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1934년 신동아 37-19호에 발표된 3막극이다. 1막은 톨스토이가 아내 소냐의 부르주아적 속물근성과 자신의 부르주아 적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지내다가 마침내 가출한다는 줄거리이고, 2막은 아스타포- 기차역 구내에서 당시 민중들의 대사를 통해 부르주아지의 속성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3막은 병중의 톨스토이가 역장실에서 '밑부터 썩어있는' 러시아를 구제하는 길은 볼세비키 혁명 뿐이라며 자신을 공격한 사회주의자를 두둔하고 죽는다는 내용이다.
이무영은 <톨스토이> 1막에서도 주인공 톨스토이가 부르주아 적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농촌을 동경하여 탈출하는 장면을 연출해 내면서 그의 농촌 동경과 인본주의 사상을 부각시켰다.
"톨스토이 : 그러나 사샤, 네 말대로 내게는 정양이 필요하다. 그러나 네 어머니는 나에게 우유를 먹이려고 하고 비단옷을 입히려고 한다. 러시아의 귀족을 만들려 하고 대지주 노릇을 시키려고 한다. 고량진미보다 시커먼 밀떡이 내게는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른다. 보들보들한 비단옷보다 개가죽 같은 루바슈카가 얼마나 감촉이 좋은 지 모르는 것이다! 나의 목구멍으로 맛있다는 음식이 넘어갈 때면 내 가슴은 빼개지는 것 같다! 그러나 흙덩이를 씹어도 내 가슴만은 편하다. 그것을 네 어머니는 모른다! 사샤야, 너도 보아 잘 알 것이다. 이 땅의 농군들이 비단옷을 입고 논을 갈더냐? 고기만 먹고 밭을 갈더냐? 우유 마시며 소를 몰더냐? 아니다 그네들은 하루에 빵 3조각도 못 얻어먹는다. 그네들은 그래도 일을 한다.-" <톨스토이> 제1막
제1막의 대사는 톨스토이가 딸 사샤에게 귀족으로 사는 것보다는 농군과 같은 삶이 편하다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누더기를 걸치고, 하루에 빵 3조각도 못 먹으며, 일하는 이 땅의 농군들을 생각한다면 비단옷과 고량 진미가 어찌 편하랴! 차라리 개가죽 같은 루바슈카를 입고 시커먼 밀떡을 먹는 것이 편하다. 그러니 흙덩이를 씹어도 내 가슴이 편한 ‘농촌으로 가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의 대사를 분석해 보면, 그 의식의 저변에는 평등주의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사회주의적 성격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무영은 톨스토이의 대사를 통하여 자신의 농촌 동경 의식을 강화했으며, 마침내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을 실현시키게 된 결과로 파악할 수도 있겠다.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사상 <톨스토이>는 실존 인물을 그리면서 당대 한국 사회의 병폐와 그 극복에 대한 작가의 사회주의적 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무산대중"이거나 "볼세비키 사회”니 하는 생경한 어휘를 구사하면서 부르주아의 속성을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다분히 경향성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톨스토이의 대사를 통해 진정한 민중적인 가치관을 모색하고, 한편으로 "귀족 하나 때문에 대중교통이 막힌다."는 군중들의 대화를 통해서는 그들의 피부에 와 닿는 요구를 펼쳐 보이고 있다. 경향극이 관객을 향한 일방주입식 선전이었던 반면에 군중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객관화 시키고 있는 점은 이 극의 성과라 하겠다. 그러나 장막극으로서 사건이 너무 단선적으로 전개되고 갈등이 미약하므로 연극적 완성에는 미흡함이 많지만 <톨스토이>는 톨스토이의 박애주의와 무소유정신을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면서도 실제 그와는 달리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혁명아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농촌청년 : 헛헛헛 여보 털보 영감님! 허허허 그래 그까짓 값싼 인도주의가 우리 무산대중을 구원할 줄 아시오? 아내하고 싸우고 쫒겨 나오기만 하면 일은 다 되는 줄 아시오? 자기 하나만 구두를 기러단 신다고 그것이 이 사회제도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그것이 개인 행락이란게지! 극도의 개인주의야. 살생을 않는다고 육식을 않는다고? 아내하고 싸운다고? 신을 기우러 단긴다고? 모두가 제 양심이 부끄러우니까 괴로우니까......." <톨스토이> 제2막
위의 무산대중으로 자처하는 농촌청년의 대사를 분석해 보면 작가의 주의가 드러난다. 농촌청년을 통하여 허울좋은 인도주의보다는 사회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주의 사상을 역설한 것이다. 다음의 톨스토이 대사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톨스토이 : 결국은 얼마나 교묘히 이 세상을 속여왔느냐 하는 것이 될 것이오. 지금까지의 모든 위정자가 그랬고 또 내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교묘한 수단으로 세상을 속이고 자아를 속여 왔느냐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렇소. 나는 나를 속여온 사람이지요. 입으로는 사랑을 부르짖고 농노해방을 외치면서도 의연히 나는 나만을 사랑하는 찰 이기주의자였고 일만 육천 에이커라는 광범한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소. 나는 존경을 받을 만한 존재가 못 됩니다. 그 증거로는 나를 위문해주는 사람들이 모두 당치않는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들뿐이라는 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을 것이오. 내가 정말 존경을 받고 싶기는 그네들이 아니라 이 땅의 농민들이었지요. 허나 그들은 하나도 나에게 존경을 베푸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멸시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오." -<톨스토이> 제3막
톨스토이는 임종을 맞으면서 임종을 지켜보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위정자나 대지주들이 입으로는 농노해방을 외치면서도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는 것이며, '자신은 이 땅의 농민들에게 존경받고 싶은데, 자신을 위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교묘히 세상을 살고 있는 부르주아들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무영은 톨스토이의 사상에 심취된 작가였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대사를 통해서 작가 자신의 사회주의적 주장을 피력한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작가가 은연중에 봉건적 유산을 식민통치와 연결시켜서 동시에 배격하며,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혁명노선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무영(본명: 이갑용)
1908년 1월14일 충북 음성에서 출생했다. 1925년 세이죠오 중학 재학 중 일본 작가 카토오의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다. 22세에 귀국하여 소학교교원, 잡지사, 신문기자로 활동했다.1928년 장편 <의지없는 영혼>을 출판했고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해방 후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했고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60년 4월21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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