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미 '나는 꽃이 싫다'

clint 2023. 3. 19. 10:36

 

스물여섯.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던 엄마가 30년 만에 처음 딸을 만난다. 
떨어져 살아왔던 세월만큼 서로의 삶의 간극을 느끼는 두 사람. 
마음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오해를 쌓는다. 
각자 삶의 방식에 대한 어긋난 이해 속에서 간직해왔던 서로를 향한 환상과 기대는 무너지고, 
엄마와 딸은 갈등한다. 저녁식사를 앞둔 1시간의 짧은 만남. 
공유한 삶과 추억이 부재한 엄마와 딸은 앞으로의 시간을 함께 나눌 진정한 엄마와 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꽃이 싫다>는 모녀이야기다. 모티프 자체로는 식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녀는 뭔가 특별한 '관계'이다. 알콩달콩 혹은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살아온 모녀가 아니라 30년 만에 만나는 모녀다. 그래서 이 모녀는 '관계'라는 개념이 실제보다 먼저 다가온다. 함께 시간을 보낸 모녀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어떤 일들, 어떤 상황들, 어떤 심리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서 두 사람은 꾸미고, 감추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꽃'이 되고자 한 것이다. 즉, 살면서 겪어본 적 없지만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관념적인 그 관계를 실천하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스타일로 꾸며낸 꽃이 된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는 많이 어색하고 불편하며, 소통되지 않는 답답함이 연속된다.
30년 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엄마를 처음 만나는 딸은 엄마 없이도 잘 자라났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근사해보이는 옷도 빌려 입고 어색한 화장도 했고 가짜 가방도 들었다. 말버릇, 습관, 맵시 등에서 흠 잡히지 않고자 제법 번듯한 꽃으로 꾸며낸 것이다. 이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세밀한 매너에 집중하고 태도의 세련됨을 강조하며 과하지 않은 옷과 화장을 설명하면서 '뉘앙스가 다른' 엄마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관심을 갖고 훈계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독특한 잔소리. 그러면서 중간중간 그럭저럭 괜찮게 살았다는 흔적들을 흘리며 원숙한 꽃의 모습으로 가장한다.

 


이렇게 서로 꽃이 된 모녀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치장한것들이 벗겨진다. 딸은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술집에 나가고 있었고 노래하는 남자와 동거 중이다. 엄마에게 보여준 첫인상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엄마도 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 잘 적응해서 제법 근사한 간호사 경력도 있고 잘 키운 딸이 있는 엄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1년 전에 이혼했고, 미국에서 낳은 딸은 독립해서 엄마를 저주하고 있었으며, 유방암 때문에 한쪽 가슴을 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동안 원망과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을 고백하지만, 보통의 모녀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인 두 사람. 건조하고 메마른 관념적 관계로서의 모녀는 영원히 화해하지 않은 채 그렇게 헤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에 혼자 괴로워하는 엄마에게 다가가 흔들리는 어깨를 잡아준다. 욕실에서 민낯으로, 꽃을 모두 치워버린 모습으로 서로를 보듬는 마지막 모습은 '관계'라는 것이 어떤 힘의 역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녀라는 혈연관계란 그런 것이다. 어색하고, 거부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서로 닮은 구석이 정말 많은 관계, 그래서 결국은 보듬을 수밖에 없는 관계. 꽃이 싫은 건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짜로 보이는 것이 싫다는 뜻이었고, 마지막 장면에 모녀가 함께 말하는 "나는 꽃이 좋다"는 어떤 꾸밈도 없는 그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꽃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성격을 창조하기 위한 대사의 설정도 인상적이다. 특히 엄마의 경우 특별한 어미를 사용하는데,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다. ~란다."라는 어미는 일상적이지 않으면서도 거리를 두는 듯해서 딸은 물론 독자들/관객들도 위축되게 만든다. 잔소리가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비난이나 핀잔으로 들리는 효과는 이 어미 덕분이다. 작품 속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두 사람의 대사를 통해 그들의 이전 역사가 어떠했는지, 살아온 궤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대사와 구성, 인물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잘 짜내는 작가의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다. 잘 만들어진 희곡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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