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자식>의 주인공은 김명순 자신을 연상시키는 신여성 ‘성실(星實)’이다. 이름도 필명 탄실(彈實)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성실의 가정환경도 김명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집안 경제사정은 매우 유복하지만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그와 그의 동복(同腹) 여동생(매2)이 부친과 계모로부터 학대와 설움을 받는다는 환경의 설정은 작가 김명순의 자전적 삶에 상당부분 토대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극적 설정은 <의붓자식>이 근본적으로 자전적 글쓰기 형식의 희곡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점이다. 이 극의 무대배경은 화려하다. 대리석 침대와 금 쟁반이 놓여 있는 탁자, 호피 위에 놓인 피아노, 앉은뱅이 꽃이 담긴 광주리, 황색 비로드 보료 등과 같은 호사스러운 대소도구로 치장된 침실이 희곡의 무대배경이다. 이러한 환경을 배경으로 성실과 그의여동생(매2)이 부친과 계모로부터 가정에서 겪는 설움, 폐병으로 인한 성실의 육체적 고통, 자신의 애인 영호(의사2)가 이복 여동생(매1)의 약혼자가 됨으로써 빚어지는 애정 삼각관계의 정신적 고통, 그리고 영호와의 동반자살 암시 등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흥미로운 점은 성실과 매2가 영호를 둘러싸고 벌이지는 애정 삼각관계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성실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번민, 그리고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바로 이 극의 극적 역동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애정삼각 갈등을 모티프로 삼은 평범한 연애비극 같아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김명순이 지향하는 연애사상이 표명된 희곡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렇다면, 김명순의 연애사상이라는 것은 어떤 특징을 가진 것일까. 성실과 그의 친구 세라(여교원)의 대화 장면을 통해 성실의 독특한 연애관이 잘 드러나고 있다. 성실은 진정한 사랑(참말 사랑)은 세상에 매우 드문 것이라는 비관적 연애관을 갖고 있다. 이른바 사랑은 ‘육적 충동’과 ‘호기심 만족’을 위한 것에 불과하며,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가급적 ‘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성실은 연애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이쇼시대의 연애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구리야가와 하쿠손(廚川白村)의 <근대의 연애관(近代の戀愛觀)>(改造社, 1922)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일원론적인 영육(靈肉)일치, 또는 영육합치를 통한 연애를 이상적인 연애라고 보는 것이 당시 다이쇼시대 연애관의 본질이었다. 다이쇼시대에 일본 유학을 경험하고, 유학 이후에도 상당기간을 일본에서 머물면서 문필활동을 해온 김명순이 이러한 다이쇼시대적 연애사상의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김명순은 일원론적인 영육일치의 연애관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특히 ‘육’적 연애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보이고 있음을 이 작품의 여주인공 ‘성실’의 진술과 태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성실은 ‘영육이 합일치 못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당대 근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영육일치의 연애관을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결혼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영호의 약혼자인 ‘매1’과 대화에서 성실은 ‘매1’에게 자신은 영호와 약혼치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결혼생활, 육적 관계는 내게 금물(禁物)’이라고 선언하면서 성적 관계에 기반을 둔 육체적 연애와 결혼생활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폐병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성실을 치료하기 위해 영호(의사2)가 방문하게 되었을 때 성실과 영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성실은 ‘연애는 추악한 것’이라며 영호와의 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의 연인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마침내 성실의 이복 여동생과 영호가 약혼을 하게 된 것도 성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실은 사랑(연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참말 사랑’)이란 성 관계에 기초를 둔 육적 연애와 결혼생활이 아니고, 동경과 흠모에 기초를 둔 상호존중의 영적 연애인 것이다. 이러한 영(靈)적 연애는 성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금욕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식민지 조선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문학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김명순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굳이 1세대 신여성으로서, 혹은 작가로서의 관념적 자의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식민지 조선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기생 출신 후처의 딸이라는 차별의식, 우에노 공원 강간사건의 트라우마, 김기진, 김동인 등 남성 지식인 작가들의 공격과 비난, 그로 인한 조선 문단에서의 축출과 배제 등이 그의 여성으로서의 삶,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집요할 정도로 질식시켜 왔다. 그리고 그에 저항하기 위한 대항적 글쓰기가 그의 고유한 자전적 글쓰기 형식을 탄생시켰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자기변명적, 자기방어적 글쓰기 방식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노라라는 반항적 여성 이미지도 그렇게 구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소설, 희곡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처지를 설명하고, 변명 내지 옹호하는 말하기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곡 <의붓자식>과 <두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두 희곡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성실과 기정은 모두 작가 김명순의 자전적 삶을 토대로 탄생한 인물들이며, 작가 자신의 뼈아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금욕주의적 연애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금욕주의적 연애사상은 당대 젊은 지식인 남녀들 사이에 유행했던 엘렌 케이의 연애지상주의에 근거를 둔 일원론적인 영육(靈肉)일치 연애관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육(肉)적 연애에 대한 병적 거부와 영(靈)적 연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는 왜곡된 연애사상의 추구는 김명순 희곡의 여주인공들이 지닌 의지적 행동인 동시에 작가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일그러진 연애사상은 자신이 남성에게 당한 육체적 훼손이라는 트라우마와도 연관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금욕주의 연애를 추구하는 여주인공들의 시도가 패배와 좌절로 귀결되는 파국을 보여줌으로써 문학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억압적 여성 현실을 폭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작가 김명순이 1920년대에 두 편의 희곡을 창작했다는 것은 한국 희곡사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20년대에 여성작가에 의해 씌어진 희곡 자체가 매우 드문 현실에서 여성극작가가 직접 신여성 주인공을 통해 당대 신여성이 처한 연애와 결혼에 관한 담론을 극적 형상화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여성작가를 식민지 조선의 문단에서 축출, 배제하고 결국 조선을 떠나 디아스포라로 떠돌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당대 남성 지식인 작가들은 냉정한 비판을 감수해야만 한다. 김명순을 비롯한 1세대 신여성들이 “그 무렵 남성작가들이 너무나 이해 없고 몰염치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즉 남성 작가들의 무지와 몰염치, 전횡으로 인하여 희생당하고 만 것” 이라는 임종국, 박노준의 지적은 반세기 전의 주장이지만 지금 보아도 여전히 예리하고 참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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