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준호 '인구론'

clint 2023. 3. 12. 11:35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청년실업 문제가 오래전부터 화두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인문계 출신 청년들의 문제는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담는 과정에서 연극 ‘인구론’이 만들어졌다.
‘인구론’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진 후 

더욱 일자리가 사라져버린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연극이다. 
제목 ‘인구론’은 ‘인문계 90%가 논다’의 약자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이 필요했던 여러 일자리가 기계들로 대체되었다. 실제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20~29세의 고용률은 60%도 채 안 되는 54.5%에 해당하며 이는 기술이 발전되어감에 따라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에서 많은 젊은 세대들이 취업난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인문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일 것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인문계의 특성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회사들이 추구하는 인재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취업에 특히 더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인구론>의 배우들은 어두운 조명에 상관없이 본인만의 밝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인다. 이는 연극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인구론>은 청년실업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두운 조명과 무대는 청년실업이 만연한 우울한 세상이며 코믹한 배우들은 그 세상 속에서 인문계 졸업생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를 달고 살지만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길을 찾아 나서는 청춘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이 연극은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조명의 활용을 통해서 주제 의식을 전달하였다.

 


이 연극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주제뿐만 아니라 인물의 설정 역시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주인공 ‘이우진’은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우리 주위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인물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국 석차 3등 출신이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 친구였던 희진이 시간을 갖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잔뜩 취해 연락하거나 차인 뒤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 정미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나뭇잎을 하나씩 떼며 알아보는 찌질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친근함을 불러일으켜 더 큰 공감을 얻어낸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권정미’의 형상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연극의 연출가에 따르면 <인구론>은 똑같이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독립 영화 <성혜의 나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의 승환은 7년째 고시를 낙방하였고, 연극에서의 우진은 10년째 고시를 낙방 중이니 시간상으로는 3년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그 3년 사이에 성혜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있다. <성혜의 나라>에서 성혜는 회사들의 계속된 불합격 통보에도 포기하지 않고 취업 준비와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 새벽 신문 배달을 하는 이 시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인구론>에서의 희진은 명품 가방을 사주지 못하는 우진에게 실망하여 권태기를 느끼며  또한 우진과 헤어지고 1년 만에 건물주에게 시집을 가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극을 코믹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한 변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하고서라도 ‘굳이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언급을 하면서까지 전작의 인물을 이렇게까지 망가트리고 변화시켰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다.

 

 

<인구론>은 청년 실업이라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루고 이를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표현하였다. 이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는 한편, 코믹함에 치중하여 인문계 청년들의 취업난이라는 제재가 빛이 바랜 것 같은 아쉬운 측면도 존재한다. 한편, <인구론>의 등장인물들은 '외취(외계에서 온 취준생의 약자)과 고시낭인'의 유튜버로 뜨고 외계별과 지구를 이어주는 통역사가 되거나 외계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강사가 되는 등, 각자의 능력을 살려서 구직에 성공한다. 비록 이 결말이 비현실적이고 너무나도 먼 미래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이 시사하는 바인 ‘인문계를 졸업했을지라도 본인의 능력을 갈고닦다 보면 그 능력이 언제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는 관객들에게 큰 무리 없이 전달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재춘 '미스 대디'  (1) 2023.03.19
양수근 '나도 전설이다'  (1) 2023.03.14
김수미 '스카프와 나이프'  (2) 2023.03.11
이여진 '살인자의 수트케이스'  (1) 2023.03.10
김수미 '고래가 산다'  (1) 2023.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