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대학의 극작 수업. 교수 A와 대학원생 B는 뜻하지 않게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A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공격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B. 이들 사이에는 묘한 불편함이 흐른다. B는 제출한 희곡이 매번 통과되지 않자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그들의 첨예한 논쟁이 시작되는데…
<클래스>는 예술대학의 극작수업에서 중견 극작가와 학생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세대로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험을 관통하여 지금의 사회적 역할을 부여 받았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동시대를 바라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 이들은 예술관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두 사람이 희곡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은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기 위한 논쟁이자 투쟁으로 변모한다. 우리는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가 끝내 도달해야 할 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진주는 세대, 성별, 가치관 등 각자의 기준으로 부딪히는 갈등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2018년 문화·정치·사회·영화 등 각 분야에서 일어났던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4년이 훌쩍 흘렀다. 미투 운동으로 사람들은, 성폭력이 위계 서열에 의한 폭력임을 알게 됐다. 그 거대한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는 어떻게 됐을까. 시간은 흘렀지만, 위계에 의한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가운데 진주 작가는 연극 '클래스'라는 작품이 있다. 무대는 위계가 극명한 자리, 서열이 선명한 자리, 바로 교실이었다. 이 교실에선 극작 수업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중견 극작가와 학생이 등장한다. 장소에도 등장인물에도 모두 위계와 서열이 녹아 있다.
극중극으로 등장한 '고독한 케이크방'은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이다. 학생이 이 희곡을 작성해 가면서, 학생과 중견 작가는 희곡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성폭행', '위계 서열' 등은 말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중견 극작가는 왜 그 소재인지, 너의 마음속에 무엇을 건드리는지 질문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열띤 대화가 시작된다. 중견 작가를 존경하는 학생의 모습은 한 명의 열성 팬에서 점차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희곡을 창작해 가며 학생은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게 되고, 상처의 의미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발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완성된 희곡은 그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생과 중견 작가는 위계 서열, 미투, 복수, 창작 방법, 진실을 말하는 방법 등을 두고 치열하게 부딪히고 충돌한다. '클래스'는 휘몰아치는 충돌과 타오르는 충혈 속에서도 우리가 꼭 마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클래스’는 극중극과 그 바깥의 이야기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복잡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화합 같은 확실한 결론 대신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작가의 글 - 진주
작가가 나오는 극을 쓰지 말아라, 연극에 대한 연극을 쓰지 말아라, 예술에 대해 말하는 연극 쓰지 말아라, 라고 배운 것 같은데 작가만 나와서 대본을 읽고 예술과 현실에 대해서 말로 싸우는 극을 써버렸다. 어떤 세대를 비난하고, 그 뒤로 숨기 위해 쓴 극이 아니다. 쓰는 동안 어떤 순간 나는 너무나 A였고, 어떤 순간 나는 정말로 B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 대본을 쓸 때는 ‘진실’에 대해서, ‘예술과 현실’, ‘폭력과 위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과 ‘연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어른’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느 하나도 답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이 질문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진실과 대면할 수 있을까, 이 상처에 대해 우리는 증언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차이와 다름 속에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어떤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 갈 것인가? 이 넘치는 질문들이 엮이고 엮여 관객과 잘 나누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감추며 연습실에서 숨을 죽이고 연습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두려워하며 공연을 기다린 적은 없었다. 좋은 것이 있다면 배우들과 연출과 디자이너들, PD들, 프로덕션 모든 구성원의 덕이다. 부족한 것은 다 나에게서 온 것이다.
어느 밤에, 연습실에서 돌아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두려울까.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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