸하려고 청혼을 해서 그 딸을 데려다 며느리로 삼고,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서 병기와 기물을 부수게 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편-

 



아마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판 로미오와 줄리엣, 아니 낙랑 공주와 호동왕자의 이야기가 훨씬 더 먼저 나왔으니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국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실제로 호동 왕자는 고구려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첫째 부인에게도 '우'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호동보다 나이가 아주 어렸지만 적통이 아니었던 호동은 큰 공을 세우지 않고서야 왕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남쪽의 풍족한 나라 낙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호동은 낙랑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게 된다. 권력 투쟁이라는 정치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왕위에 오르고 싶었던 호동은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낙랑의 공주에게 접근하여 결혼했고 자신과 사랑에 빠진 공주를 이용한 것이다. 

 


호동왕자는 낙랑 공주에게 나라와 사랑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는 숙제를 남긴다. 결국 사랑을 선택한 낙랑 공주는 호동의 요청대로 자명고를 찢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어쨌거나 낙랑을 무너뜨리는 데 큰 공을 세운 호동 왕자는 왕이 될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왕위는 첫째 왕비의 아들에게 돌아갔다. 왕위를 노렸던 왕자는 죽어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호동이 태자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웠던 첫째 왕비는 왕에게 호동이 자신을 예로서 대하지 않으며 음란한 짓을 하려는 것 같다고 참소하였고 누명을 쓴 호동은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작품 <만조화락>에서는 위의 큰 줄기에 권력투쟁하는 당파들의 서로 음해하는 등 현대판 정치모략이 곳곳에 삽입되어 예나 지금이나 패권을 위한 모략에 호동은 깨끗히 자결하고 먼저 간 낭랑을 따라가는 것으로 끝난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설화를 보편적 인간사의 엇갈림과 실존의 문제,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가의 글
학창시절엔 역사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연극을 하면서 세익스피어가 그들의 역사를 소재로 인간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내 방식입니다. 역사를 보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극작가로서 연출가로 해석을 더하는 거지요. 당연히 포스트성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에서 가져왔으나 표현형식은 현대적으로 갔습니다.

작가는 역사극에 눈을 돌린 계기를 들려준다. 고전극이 범하기 쉬운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픽션 작품을 관객들은 고스란히 역사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작품 <만조화락>에서는 왕자 호동을 보는 시각에 포커스를 맞췄다. 스스로 작품 정체성을 동양적 정서를 깔고 있다고 푼다. 삶에 대한 통찰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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